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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희망을 찾아서 한발 한발

[눈사람] 희망을 찾아서 한발 한발
<SBS 뉴스는 여러분의 조그만 정성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전하는 ‘눈사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시고 기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정성껏 전하겠습니다.>

● 나락에서 희망을 본 신 할머니

 서울 도봉구에 사는 67살 신 모 할머니는, 지난 가을 석유와 노끈을 마련하고 머리까지 삭발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생활고에 지쳐 옷가지를 모두 태운 뒤 노끈으로 생을 마감할 작정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장에 다니던 큰아들과 그럭저럭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해 왔던 신 할머니에게 불행이 닥친 건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 실직, 사기, 부상… 그리고 갈등

큰 아들이 다니던 회사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져 직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은 지난해 12월엔 큰 빚까지 지게 됩니다. 명의를 도용해 대포폰을 만드는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생활비 마련에 나섰던 그는 생활정보지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보내주면 생활자금을 준다’는 광고를 봤습니다.

단돈 50만 원의 생활자금은 그러나 매달 수십만 원의 핸드폰 요금으로 돌아왔습니다.

상황을 깨닫고 은행에 조치를 취했을 때는 이미 천만 원이 넘는 체납요금이 쌓여있었습니다. 신 할머니와 큰 아들의 유일한 수입은,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기초 노령 연금 2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이 돈은 매달 쓰지도 않은 핸드폰 요금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갔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해 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무료 급식업소로 나갔던 할머니는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을 다쳤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2달이나 앓던 할머니는 5월에야 가까스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큰아들은 좌절감에 우울증까지 찾아와 집에 틀어박혀 지내게 됐습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집기를 부수는 난폭한 행동을 보여 다툼도 이어졌습니다. 생활고에 아들과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신 할머니의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 견디기 힘든 생활고… 어렵사리 뻗은 손 

신 할머니는 그 연세의 대한민국 여성들이 대개 그렇듯 생활력이 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고혈압을 앓고 있었지만 꾸준히 부업을 하며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용돈을 벌어 왔고, 세금고지서가 나오면 하루도 늦지 않고 그날 바로 달려가 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갑작스런 실업과 자신의 부상으로 겪게 된 빈곤과 거동 불편은 당혹그 자체였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신 할머니는 지난 8월, 지자체에 도움을 청하기에 이릅니다. 주민센터를 통해 접수된 할머니의 구호 요청은 쌍문동 희망복지센터에 전달됐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복지센터의 통합사례관리사(*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의 가정을 발굴, 이들이 문제 해결과 자립을 돕는 역할.)가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찬 물에 머리를 감고 있었습니다. 가스는 1년째 끊겨 있었고 냉장고에는 빈 냄비만 들어 있었습니다. 냉장고의 전원은 꺼진 지 한참이나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오던 신 할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호의에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아들과 사례관리사가 상담을 하자 할머니는 날카롭게 짜증을 냈습니다. 자신의 딱한 처지가 이웃들의 입방아에 오를새라, 할머니는 상담할 때마다 급히 창문을 닫았습니다. 남의 도움이 처음이라 조심스라웠고, 한번 사기를 당해본 경험은 더욱 타인의 도움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희망센터에서는 긴급히 밀린 가스 요금을 지원하고 매달 30만 원의 ‘희망온돌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실직과 천만 원이 넘는 빚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 심해지는 아들과의 불화. 할머니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추석 때 둘째 아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할머니는 석유를 마련했습니다. 노끈을 구하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생활고와 이로 인한 가정불화, 그에 따른 우울증. 할머니의 생활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 희망을 찾아서 한 발짝, 또 한 발짝 

생의 끝자락에서 할머니를 구한 건 통합사례관리사의 지속적인 방문과 의료 지원이었습니다. 몇번 하다 말겠지 했던 관리사의 방문은 계속 이어졌고 따듯한 돌봄 덕에 다친 부위의 불편도 조금씩이나마 호전됐습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지자체와 종교단체의 지원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직업 상담을 하며 구직활동에 나선 아들이 마침내 직장을 구한 것입니다. 상담을 받던 아들은 관리사에게 왜 이렇게 자신들을 돕는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한순간 어려운 상황에 빠진 거예요.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회복할 것 같아서 돕는 거예요." 큰아들은 "이 은혜를 꼭 갚고 싶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관리사가 얼마 전 신 할머니에게 “이제 그만 노끈을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이제는 안 죽는다.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도와주는데 내가 왜 죽나?"며 웃음을 지을 만큼 여유가 생겼습니다. 

신 할머니네는 기초생활수급 가정도 아니고 집중 관리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지금도 꾸준히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관리사는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말고 옆에 있는 이웃들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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