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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와대 해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

[취재파일] 청와대 해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장관의 폭로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유 장관은 최근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자신을 청와대 집무실로 부른 뒤 수첩을 꺼내 문체부 국장과 과장을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며 국장과 과장의 교체를 지시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대충 정확한 정황 이야기다"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서 거론된 국장은 노태강 체육국장입니다.

 과장은 직속 부하인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입니다. 유 장관의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을 사실상 경질시켰다는 것입니다. 유 장관은 또 "그래서 BH(청와대)에서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 있으면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할 텐데"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언급은 정윤회씨 딸(승마선수)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자 정 씨가 청와대를 통해 승마협회를 감사하도록 영향력을 미쳤고, 그럼에도 문체부 감사가 정 씨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자 담당간부에 대해 좌천성 인사를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유 장관의 폭로가 나오자 청와대가 발끈하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1일 유 장관 대면 보고 때 보다 적극적으로 체육계 적폐 해소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따라 유 장관이 일할 수 있는 적임자로 인사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해 5월 29일 태권도장 관장이 편파 판정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이후 체육계 비리가 주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며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해당 수석실을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체육계의 오랜 적폐를 해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민 대변인은 또 "지난해 7월 23일 국무회의에서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이 체육단체 운영 비리와 개선 방안에 대해 보고했지만 당시 보고서의 내용이 부실했고 체육계 비리 척결에도 진척이 없어 적폐 해소 과정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며 "이후 박 대통령은 민정수석실로부터 그 원인이 담당 간부 공무원들의 소극적이고 안일한 대처에 따른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를 오랫동안 출입하며 취재해온 저로서는 유진룡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유진룡 박 대통령_
1. 대통령이 경질했나? 유장관이 경질했나?

 2013년 7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체육계 비리 척결을 주문합니다.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국무회의에서 체육계 비리를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같은 해 8월9일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는 ‘자정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참석한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삼복더위에 갑자기 왜 사람을 불러내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부랴부랴 ‘자정결의대회’를 급조할 만큼 체육계에는 찬바람이 불었던 것입니다. 8월 21일 박 대통령이 유 장관을 불러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을 직접 거명했습니다. 대통령이 특정 부처 국장과 과장의 실명을 들며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엘리트 공무원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유 장관이 박 대통령의 의중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유 장관은 일단 버텼습니다. 바로 다음 날 오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스포츠비전 2018 현장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유장관은 노태강 체육국장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노 국장은 ‘스포츠비전 2018’을 설명하며 2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이로부터 나흘 뒤인 8월26일 오전 노 국장은 서울 창경궁로 문체부 기자실에서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각종 체육단체 운영 실태 전반에 대한 감사에 나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날 국내 방송과 신문, 인터넷 매체는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만약 유 장관이 박 대통령의 말을 듣고 노 국장을 경질시킬 의도가 처음부터 있었다면 그 직후에 열린 주요 행사에 함께 참석하고 기자회견장에서 정부 정책을 공식 발표하도록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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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 장관은 왜 두 사람을 대기발령했나?

 2013년 9월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인사 발령을 공표했습니다.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은 직위를 상실한 채 대기발령이 났습니다. 인사권자는 형식상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이었습니다. 10일 정도 버티던 유 장관은 왜 결국 손을 들고 말았을까요? 노 국장이 체육단체 감사 착수를 선언한 지 2일 뒤인 8월28일 서미경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격 경질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노 국장과 진 과장을 물러나게 하라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두 사람을 감싸다가는 일종의 ‘항명’으로 비쳐져 유 장관 본인이 사퇴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인사 조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6개월 재직하다 그만 둔 사람이 적임자?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1일 유 장관 대면 보고 때 보다 적극적으로 체육계 적폐 해소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따라 유 장관이 일할 수 있는 적임자로 인사 조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노태강 국장의 후임자는 박위진 체육국장이었습니다. 발령일은 2013년 9월2일. 그런데 박위진 국장은 2014년 3월2일에 물러나고 현 우상일 국장이 체육국장으로 새로 임명됐습니다.

 인사 발령을 낸 사람은 유진룡 당시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박위진 국장은 체육국장으로 6개월 밖에 일하지 못했습니다. 청와대 발표대로 유 장관이 일할 수 있는 적임자로 인사 조치했다면 왜 6개월 만에 또다시 보직 교체를 단행했을까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결국 유 장관이 어쩔 수 없이 노태강 국장을 경질한 뒤 다급하게 후임자를 물색하다 보니 적임자 여부에 대한 심사숙고 없이 인사 발령을 냈든지 아니면 현 우상일 국장을 반드시 체육국장에 앉혀야 하겠다는 모종의 압력이 작용했는지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4. 노태강과 진재수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나?

 일부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노 국장과 진 과장의 잘못을 지적하며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보도했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는 가타부타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노태강 체육국장은 제가 문체부 출입을 하면서 오랫동안 지켜본 인물입니다. 2012년 2월 체육국장에 부임한 이래 스포츠 승부 조작 척결에 앞장섰고 2013년 7월에는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정부 보증서 위조 사건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2013년 2월말 대한체육회장 선거 때도 중립을 지킬만큼 원칙을 준수하고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는 간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 관계자에 따르면 문체부 내 인사 평가에서도 상위권일 정도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진재수 과장은 2013년 3월29일 체육정책과장으로 부임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무슨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대통령이 특정 부처 국장과 과장의 문제점을 직접 적시하며 사실상 경질을 지시하려면 ‘뇌물 수수’나 ‘체육단체와의 부정한 결탁’ 같은 구체적 사례가 있어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이들이 체육계 비리 척결에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7월23일이고 두 사람의 잘못을 지적한 것은 8월 21일입니다. 즉 1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한 달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되고 이것이 경질의 사유가 된다면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 보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이번 사건은 문화체육관광부에 관계된 것입니다. 누구보다 문체부 공무원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체부 간부들에게 직접 한번 물어 보았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문체부 고위 관계자는 “노태강과 진재수 두 사람이 승마 파문으로 경질됐다는 것은 체육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대한체육회 간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승마 사건이 아니고서야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노태강 국장이 어느 체육인, 또는 단체와 결탁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누군가 잘못된 보고서를 높은 분에게 올린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습니다. 연말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유진룡 전 장관의 진실 공방은 물론 유 장관을 한때 모시던 김종 현 차관이 법적 소송까지 거론하며 일전불사할 뜻을 보이는 행태는 국민을 무척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체육 정책을 관장했던 노태강-진재수 두 사람은 현재 체육과 아무 관련이 없는 부처에서 은둔하듯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노태강 전 체육국장은 자신의 휴대전화 전원을 꺼놓은 채 일절 외부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청와대의 해명이 국민을 설득시키고 공감을 주려면 노태강, 진재수 두 사람의 죄와 실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죄인 10명을 잡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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