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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뉴엘 초대형 사기극…신의 직장이 만들어 준 신화

[취재파일] 모뉴엘 초대형 사기극…신의 직장이 만들어 준 신화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직원 1인당 평균 연봉 9,295만 원. 정년보장과 자녀뿐 아니라 직원 개인에 대해서도 넉넉한 학자금 지원이 있는 곳, 바로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입니다.

 ‘신도 모르는 직장’, 또는 ‘숨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도 있습니다. 1인당 보수는 수출입은행에 크게 뒤지지 않는 8,772만원. 역시 정년보장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지만 수은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서 크게 견제 받지 않는 곳, 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높은 급여 조건뿐만 아니라 수출입, 즉 무역이라는 영역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에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거나,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서 주는 형태로 기업의 자금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절대적 영향력입니다. 그래서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은 이들을 ‘슈퍼 갑’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들 슈퍼 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신화가 된 기업이 있습니다. 2008년 7백억 원대였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1조2천7백억 원대로 늘어난 기업. 매출 대부분을 수출로 달성해 신화로 불렸던 기업. 그래서 두 슈퍼 갑이 자신들 사업의 성공 사례로 꼽았던 기업. 하지만, 현재는 사기 매출로 사실상의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가전업체 모뉴엘입니다.

● 뇌물과 사기로 조작된 모뉴엘 신화

 ‘신화’는 땀과 눈물의 결과물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작된 신화는 언젠가는 민낯을 드러냅니다. 부패와 비리로 점철된 더러운 모습을 하고 말이죠. 모뉴엘 신화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허위 매출, 대출 돌려막기 등 조작된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온갖 수법이 동원됐습니다. 그리고 이 수법이 계속되도록 도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을’을 도운 ‘슈퍼 갑’ 수은과 무보의 직원들입니다.

 슈퍼 갑이 을을 전폭적으로 돕는 상황은 일반적인 작동방식과 차이가 납니다. 이럴 경우에는 비정상적인 수단이 사용되기 마련이죠. 현재 모뉴엘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수은과 무보 직원은 4명입니다. 모두 모뉴엘에 대한 대출이나 지급 보증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소위 갑질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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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 확대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수은 전 비서실장 서 모씨. 서씨는 2년 전에는 모뉴엘을 담당하는 부서의 부서장이었습니다. 2011년 3월 기준 28억 원이었던 수은의 모뉴엘에 대한 대출은 서 씨가 부장으로 재직한 이후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이번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는 1,135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이 과정에 서 씨 밑에서 모뉴엘 담당 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또 다른 직원도 개입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직원 통장에는 모뉴엘 임원 명의로 1억 원 상당이 입금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무보, 견제 받지 않는 숨은 신의 직장의 막장 드라마

 수은의 이런 비리행태는 그래도 무보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입니다. 무보의 경우 해외 도피, 정기적 상납과 같은 막장 드라마에서나 봐온 온갖 비리행태가 모두 등장합니다.

 우선 해외 도피극을 벌이고 있는 한 부장 이야기입니다. 모뉴엘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 나흘 전인 지난 10월 16일. 무보의 한 부장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해외로 출국했습니다. 몇 년 전 모뉴엘 보증 업무 담당 팀장이었던 정 모씨였습니다. 정씨가 팀장을 맡은 이듬해 무보의 모뉴엘에 대한 지급 보증은 8백만 달러에서 4천 9백만 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속도가 너무 빠르죠. 검찰은 급속히 불어난 지급 보증에 정씨가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정씨 신병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정씨 외에 모뉴엘의 대출 사기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2명이 더 있습니다. 이 중 임원을 지낸 이 모 이사의 경우는 그 행태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퇴직한 이후에도 현직 무보 직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주겠다며 모뉴엘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받고, 자녀 취업 청탁까지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혐의가 사실이라면 무보의 전직 임원이 청탁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부장급뿐만 아니라 무보 임원까지 대출 사기극에 연루되면서 무보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무보 최고위층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국책 금융기관의 무책임과 몰염치

 수은과 무보 직원들이 모뉴엘에서 돈을 받아 챙길 수 있었던 건 자신들이 가진 과도한 권한 때문이었습니다.과도한 권한은 남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감시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잘못 사용된 권한에 대해서는 책임 추궁이 필요하죠. 더욱이 그 권한은 국민의 세금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이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엄격한 견제와 통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에 실패했을 때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겁니다. 그런데 수은과 무보는 어떨까요?

“올 초부터 책임한도를 대폭 증액해 달라는 모뉴엘 측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으나, 금년 들어 동사(모뉴엘)에 대한 공사의 보수적인 보증한도 관리에 따라 책임한도 총액은 '13년 말 USD287백만에서 '14년 9월말 현재 USD284백만으로 감소하였습니다.”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그 여파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던 10월 30일, 4천억 원에 가까운 돈을 떼이게 될 무역보험공사가 내어놓은 해명자료입니다. 부모님 몰래 돈을 가져가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자식은 죄송하다고 반성하는 게 먼저일 겁니다. 만약 적반하장 격으로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조금은 남겨뒀다고 큰 소리를 치면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무역보험공사는 국민 혈세 4천억 원을 날리게 될 상황에서 그래도 올해는 자신들이 잘 해 피해는 줄였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 전세자금대출 심사보다 못한 대출 심사

 이런 몰염치와 무책임에 더해 무능까지 더해졌습니다. 수천억 원을 보증서면서도 그 근거가 된 모뉴엘의 수출 실적은 제대로 검증 한번 하지 않았던 게 무보였습니다. 모뉴엘의 재무제표만 확인했었도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전세자금대출 심사도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무보는 모뉴엘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시중은행으로부터 통보를 받고서야 겨우 파악했습니다.

국민의 혈세 수천억 원이 날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모뉴엘의 초대형 사기극은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세간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모뉴엘 경영진과 수은, 무보 직원 몇 명이 사법처리 받는 선에서 이번 사건은 묻힐 공산이 큽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의 직장 직원들이 자신들의 권한의 심각성과 엄중함에 대해 각성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권한은 제 2, 제 3의 모뉴엘 사태를 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국민혈세 5천억 원이 날아갈 이번 사건이 아무런 교훈도 없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무능하고, 책임지지 않은 이들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이 옳은 지, 그리고 그 권한을 어떻게 분산시키고 통제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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