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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수협회는 '최동원 정신'을 잊지 말아야

[취재파일] 선수협회는 '최동원 정신'을 잊지 말아야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회 설립을 주도했던 故최동원씨는 “왜 굳이 앞장서서 선수회를 만들려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만 생각하면 굳이 선수회는 필요 없습니다. 대접받지 못하는 불우한 동료와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서 저처럼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앞장선 겁니다.” 안타깝게도 최동원의 꿈은 구단들의 전폭적인 방해공작에 의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최동원의 ‘약자 보호’ 정신은 21세기 들어서야 첫 걸음을 뗀 선수협회의 설립 취지이기도 합니다. 이름값 있는 선수들이 앞장서서 힘없는 선수들의 권익을 챙겨주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선수협회의 행태를 보면 ‘최동원 정신’이라는 초심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비활동기간 비합동훈련’ 논란을 곱씹어 보겠습니다. 선수협회는 “선수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휴식을 주는 차원”으로 비활동기간 훈련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긴 시즌을 소화한 선수들은 분명 쉬어야 하고, 또 쉴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 반대로 쉬는 기간에 운동할 권리도 침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선수협회는 역으로 선수들의 운동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겁니다.

선수협이 규정하는 비활동 기간은 12월 1일부터 다음 해 1월 15일까지입니다. 무려 46일이나 됩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삶을 위해 46일을 계속해서 쉬는 선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조금이라도 훈련량을 늘려 내년 시즌 제대로 대접받고 싶은 선수들, ‘최동원 정신’에 따르면 선수들 중에서도 쥐꼬리 연봉을 받는 ‘불우한’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이 기간이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최적의 기간입니다. 이 선수들은 휴식시간을 줄여서라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선수협회는 배우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수협회의 훈련 제한 방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경기장에 나와 훈련하는 것은 괜찮은데,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코치가 만나면 인사만 하고 서둘러 모르는 체 해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액 연봉자들이야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편할 때 따로 훈련하면 되지만, 그럴 사정이 안 되는 선수들에겐 코치의 도움이 절실한데도 말이죠. 선수협회는 “한 명씩 지도를 받다 보면 다른 선수들도 부담을 느껴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며 아예 지도를 받을 수 없게 한 겁니다. 마치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에는 질문을 하지도 받지도 말라는 선생님 같습니다.
김성근 한화 취임
선수협회는 “‘비활동기간 훈련’ 논란이 ‘12월 훈련 필요성’을 강조했던 김성근 한화 감독의 발언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워낙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감독이니 선수협회가 잔뜩 긴장할 만도 합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받고 싶어 하는 선수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자기 실력을 키울 수 있다면 어떤 강훈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선수협회가 이렇게 ‘비활동기간 훈련’을 막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은 ‘비활동기간 훈련’이 선수들을 위한 게 아니라 팀을 위한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비활동기간 훈련’이 선수들의 인권을 제약한다고 보는 거죠. 반면 김성근 한화 감독은 “훈련은 선수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12월 훈련 필요성’을 놓고 해석은 정반대였던 겁니다. 김성근 감독은 항상 “잘 하는 선수들은 연봉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잘 하기 위해서는 훈련 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전지훈련에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 했고, 더 많은 코치를 붙여 선수들을 키우려 했던 겁니다. 결국 김 감독 입장에서는 ‘12월 훈련’을 선수 권익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겁니다. 김 감독이 그 동안 “구단이 선수들에게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런트와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는 점을 돌이켜봐도 그렇고, 지옥훈련을 거쳐 성장한 선수들이 대부분 김성근 감독에게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 김 감독 입장에서 훈련의 ‘훈’자만 나오면 무조건  반대하는 선수협회가 이해될 리 없습니다.

선수협회는 얼마전 괌 관광청과 MOU를 체결했습니다. 선수협회 회장단이 괌까지 직접 날아가 사인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괌에서 훈련할 수 있는 야구장을 건립해 주고 한국 선수들에게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선수들은 구단의 통제 없이 훈련할 수 있어 좋고, 괌에서는 한국 선수들을 관광객으로 유치해서 좋은 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될까요? 2천7백만 원의 최저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 겨울 훈련이 꼭 필요한 선수들에게 과연 그런 호사스러운 기회가 올지 의문입니다. 선수협회의 초심이라 할 수 있는 故최동원 선배의 ‘약자보호’ 정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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