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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뜨거운 컵라면' 맞은 여자 승무원…중국판 '땅콩 회항'

[월드리포트] '뜨거운 컵라면' 맞은 여자 승무원…중국판 '땅콩 회항'
'땅콩 회항'으로 재벌가 사람들의 안하무인 몰상식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함께 항공기 승무원들의 애환 어린 직업상 비애에 대해서도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때마침 중국에서도 한국과 유사한 어처구니없는 '회항'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제 새벽 태국 방콕 공항을 이륙해 출발해 중국 난징으로 향하던 FD9101편 여객기 안에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한 중국인 여성 승객이 스튜어디스에게 컵라면 익힐 물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했는데 즉각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화가 난 승객이 스튜어디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항의했고 당황한 스튜어디스가 뒤늦게 뜨거운 물이 담긴 컵을 승객에게 가져다 줬습니다. 여성 승객은 분이 안 풀렸던 지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컵라면을 스튜어디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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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뜨거운 '컵라면'을 맞은 스튜어디스와 그녀의 동료들이 승객에게 항의하자 이 성마른 여성 승객과 동행하던 중국인 남성 몇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승무원들과 대치하면서 기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양측이 서로 옥신각신하던 중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져 급기야 중국인 남성 승객들은 비행기를 폭파해버리겠다고 위협했고, 여성 승객은 자살하겠다고 날뛰는 긴급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켜보던 승객들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우려하며 불안감에 떨었고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자 비행기는 회항을 결정했습니다. 이륙한 뒤 한 시간 반이 막 지나던 시점이었습니다.

방콕 공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도 소란은 이어졌지만 다행히도 인질극이나 자살시도 같은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회항 착륙 직후 소란을 피운 중국인 승객들은 항공안전요원들에게 붙잡혔고 항공사는 뜨거운 컵라면을 퍼부은 중국 여성 승객에게 5만 바트(중국 돈9434위안, 우리 돈으로는 약 180만원)을 봉변을 당한 스튜어디스에게 배상하도록 청구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태국 경찰은 공중질서 위반 혐의로 '컵라면' 여성 승객에게는 200바트 (우리 돈 약 7천 원), 다른 남성 승객에게는 100바트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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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CCTV를 비롯한 중국 언론들은 한국에서 벌어진 '땅콩회항'건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한국 사회의 볼썽사나운 부조리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라며 은근히 조롱 섞인 시선을 보내왔던 게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의 양상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국민의 추태 소식을 접하자 적잖이 머쓱해하고 있습니다. 추태 주인공들에 대한 이른바 '신상털기'도 인터넷에서 부지런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망신이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스튜어디스의 처우와 그들을 대하는 승객들의 자세를 되돌아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여성 스튜어디스를 '쿵중샤오제(空中小姐)'라고 부릅니다. 공중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뒤에 붙는 '샤오제'는 일반적으로 중국인들 사이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을 의미합니다. 많은 경우 유흥업에 종사하는, 그래서 남성 손님들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여성이란 뜻이 숨어 있어 사실상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해 부르는 용어입니다.

이번 '물벼락 회항' 사건 말고도 중국에서는 스튜어디스에 대한 모욕과 업신여김, 성희롱 등 말썽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제에 항공승무원들에 대한 승객들의 몰상식한 태도와 직업 비하 인식부터 바로잡아야하며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직업을 뭐라고 부르느냐가 문제의 본질은 아닐 겁니다. 내가 돈 주고 서비스를 산 '왕'이니까 어떤 식으로 왕 노릇을 해도 된다는 저급한 인식!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고 너희들은 고용된 머슴들이니 내가 어떤 식으로 '갑 질'을 해도 상관없다는 오너들의 안하무인 선민의식이 저항 없이 묵인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심각하게 썩어가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신분과 지위에 앞서 모두 사람이기에 비좁아 서로 불편할 수 있는 항공기 안에서 견과류와 컵라면 정도는 서로 정겹게 주고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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