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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다리 부러진 채 "택배 늦어서 죄송!"

[월드리포트] 다리 부러진 채 "택배 늦어서 죄송!"
초인종이 울립니다. 외국인인지라 방문객이 많지 않습니다. 십중팔구 택배원입니다.문을 열어주기 무섭게 택배원이 배달한 물건들을 현관에 부려 놓습니다. 그리고 완충재로 꽁꽁 싸 놓은 포장을 일일이 뜯어 하자가 없는지 살펴보며 건네줍니다. 토마토에 상처가 있다고 지적해봅니다. 쓱 훑어보더니 두 말 않고 반품 상자에 넣습니다. 내일 새로 가져다주겠다고 합니다. 토마토 하나 때문에 다시 오도록 해 미안했던 마음이 워낙 선선한 태도에 사그라집니다. 중국에서는 서비스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택배는 감동적일 때가 많습니다. 친절하고 성실합니다.
중국 택배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나 봅니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중국인들의 택배에 대한 불만율이 15%를 넘습니다. 10번 택배를 받으면 1번 반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우체국에서 운영하는 택배 회사인 EMS는 한 술 더 뜹니다. 불만율이 30% 이상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택배를 해야 할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밤 10시에도, 일요일 아침에도 찾아옵니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다음 행선지가 있는 탓에 허둥거리는 모습이 훤히 드러납니다. 1분 1초라도 아끼려고 말도, 행동도 초고속입니다. 마음이 급하니 실수가 생기고 다툼도 생깁니다.

중국은 요즘이 택배 회사의 대목입니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11월 11일, 쌍 11일절 하루에 무려 10조 원 어치의 물건이 인터넷에서 팔렸습니다. 택배 회사들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는데도 배송에 열흘에서 보름까지 걸립니다. 택배원들에게는 하루가 한 없이 길 듯 합니다.

요맘때면 그래서 택배 사고도 많습니다. 이틀 전 현지 신문의 한 구석에 조그맣게 난 기사입니다.한국인들도 많이 사는 산둥성 칭다오시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25살의 택배 기사 장 모 씨가 이 아파트에 물건을 배달하고 돌아나갈 때였습니다. 어이없게도 아파트 입구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보안 장치가 고장 났었나 봅니다. 일반적이라면 보안 요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아니면 열쇠를 가진 입주자가 나타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택배 기사 장 씨는 그러기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2층 창문을 통해 현관 지붕으로 내려섰습니다. 그리고 바닥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아뿔싸! 그만 중심을 잃고 오른 다리에 온 몸무게가 실려 버렸습니다. 뚝 하며 다리가 골절됐습니다. 장 씨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장 씨가 일어나지도 못하자 120(우리의 119)에 신고했습니다.
중국 택배
다리가 부러져 쓰러진 채 구급 대원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장 씨는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습니다. 목격자들의 전언입니다. "신음을 참아가며 다음 배달 행선지에 전화를 걸더라고요. '택배인데요. 사고가 있어서 배달이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족히 10군데 이상 전화를 거는 듯 했습니다."장 씨는 구급차에서도 회사 동료 2~3명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가고 있는 병원으로 와서 물건 배달을 대신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당일 장 씨가 입원한 병원으로 현지 기자가 취재를 갔습니다. 그때까지도 병실 밖으로 배달이 늦어진 이유를 고객들에게 설명하는 장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전했습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얼마 전 중국 내 택배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자국 택배 회사들의 우려를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중국인들의 국내 택배에 대한 불만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서비스와 시스템으로 무장한 외국 유수의 택배 회사들이 중국 내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의 한 유명 물류 전문 업체 간부와 이 문제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엄살이야!"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은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만 택배 가격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높으면 바로 다른 업체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택배 업체들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다고 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업체들은 가격 장벽 탓에 일반적인 택배 시장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다만 특수한 처리가 필요한 화물, 높은 보안성이 요구되는 화물 등 고급 택배 시장의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택배
중국 택배 회사들은 오랫동안 현지에서 사업을 하면서 물류 체계를 착실하게 닦아놨습니다. 지역 군소 택배 업체들과 협력 체계도 갖췄습니다. 하지만 그런 싼 값에 택배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택배원들의 저렴한 인건비 덕분입니다. 싼 임금에, 살인적인 업무, 그러면서도 투철한 사명감을 발휘하는 장씨 같은 택배원이 많다면 중국의 택배 시장은 난공불락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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