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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님아, TV에 나가지 마오

[이주형의 사소하게] 님아, TV에 나가지 마오
1.어디론가 섭외 전화를 넣거나 신문과 인터넷을 뒤적이며 머리를 굴리고 있어야 할 저녁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니, 더이상 그 일을 계속 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거절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나처럼 부탁이란 걸 하기를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직업을 잘못 골랐다. 기자란 늘 섭외하는 직업이니까. 더군다나 방송기자란 전화 한 통 해서 몇마디 묻고 기사쓰고, 이렇게 끝날 일이 없다. 시선의 미동(微動), 음성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잡아내 전달하는 것이 방송기자의 임무이다.

2. 오늘도 심사숙고 끝에 전화한 두 건의 인터뷰 섭외 요청을 거절당했다. (물론 두 번 다 정중한 거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절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는 화제의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인 강계열 할머니 섭외 건이었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한경수 프로듀서와 통화했더니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영화가 개봉한 직후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강원도 횡성의 그 집에서 홀로 살고 계셨는데,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왔단다. "찾아가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찾아오고 싶은지, 찾아와서 뭘 보고 싶은 건지 난 잘 이해를 못하겠다. 그럼 너는 왜 인터뷰를 하겠다는 건데? 하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개인 자격으로 찾아가고 싶지는 않다.)

할아버지도 없이 홀로 사는 아흔 노인은 무서워서 울면서 딸에게 전화했고 결국 할머니는 그 집을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

3. 영화가 큰 화제가 됐는데도(어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할머니가 얼굴을 비치시지 않기에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할머니는 방송 출연을 원치 않으신다고 했다. 물론 나는 꼭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그 가족 중에 누군가와 (이를테면 막내 딸. 40대의 막내 딸이 할머니의 장손녀와 동갑이라는 사실!) 인터뷰해도 두 내외 분의 인생을 영화와 또 다른 측면에서 조명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요청해봤지만 이 역시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3남3녀 가족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의 흥행이나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강계열 할머니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는 것이라고 프로듀서는 전했다. 할머니의 맏딸은 노부부가 KBS 인간극장에 나갔다가 유명세를 치른 몇 년 뒤 다시 찾아온 이 영화의 감독 진영모 씨를 직접 면접한 뒤에야 촬영을 허락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더 정확히는 유명해져서 자신들의 삶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하다는 이른바 '셀렙'까지 나오는 요즘, 그 '유명'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직업인이지만 가족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고민한다. 유명하지 않으면서 훌륭한 분들을 인터뷰해 알리고 싶은데 그런 분들은 대개 방송 인터뷰를 싫어한다. 또 어찌어찌 방송 인터뷰가 나가면 그 분들의 일상이 무너진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은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무엇을 인터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간에 누구를 인터뷰해야 하는가를 놓고 또 고민하고 있다. 이게 다 섭외가 안 되니 나오는 고민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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