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하나회도 아니고 서금회라니…

[취재파일] 하나회도 아니고 서금회라니…
2014년 12월 1일 오후 6시 46분. 우리은행 측은 이순우 행장이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모든 임직원에게 보냈다고 알려온다.
 
사랑하는 우리가족 여러분, 은행장입니다.
 
민영화라는 최대의 숙명적 과제를 안고 은행장 소임을 맡은지 벌써 3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우리금융그룹 내 계열사 매각 등의 순차적인 민영화 작업 끝에 지금 이순간까지 왔습니다.
 
최근 민영화의 마지막 단계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고객님들과 우리사주조합 결성을 위해 애쓴 노동조합 그리고 함께 동고동락해왔던 직원 여러분들 덕분에 소수지분매각 청약율 130%라는 높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해온 민영화를 위한 발자취를 돌이켜 볼 때 이제 저의 맡은바 소임은 다한 것으로 여겨져, 회장 취임시 말씀드렸던 대로 이제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 생각됩니다.
 
우리은행 고객님과 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4년 12월 1일 이 순 우 올림

 
한 마디로, 유력한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 연임이 유력하다고 거론됐던 후보가 링에서 수건을 던진 순간. 면접 볼 대상을 압축할 차기 행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바로 2일 예정돼 있었다. 후보자들에 대한 면접이 실시되는 5일에는 차기 행장의 윤곽이 드러날 터였다.
 
고약한 것은 타이밍이다. 이 날 한 조간 신문은 ‘우리은행 차기 행장으로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인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내정됐다’는 요지의 보도를 했다. “(이광구 부행장의 행장 내정에 대해) 일부 반발이 있고, 무리한 인선이라는 지적”은 양념. 이순우 행장으로는 이 기사가 나온 지 하루도 안 돼 백기를 든 모양새다.
 
물론 이 보도는 당일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 정말 서금회가 세기는 세구나! 실체가 있구나!

- 사전 내정설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선임 과정이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었건만, 또 관치인가. 官은 정녕 눈치를 안 보는가.

- 이순우 행장과 이광구 부행장을 한꺼번에 아웃시키려는, 제3의 후보의 언론 플레이 아닐까?

서금회. 이번 정권 들어 금융회사 수장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동문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이 잇따라 선임되면서 달아오른 용어.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 등이 서금회 멤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은행 캡쳐_64

그런데 이순우 행장의 연임 포기가 백기투항이든, 애매한 여론에 대한 본인의 과잉 해석이든, 다른 개인 사정이든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몇 년 전 금융당국의 고위 인사가 이런 얘기를 한 기억이 난다.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였다. ‘공적자금 회수’나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원론적 명분을 언급하고 나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人事가 萬事라는데 (우리은행이) 주인없는 은행이라고 인사 때만 되면 중간 간부급부터 도처에서 민원이 쇄도한다. 이런 은행이 제대로 굴러가겠냐? 그런 고리를 끊는 것만 해도 중요한 민영화의 목적이다” 정부가 주인인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인사 민원이 더 극성이고, 외압에 더 흔들린다는 뜻. 본인도 어떤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어디 옛 우리금융지주 뿐이랴. 올해만해도 KB금융지주, 은행연합회, 우리은행까지 인사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밝힌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금융관련 순위는 144개 국가 중 금융서비스 이용가능성 100위, 벤처자본 이용가능성 107위, 대출의 용이성 120위, 은행건전성 122위다.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다. 국가경쟁력 순위의 객관성,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항상 있어 왔지만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나라의 금융경쟁력은 후진국 중에 후진국 수준이다.

아무리 과거로의 회귀가 특기인 정권이지만, ‘하나회’도 아니고 ‘서금회’가 논란이 되는 수준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