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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난 죽이지 않았어요"…18년간 억울한 옥살이

알리바이 증언자가 13명이나 있는데…꼬이고 꼬인 기막힌 운명

[월드리포트] "난 죽이지 않았어요"…18년간 억울한 옥살이
▲ NBC 보도 화면

미국 뉴욕에 있는 감옥에서 NBC 기자와 대면한 ‘리차드 로사리오’는 18년 전 여름 저녁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경찰이 살인사건과 관련해 저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갔어요. 그리고 제가 그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할 모든 것을 형사에게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조사는 하나도 안 하고….”  감정이 북받치는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로사리오는 1996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관련해 25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8년째 복역 중입니다. 1996년 뉴욕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로사리오는 뉴욕에서 1천 6백킬로미터 떨어진 플로리다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그날 밤 플로리다에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만도 13명이나 되는데 증언자 가운데는 경찰관, 목사, 그리고 연방 정부 관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는 유죄를 선고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걸까요? 그 기막힌 사연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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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저 NBC
 
1996년 6월 30일, 플로리다에 있던 로사리오는 급히 뉴욕 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로사리오는 뉴욕에 살고 있었지만 6월 한 달 내내 플로리다에서 지냈는데, 어머니로부터 급한 전화 연락을 받았던 겁니다. “얘야... 경찰이 찾아와서는 너를 찾더구나. 살인 사건과 관련해 너를 만나봐야 한다는 거야. 도대체 어찌된 일이니?” 로사리오는 황당했습니다. “뜬금없이 왠 살인 사건 때문에 나를 찾는다는 거지?” 뉴욕으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로사리오는 심난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습니다.
 
뉴욕에 도착한 로사리오는 곧바로 해당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찾았다던 형사와 통화했습니다. 무슨 살인 사건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내일 경찰서로 찾아가 뭐든지 묻는 질문에 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저녁 그 형사가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연행했습니다.    
 
로사리오는 경찰서에 도착해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6월 19일 저녁, 뉴욕 브롱크스의 뒷골목에서 17살 소년이 누군가 언쟁을 벌이다가 얼굴에 총을 맞고 숨졌습니다.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목격자 2명이 있었는데, 경찰과 함께 사진 대조작업을 벌이던 중 로사리오를 용의자로 지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듯이 로사리오를 포함해 비슷한 인물 여러 명을 벽 앞에 세워놓고 목격자에게 용의자를 지목하라고 했는데 두 목격자 모두 로사리오를 지목했던 겁니다. 
 
로사리오는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자신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으며 6월 한달 내내 플로리다에 있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6월 19일 자신이 플로리다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줄 13명의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주소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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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사리오의 알리바이를 증언하는 사람들 / 출처 : NBC 방송화면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6월 19일, 로사리오는 플로리다에 있는 친구 토레스의 집에 있었습니다. 토레스 부인이 임신한 상태였는데 20일이 출산일이었기에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아기는 다음 날 태어났고, 로사리오는 토레스 부부와 함께 출산을 축하하고 즐거워했다는 사실도 얘기했습니다. 게다가 19일, 자신이 토레스 부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 줄 사람이 11명이나 더 있다는 것도 말했습니다.
 
“저는 다음날 감옥에 가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형사들이 전화 몇 통만 하면 될 테니 곧 경찰서에서 나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형사는 그 13명의 알리바이 증언자 가운데 단 한 명과도 통화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두 사람의 목격자 말만 듣고는 로사리오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해 버린 겁니다. 그렇게 해서 네 살과 두 살짜리 두 아이를 둔 21살의 로사리오는 그날 밤 곧바로 구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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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꼬이기 시작한 운명은 그 이후에도 계속 꼬였습니다. 로사리오는 법원이 지명한 변호사 (우리로 치면 국선 변호인)와 만났습니다. 꼬인 운명을 풀 수 있는 첫 기회였습니다. 로사리오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사람이 플로리다에 13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법원에 플로리다에 조사관을 파견해야 한다며 비용을 청구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비용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플로리다에 조사관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변호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고, 이전 변호사는 이런 사실을 새 변호사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새 변호사는 로사리오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었지만 이전 변호사가 법원에 신청한 조사관 파견 비용이 거절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아예 조사조차 시키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로사리오의 무죄를 입증할 알리바이 증언자가 13명이나 있었지만 단 한번도 그리고 단 한 명도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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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사리오의 부인과 아들, 딸 / 출처 : NBC

1998년 로사리오에 대한 재판이 세 번 째 기회였습니다. 다행히 법정에 로사리오가 묵었던 토레스 부부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토레스 부부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날, 로사리오가 자신들과 함께 있었고 아기가 태어난 것까지 함께 축하했었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검사 측이 토레스 부부가 로사리오와 친구관계였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토레스 부부의 증언은 배심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기구하게 꼬인 운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로사리오는 이 재판에서 살인 혐의가 인정돼 25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로사리오의 이 기구한 운명을 취재한 NBC 기자는 로사리오가 말한 13명의 알리바이 증언자들을 모두 만났습니다. 그리고 NBC 뉴스 프로그램에도 증언자들이 출연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플로리다의 부 보안관이 있었고, 목사도 있었습니다. 또 연방 교정국 관리도 있었습니다. 토레스 부부가 아기를 출산할 때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그 자리에 로사리오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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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사리오의 알리바이 증언자 : 현직 경찰관 / 출처 : NBC

로사리오는 지난 2004년 연방 판사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13명의 알리바이 증언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판사는 당시 변호사가 고의적으로 조사관을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고 실수였다며 로사리오의 재조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있었던 연방 재판정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재 로사리오가 새로 선임한 변호사가 뉴욕 대법원에 로사리오 사건에 대한 재 심리를 요구했고 조만간 수용 여부가 결정될 예정입니다. 로사리오는 지금도 22살과 24살이 된 아들과 딸을 보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며 감옥에서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실은 언제가 밝혀질 거라고 생각해요. 제 유일한 희망이자 저의 모든 게 달린 일이죠.” NBC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감옥으로 되돌아가기 전 로사리오가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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