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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늘은 예강이의 10번째 생일입니다

[취재파일] 오늘은 예강이의 10번째 생일입니다
"엄마, 쉬, 쉬" 예강이가 응급실 병상에서 엄마에게 말했다. "응, 뭐라고?"  "엄마, 쉬, 쉬"
예강이는 침대에 소변을 봤다.
"(예강이가) 수혈을 하고 있어서 묶여 있었어요. 그래서 화장실에 갈 수 없었어요." 최윤주 씨가 말했다.
최윤주 씨는 침대 시트를 갈고 예강이의 옷을 갈아입혀줬다.
"그게 예강이랑 마지막 대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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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강이는 속 깊은 딸이었다. 우리 나이로 11살, 만으로는 10살이 안됐지만 2살 위 오빠보다 어른스런 면이 있었다.
"제가 조금 늦게 퇴근하면 (예강이가) 간식을 만들어놓고 기다렸어요. 치즈를 유선지에 올려놓고 전자렌지에 돌리면 빵빵하게 불면서 과자처럼 되더라고요. 책에서 배웠대요. 그리고 '저녁 안 드셨죠. 이거라도 드세요' 하고 편지 써놓고…"

엄마 최윤주 씨는 예강이가 속을 썩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쿠키를 만들면, 예쁘게 만들어서, 그게 얼마나 먹고 싶었겠어요. 그래도 안 먹고 꾹 참았다가 엄마부터 보여주고 엄마 먹여주고…"
예강이 이야기를 할 때면 최윤주 씨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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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1일. 예강이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코피 났어. 근데 막내 이모한테는 말하지 마." 일하는 최윤주 씨 대신 최 씨의 동생(막내 이모)이 예강이를 보살피고 있었다.
"왜? 이모한테 말해야지."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창피해"
"에이~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창피한 거 아냐."

최윤주 씨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해보라고 부탁했다. 동생은 그냥 코피라며 지혈을 해줬다고 말했다.
"그래? 그래도 언니가 불안하니까 동네 병원에 좀 가볼래?"
동네 의원에서는 성장기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혹시 몰라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증상이라고 했다. 이미 지혈이 다 됐다며 혹시 지혈한 게 빠지면 내일 다시 와보라고 의사가 말했다. 돈도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최윤주 씨는 내과 예약을 잡았다. 그러나 점심 시간 후 동생이 전화를 걸어와서 예강이가 아프지 않다고 했다면서 내과를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수요일 저녁. 최윤주 씨가 집에 돌아오자 예강이는 잠에서 깨 일어났다. 화장실로 가던 예강이가 잠시 비틀거렸다.
"어머, 예강아 왜 그래?"
"응. 엄마 잠시 어지러웠는데 이제 괜찮아. 자고 나면 좀 괜찮을 것 같아."

그러나 예강이는 새벽 3시에 잠에서 다시 깨어났다. 코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최윤주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큰 병원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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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강 4
"예강이는 꿈이 간호사였어요."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예강이의 꿈은 수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예강이가 꽤 오래 간직했던 장래 희망이었다. 
"'예강아 여기 다쳤어' 제가 그러면 와서 밴드 붙여주고. 밴드소녀라고 제가 말할 정도로. 약통 가지고 다니고 밴드 붙여주고, 이런 거 되게 좋아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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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최윤주 씨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지금 상황이 좀 안 좋아지고 있어요. 예강이가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의사들과 간호사 여러명이 예강이 병상 주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최윤주 씨는 예강이 옆으로 갈 수 없었다. 커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 오후 4시 50분쯤. 간호사와 의사가 더 이상 심폐소생술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예강이한테 가서 인사하시죠."
최윤주 씨가 커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예강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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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3일 오전 9시 48분, 대형 종합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의사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고 최윤주 씨는 주장했다.
"(피검사를 하더니) '빈혈이 심한데 2-3일 입원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어머니.'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안심을 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근처 병원에 갔다가 구급차를 타고 대형 종합병원으로 다시 이동하는 내내 불안했던 최윤주 씨는 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터에 있던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나 지금 갈까?'
'아냐, 예강이 2-3일만 있으면 퇴원하면 된다니까 오지 않아도 돼요.'

CT를 찍었다. 의사는 CT에 약간 음영이 보인다고 의사가 말했다. 뇌수막염이 유행이니까 요추천 검사(신경계통 질환을 진단하는 데 필요한 척수액을 얻기 위해 허리뼈 사이에 긴 바늘을 찔러 넣는 것)를 해보자고 말했다. 최윤주 씨는 일단 아이를 안정시킨 다음 검사를 하자고 의사에게 말했다. 병원에선 그럼 수납부터 하고 오시라고 했다.

최윤주 씨가 수납을 하러 간 사이 지나가던 다른 의사가 예강이 얼굴을 보더니 수혈을 해야된다고 예강이와 함께 있던 최 씨의 동생에게 말했다. 예강이는 수혈을 받았다. 병원에 도착한 지 1시간 쯤 뒤였다. 수혈을 받다 예강이는 침대에 소변을 봤다. 화장실에 가려고 했지만 수혈을 받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수혈이 끝나자 병원에서는 요추천 검사 실시 준비에 들어갔다.

"약간 위험한 거라 외부에서 전문의가 와서 이 시술을 한다고 저희한테 말했어요. (그리고) 저희한테 동의서 쓰라고 그랬어요."
최윤주 씨는 전문의가 와서 시술을 할 거라고 병원이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병원은 "외부 전문의가 와서 한다는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요추천자의 목적과 시술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은 후 시술을 시행하였다."라고 주장한다.)

간호사가 커튼이 쳐있는 병상 안으로 예강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예강이가 많이 불안해하는데 제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안 될까요?"
"보호자는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최윤주씨는 커튼 밖에 서있었다. 의사가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예강이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첫번째 비명 소리 이후 간호사가 침대 시트를 가지고 커튼 밖으로 나왔다고 최윤주 씨는 말했다. 피가 났다고 했다. 두번째 비명 소리가 들렸다. 처음보단 소리가 약했다.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다. 의사가 누군가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환아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어요. 네? 멈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들렸어요. 그때부터는 의사들이 여러명 와서 심폐소생술을 했어요." 최윤주 씨가 말했다.

심폐소생술은 2시간 이상 계속됐다. 예강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1월 23일 오후 4시 48분. 예강이의 사망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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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은 하지 않았다.
"(부검을 하지 않은 것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면 제 꿈 속에 (요즘도) 예강이가 한 번씩 나타나줘요. 근데 정말 아프지 않고 웃으면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예쁜 모습으로 찾아왔다 가기 때문에… 정말 잘했다. 그 당시 그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최윤주 씨가 말했다.

최윤주 씨는 예강이가 죽은 이유를 말해달라고 병원에 요구했다. 병원은 의료사고는 아니라고 말했다. 예강이가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고 병원은 설명했다. 최윤주 씨는 예강이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숙한 의료진이 요추천자를 무리하게 시술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병원은 수혈을 실시했기 때문에 요추천자를 실시할 수 있는 상태였고,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며, 요추천자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술이라고 맞섰다.

최윤주 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도 멀쩡했던 아이가 병원에 가서 숨을 거뒀다. 병원에서는 요추천자 검사 이전에 대량의 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미 아이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척추뼈 사이에 바늘을 꽂는 시술인 요추전자를 실시하기에 무리가 없는 상태였다고도 말했다. 최윤주씨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다 필요 없고 (요추천자를 했던) 그 의사에게만 묻고 싶다고 그랬어요. 양심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말 한마디만 해달라. 우리 예강이가 왜 떠났는지, 어떻게 떠났는지 한 마디만 해달라. 여자 의사였어요. 그 의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원무과 그 사람이 할 말 없다고 딱 (의사 팔을) 잡고 나갔어요."
병원은 추가로 알고 싶은 게 있거든 법적 절차를 밟으라며 더 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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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씨는 인터넷을 검색해 환자단체연합회라는 곳을 찾았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의 조정 절차를 밟아보라고 최윤주씨에게 권했다.중재원은 비의료인 3명(법조인 2명, 소비자권익위원 1명)과 의료인 2명으로 구성된 감정단이 사망과 의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감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손해배상 유무와 정도를 결정하는 공공기관이다.예강이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알고 싶었던 최윤주 씨는 주저 없이 중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2주 뒤 중재원으로부터 신청이 각하됐음을 알리는 서류가 날아왔다.
전예강 관련 의료분
병원의 거부 때문이었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피신청인, 즉 병원이 2주 안에 병원이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중재 참여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 절차를 실시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은 중재 절차 참여를 거부했고 조정 절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우편으로 등기가 왔더라고요. 각하 통지서라고. 너무 저희를 기만하는 것 같았어요. 왜냐면 저희한테 법대로 하라고 해서 처음으로 알아보게 된 게 의료분쟁중재원인데 중재원조차도 병원에서 거부를 해서…"

최윤주 씨는 이럴 거면 애초에 중재원을 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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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강이가 떠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어린이날이었다. 멀지 않은 곳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최윤주 씨는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다른 가족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예강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서울로 올라갔다. 어버이날이었다. 예강이가 기념일마다 만들어줬던 그림 카드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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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가 옆에 있었는데 애 엄마가 하루 종일 사진 보고 울기만 하는거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내가 환자단체연합회에 전화를 했어. 뭐라도 해야겠다고. 그랬더니 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피켓팅이라도 하실래요?' 그러더라고요. 그거라도 하겠다고 했어." 미국에서 건너온 최윤주 씨 언니의 말이다.

최윤주 씨는 피켓을 만들어 병원 앞으로 갔다. 병원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옆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던 환자단체연합회 회원에게 카메라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병원은 경찰에 최윤주 씨를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1인 시위로 보인다며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냥 돌아갔다. 그날부터 최윤주 씨는 매일 병원 앞에서 시위를 했다. 딸의 사망 원인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의 동의 없이 중재 절차를 시작할 수 없게 규정한 의료분쟁조정법의 개정도 요청했다.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예강이의 생전 사진과 동영상도 올렸다. 의료기록도 일부 공개했다.

▶ 난예강이 홈페이지 바로가기

"남편은 생각 같아서는 너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하고 싶대요. 하지만 병원 앞에 시위라도 갔다 오고 나면 제가 막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 보면 '내가 막을 일은 아니구나.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회복돼서 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막을 일은 아니구나'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라도 상처를 덜어낼 수 있으면 그렇게라도 해서 덜어내라…" 최윤주 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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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던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의료사고분쟁조정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병원 측의 동의가 없이도 의료사고 중재 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오 의원은 언론중재절차나, 환경분쟁 중재절차 같은 다른 분쟁 조정 절차는 모두 피신청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조정 절차가 개시되는데, 의료사고 분쟁의 경우에만 병원 의사를 확인하도록 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7달이 넘도록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오 의원이 보건복지위원회를 떠나자  법안을 앞장서서 추진하는 의원도 없어졌다.

2014년 11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 예정 안건에 오제세 의원의 법안이 올라왔다. 최윤주 씨는 기대를 품고 국회를 찾아갔다. 오제세 의원도 만났다. 새해 예산 심의 때문에 국회 복도를 가득 메운 공무원들 틈에 껴서 하루 종일 법안 통과 소식을 기다렸다.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날 법안소위에선 자신이 낸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고 책상을 치고 물건을 던지며 밖으로 나간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의료사고분쟁조정법 개정안을 위해 그렇게 싸워주는 의원은 없었다.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의원은 "이제 이 정도 법안은 통과돼야지… 근데 의사단체들의 반발이 심하다."고 말했다. 의료사고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정기국회 이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최윤주 씨는 빈 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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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씨는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인이 병원을 상대로 의료 소송을 해서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소송 기간도 길고 비용도 비싸다. 그래도 중재 신청이 각하된 이상 딸이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최윤주 씨는 말한다.

"우리 예강이가 왜 떠났는지 원인도 모르니까. 예강이한테 가장 미안한 부분이거든요. 이렇게 소송이라도 해서 우리 예강이한테 꼭 사과라도 한마디 받는다면 예강이한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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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30일은 예강이의 10번째 생일이다.

"예강이가 천국에서 맞는 첫 생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또 그 며칠 전이 예강이 오빠 생일이거든요. 예강이 오빠 생일은 기쁘게 해줘야 하는데 그 며칠 뒤에 예강이 생일이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최윤주 씨는 고민 끝에 예강이가 갖고 싶어했던 장난감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예강이 납골묘에 넣어줄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로 주고 싶은 선물은 예강이가 숨진 이유를 밝혀내는 것, 병원 측이 거부하면 조정을 시작할 수 없도록 규정한 의료사고분쟁조정법을 개정하는 것, 그리고 병원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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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이라 가자마자 마음이 놓여 바로 나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니… 커튼 너머로 아프다고 울부짖는데도 더 이상 못하게 말리지도 않고 왜 아무 것도 못했을까… 이 못난 엄마는 그렇게 해야 나을 줄 알았습니다. 엄마인 제가 이리 힘이 없고 무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딸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지는 않았을테고, 또 지금까지 병원으로부터 어떤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언젠간 진실이 꼭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 사진 및 자료 출처: 예강이 홈페이지 http://iamyekang.com/
- 사진 및 자료제공: 최윤주(故 전예강 양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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