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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천하절경에서 투신한 4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  비극의 장소가 된 천하절경 일월애

진시황이 호령하던 고도 시안, 동쪽으로 2시간쯤 차를 달리면 화산이 나옵니다.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명산입니다. 높이는 2천2백 미터입니다. 매우 높은 편은 아니지만 위압적인 산세와 날카로운 봉우리가 연출하는 웅혼한 기상으로 유명합니다.

화산의 절경들 중에서도 일월애는 첫손가락에 꼽힙니다. '천길 낭떠러지가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해줍니다. 거의 수직으로 우뚝 선 단애가 보기에도 아찔합니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입니다.
이 일월애에서 지난달 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4명이 함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4명 가운데 둘은 부부였습니다. 나머지 2명은 각각의 어머니였습니다. 일가족 두 세대가 동반 자살을 한 것입니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성입니다. 먼저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살펴볼까요?

● 생후 2개월된 딸을 버려두고

남편은 32살 츄모 씨, 아내는 동갑내기인 리모 씨입니다. 이혼남이었던 츄 씨는 지난해 리 씨와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리 씨는 딸을 낳았습니다. 이후 한 달 넘게 시안 시내에 있는 산후조리원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리 씨는 산후조리원을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생후 2개월된 딸은 친척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신
지난 달 24일 저녁 리씨 부부와 각각의 어머니, 즉 리씨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함께 화산의 베이펑, 북쪽 봉우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일월애 근처에 위치한 한 도장(도교의 사원)을 찾았습니다.

여도사(도교의 여성 사제)에게 굶주렸다고 호소했습니다. 여도사는 이들을 위해 숙소에 자리를 마련해준 뒤 급히 먹을 것을 구하러 산을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돌아왔을 때 이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습니다.

다만 탁자 위에 유서 한 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일월애에서 투신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황량한 야외에 시신이 오랫동안 뒹굴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고비조로 5천 위안, 약 9십만 원을 함께 넣어놨습니다. 하지만 유서에는 왜 자살하는지, 남은 가족이나, 2개월 된 딸은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여도사의 신고로 경찰이 일월애 아래 숲을 수색했습니다. 한 공터에서 이들 4명의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해발 1천 미터의 절벽 위에서 200미터의 바닥까지 800미터를 떨어진 것입니다. 날개가 없는 한 살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끔찍한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 1조6천억 원을 굴리던 사업가 부부는 사기꾼

아내 리 씨는 시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시장의 구매 담당 책임자였습니다. 리 씨는 2009년 자신의 어머니를 내세워 스스로 물류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시장에 음료수 등을 공급했습니다. 자신이 구매 책임자니 회사는 절로 커졌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습니다.

회사의 규모를 키운다며 아는 사람들에게 투자를 받거나 돈을 빌렸습니다. 이 과정에 남편인 츄 씨의 도움이 컸습니다. 츄 씨는 원래 한 은행에서 신용카드 발급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많은 고위층 고객들과 안면을 텄습니다. 이들이 리 씨 회사의 주요 자금줄이 됐습니다.

이들에게 사업 자금을 대줬던 이 선생이 지역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리 씨는 그녀의 남편 츄 씨를 통해 소개 받았습니다. 회사 운영자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4백만 위안(7억2천만 원)을 빌려줬죠. 그런데 올 4월 상환 기한이 됐는데도 갚지 않았습니다.

리 씨를 만났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시장에 물품 공급량과 품목을 늘리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처음에는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리 씨의 사무실을 방문해 그녀의 컴퓨터에서 회사 자금 사정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천억 원의 돈이 돌고 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 규모면 내 돈을 갚는 것은 일도 아니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5백만 위안(9억 원)을 추가로 빌려줬습니다. 수렁에 깊이 빠져든 셈이었습니다. 이후 리 씨나 츄 씨나 더 만나기 힘들어졌습니다. 돈도 갚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얼마 전에 완전히 연락이 끊겼습니다."
투신
또 다른 투자자 마모 여사는 더 큰 피해를 봤습니다.
"리 씨가 시장에서 근무할 때부터 잘 알고 지냈습니다. 리 씨의 어머니가 교사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리 씨도 교육도 잘 받고 아주 똑똑했습니다. 회사를 차린다고 해서 2천만 위안(36억 원)을 빌려줬습니다. 처음에는 이자는 물론 원금도 약속했던 대로 잘 갚았습니다.

이후 7천만 위안(126억 원)을 더 빌려달라더군요. 리 씨는 자신이 일하는 시장 조합과 맺었다는 거액의 물품 공급 계약서도 보여줬습니다. 시장 조합의 인장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대출해줬습니다. 일이 생긴 뒤 알아보니 위조된 계약서였습니다. 현재 9천만 위안(160여억 원)을 받을 길이 묘연해졌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지난 2009년부터 올 9월까지 리 씨와 츄 씨, 리 씨의 회사 명의로 15개 은행과 거래를 텄는데 이 게좌들을 통해 오고 간 돈이 90억 위안, 우리 돈 1조6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리 씨의 회사가 짭짤한 이익을 누린다는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이렇게 어머어마한 돈이 돌고 있으니 자금주들은 아무 의심 없이 거액을 빌려줬습니다.

또 리 씨 부부는 대출자들에게 연리 24%라는 상당한 고리를 약속했습니다. 초기에는 이자와 원금을 잘 갚았습니다. 투자자들이 이들에게 점점 더 큰돈을 맡기게 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 리 씨 부부는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때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기한을 넘기기 일쑤고 연락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리 씨 부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상황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잘 나가는 사업가였는데 이 부부는 어쩌다 사기꾼으로 전락했을까요?

●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경찰이 현재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막을 속 시원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워낙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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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1) 수억 위안의 거금이 다 어디 갔을까?

말씀드렸던 대로 리씨 부부가 굴린 돈은 많게는 1조 원이 넘습니다. 이들이 십수 명의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만 수억 위안, 우리 돈 수백억 원대입니다. 그런데 이 천문학적인 돈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리씨 부부가 돈을 흥청망청 쓴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도, 몰고 다니던 차도 평범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수백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녔다거나, 명품 가방과 장신구를 걸쳤다는 증언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편취한 돈의 규모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지난해 미국에 여러차례 여행을 갔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래서 이들이 미국에 도피 이민을 가기 위해 해외로 거액을 빼돌려 부동산을 사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개 젊은 사업가가 그런 막대한 외화를 해외로 유출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거액의 도박을 하거나 투기를 했다는 말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찰과 피해자들은 돈의 행방을 쫓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의문2) 2개월 갓난아이는 어디에 있나?

앞서 썼듯이 리 씨는 올 10월 여자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이제 겨우 2개월 밖에 되지 않아 엄마 젖이 필요한 영아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리 씨 부부의 아기는 종적이 묘연합니다. 사건 직전 리 씨는 아기를 친척에게 잠시 맡겼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돈이 흘러간 단서를 찾기 위해 문제의 친척을 찾았지만 어디 있는 지는커녕 누구인지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기는 누가 데리고 있을까요? 무슨 이유로 숨겼을까요?

의문3) 시어머니는 왜 함께 죽었을까?

리 씨 부부와 함께 각각의 어머니도 목숨을 버렸습니다. 리 씨의 친정 어머니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얼굴 마담이었든, 바지 사장이었든 리 씨 회사의 대표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리 씨 부부의 범죄 행각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리 씨의 시어머니, 즉 남편 츄 씨의 어머니는 회사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츄씨 어머니를 본 적조차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요?

의문4) 단순히 빚 때문에 죽었을까?

물론 리 씨 부부의 편취 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다 갚을 방법은 없었을 듯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32살의 젊은 부부가, 가족들까지 이끌고, 목숨을 버릴 만한 일인지에 여러 사람들이 의문부호를 답니다.
빚 외에 다른, 더 큰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의혹을 제기합니다. 숨겨진 배경이 있거나 거물급 인물의 개입이 있지 않을까? 네티즌들이 꾸준히 올리는 질문입니다.

이런 모든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습니다. 리씨 부부와 그 가족의 비극은 탐욕에서 기인했다는 것입니다. 십수 명의 투자자들이 믿고 거액을 빌려줄 만큼 이씨 부부의 사업 조건은 좋았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착실하게 운용했다면 충분히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뭔가 허황된 길을 찾았습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동안 거액의 돈을 만지다 젊은 나이에 부모까지 이끌고 비극적인 결말을 봐야 했습니다. 일월애에 서서 화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들어볼 길 없는 그들의 속내가 사뭇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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