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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선 실세' 논란…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취재파일] '비선 실세' 논란…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 대통령 측근들의 감시자, 특별감찰관

특별감찰관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는 대신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이후 높아진 대검 중수부 폐지 요구를 수용하고 중수부가 수행했던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측근, 대기업에 대한 사정기능은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에게 넘겨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12월에 당선됐다. 국회는 2014년 2월 상설특검법과 특별감찰관법을 통과시켰다.

[** 어떤 이들은 대검 중수부의 사정 수사 기능에 대해 코웃음을 친다. 정권의 적에 대해서만 추상같았지 권력을 향해 칼을 겨눠 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정권 말이 되면 중수부는 현정권 실세들을 향해 칼을 휘둘러왔다. 김염상-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 아들이 수사를 받았고,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의 멘토와 친형이 구속됐다. 잘 나갈 때 선을 넘으면 나중에 철창 신세를 질 수있다는 긴장감을 주는 역할을 중수부가 수행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세들이 권력을 남용하다 정권 말에 구속되는 일은 매번 반복됐다.]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은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인척과 수석비서관 이상의 대통령 비서실 공무원이다. 쉽게 말해 대통령 측근이다. 특별감찰관은 수사권이 없다. 대신 비리 혐의를 포착하면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할 수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이 있긴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나 옛 경찰청 사직동팀도 측근 비리 첩보를 수집하고 내사했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기구가 대통령 측근을 감시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특별감찰관제의 특징은 독립성 보장이다. 대통령은 국회의 후보 추천을 받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만 해임할 수는 없다. [**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거나, 신체적·정신적 질환이 있을 경우엔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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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달 넘게 공석인 특별감찰관…그 사이 터진 '비선 실세 논란'

그러나 법이 시행된지 5달 넘게 지나도록 초대(初代) 특별감찰관 자리는 비어있다. 지난 7월 11일 여야가 함께 구성한 국회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위원회는 후보 3명을 발표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부회장을 역임한 민경한 변호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재직 당시 광우병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기소 방침을 거부하고 사직한 임수빈 변호사, 그리고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출신 조균석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였다.

문제가 생겼다. 여당 측이 추천한 조균석 교수가 특별감찰관 후보직을 고사했다. 또 새누리당은 민경한 변호사가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던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으니 후보를 재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야가 합의해 후보자를 추천했는데 이제와 재선정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국회는 아직까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지 못하고 있다. 시작도 못해본 특별감찰관제는 벌써 잊혀진 이름이 됐다.
정윤회 캡쳐_640
그 사이 이른바 '비선 실세 논란' 파문이 터졌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됐다. 청와대 측은 보고서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며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 경영진과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보고서 유출자에 대한 수사도 의뢰했다.

그러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왜 정윤회 씨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또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무엇을 근거로 그런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는지 대해선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 다툼, 일종의 궁중암투(宮中暗鬪)로 해석하는 시각도 널리 퍼져있다.

특별감찰관은 바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물론 정윤회씨가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인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인척이나 수석비서관급 이상의 청와대 비서실 공무원은 아니다. 이른바 '십상시 十常侍' 로 지목된 인물들도 수석비서관급 이상은 아니다. [** 현행 특별감찰관제의 맹점이다.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인척이나 수석비서관급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대통령 측근이 될 수 있는데도 현행법은 감찰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심지어 최경환 경제부총리조차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특별 감찰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 바있다.]

그러나 '비선 라인'이 청와대와 정부부처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면 특별감찰관이 조사할 수 있다. 국정에 개입하기 위해선 수석비서관급 이상을 통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석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공무원이 부당한 영향력을 받아 직무를 수행했다는 의혹이 있다면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이다.

특별감찰관은 감찰 대상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감찰대상자 이외의 사람에 대해서도 자료제출이나 출석·답변을 요구할 수 있다.[**특별감찰관법 18조] 마찬가지로 대통령 친인척과 관계돼 있다는 의혹이 있을 경우에도 감찰대상이 아닌 사람을 조사할 수 있다. 비선 의혹이 사실이라는 말이 아니다.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문제가 커지기 전에 특별감찰관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특별감찰관이 임명돼 제 역할을 했다면 잡음을 애초에 차단할 수 있었다.

● 최소한의 긴장감도 줄 수 없다면…

특별감찰관 공백 사태가 청와대 책임만은 아니다.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 국회 책임이 크다. 사실 이제는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 그 공백을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으로 메우겠다고 공약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검 중수부가 해체되면서 정권 실세들에 대한 사정기능은 현저히 허약해졌다. 그 역할을 일부 대신해야 할 특별감찰관은 5달 넘게 공석이다.

대통령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청와대 주변의 여러 잡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정권 실세들에게 최소한의 긴장감을 줄 조직도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정권 말마다 반복됐던 불행한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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