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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자스민 의원이 '그 법안'을 발의했다면?

국가의 품격을 다시 생각한다

[취재파일] 이자스민 의원이 '그 법안'을 발의했다면?
-인터넷이나 SNS에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글이 넘쳐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최근 '오늘의 유머'에서 본 글은 새삼스럽다.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하지도 않은 법안을 놓고 비난받고 있는 행태에 대해서는 뉴미디어부의 임찬종 기자가 잘 정리했다.( 임 기자의 취재파일: 이자스민 의원이 왜?...한국판 이민법 논란)

사실은 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었다. 만약 이자스민 의원이 그 법안을 발의했다면 반응은 어땠을까? (어차피 곧 발의할 예정이니 알 수 있을 거다.)

-9년 전 생각이 났다.

2005년 4월 말, 나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기획 기사를 준비 중이었다. 궁리하다 당시만 해도 새롭게 떠오른 사회 문제였던 이주 노동자 문제와 연결지으면 어떨까 싶었다. 관련 단체를 수소문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경기도 남양주의 한 주택가로 찾아갔다.
 
이주노동자의 부인과 아이가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둘 다 불법 체류 신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집 밖으로 제대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숨어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은 자그마한 개조 한옥이었는데 대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분명 내가 찾아가기로 한 시간대에 집에 있을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를 어쩐다... 고민하다 월담했다. 그리고는 여기다 싶은 방문을 두들겼다.

어디 숨을 곳도 없는 단칸방 안에, 엄마와 아들 둘이 웅크리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8살 자미와 자미의 엄마 였다. 내가 올 것이란 얘기는 들었지만 혹시 몰라 숨어있었노라고 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을 반짝거렸던 자미는 8살, 엄마보다 한국말을 더 잘했다. 한국 아이였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째였을 것이다. 하지만 잡혀갈까 무서워 학교에 못 간다고 했다. 

그때 썼던 기사는 "이들도 소중히 보듬어야 할 우리 아이들"이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됐다.
=> 당시 기사 보기: 집중/블랑카의 아이들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은 사실 18대 국회에서도 이미 발의된 바 있다. 법안 이름은 [이주아동 권리보장법], 대표 발의한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소속 김동성 의원이었다.

발의 전 이런 법안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취재해 기사를 썼다. 그에 앞서 베트남 아이 홍이를 만났다. 2010년 3월의 홍이도 8살이었다. 기사가 나간 날은 3월 2일, 한국 전역에서 홍이 또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이었지만 홍이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역시 홍이도 불법 체류 중이었다.

당시 기사 보기 => 불법 체류자 자녀들의 호소 "학교 가고 싶어요"

그때 법안의 제안 이유와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안이유

우리 사회는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이행되고 있고, 농촌인구의 20% 이상이 국제결혼으로 인한 다문화가정으로 구성되는 추세이므로 다문화사회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마련될 필요가 대두 되고 있는 상황임.
하지만 속인주의 위주의 현행 법과 제도로는 이주노동자 특히 이주아동에 대한 법적 관리 및 보호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임.

이로 인해 이주아동이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으며, 무국적 신생아가 존재하여 2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법적 관리 및 보호없이 방치되는 상황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음.
이에 우리나라가 1991년에 비준한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라 다문화사회에 어울리는 이주아동의 권리 보장 및 보호 제도를 도입하여 이주아동과 관련된 인권의 사각 지대를 해소하려는 것임.



주요내용
가.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라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이주아동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 없는 생활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함(안 제1조).
나. “이주아동”의 정의를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부모를 둔 아동으로서 국내에서 90일 이상 거주한 자로 함(안 제2조).
다. 이주아동이 부모의 국적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주아동을 포함한 아동의 이익이 국가 등의 아동 관련 정책 및 활동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것을 이 법의 기본이념으로 함(안 제3조).
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주아동에게 교육, 의료급여, 최저생계 유지 및 보육 등을 지원하도록 하고, 국내 적응을 위한 교육기회 등을 제공하도록 함(안 제5조부터 제9조까지).
마. 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에 체류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출입국관리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체류를 허가할 수 있도록 함(안 제10조).
바. 이주아동의 권리 보장 및 보호에 관한 중요 사항은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따른 외국인정책위원회의 심의·조정을 거치도록 함(안 제12조).
사. 이주아동의 권리 보장 및 보호에 관한 활동을 수행하는 민간단체 등에 대하여 해당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함(안 제14조).

그래픽_국회
10명만 서명하면 발의가 가능한데 이 법 제정안에 서명한 의원은 무려 43명이었다.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었으나 신학용, 오제세, 유성엽, 이진삼 등 다른 당이나 무소속 의원도 눈에 띈다. 원내대표를 거쳐 지금 교육부의 수장을 맡고 있는 황우여 장관 이름도 보인다.

강명순 강승규 권택기 김광림 김동성 김성동 김성식 김옥이 김장수 김정권 김충환 김학송 김효재 나성린
배은희 서종표 손범규 신상진 신학용 심재철 오제세 원희목 유기준 유성엽 유승민 윤석용 이범래 이애주
이영애 이정선 이종혁 이진삼 이철우 이춘식 이학재 정두언 정양석 조진형 진성호 최구식 최인기 허원제
황우여


법안은 다 마련됐지만 발의하기까지 이후에 7개월이나 더 걸렸다. 2010년 10월 발의됐고 법사위에 상정돼 법안소위에 회부돼 심의 절차를 거쳤다. 그러다 논의는 어떤 이유에선지 중단됐고 2012년 18대 국회가 막을 내리며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2013년 이자스민 의원이 주도해 이 법안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기엔 시민사회단체 20곳이 참여한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추진 네트워크'가 함께 했다. 지난 4월에 공청회를 열었고 이제 법안 발의 직전까지 왔다.

법안 발의 이후에 19대 국회가 마감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1년 4개월, 2010년보다도 오히려 남은 시간은 적다.  
교육부에선 기존에 있는 법으로도 교육권 보장이 가능한데 굳이 새로 법을 만들어야 하냐는 입장인 듯하고, 법무부는 현재 불법 체류를 규정한 출입국관리법과 배치되기 때문에 반대 의사가 여전한 듯하다. 여론은?... '오늘의 유머 글'과 그에 대한 반응에서 보듯, 그리 호전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과연 이번에 발의되는 법안은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가?

이 글은 2010년 3월 기사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의원의 인터뷰로 마무리하고 싶다.

[김동성/한나라당 의원 : 불법체류이든 아니든, 그리고 국적이 어디든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 만큼은 적어도 기본적인 교육을 시켜주는 것, 우리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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