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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너무도 다르지만 몹시도 비슷한 '인터스텔라'와 '카트'

[취재파일] 너무도 다르지만 몹시도 비슷한 '인터스텔라'와 '카트'
영화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질문은 무슨 영화를 봐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몹시 난감합니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가지각색 취향을 파악해 구미에 맞는 작품을 골라줄 수도 없고, 무엇보다 저도 못 본 영화가 수두룩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가 강력히 추천해 온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됐습니다. 지난 달 28일 시사회에서 처음 접한 <인터스텔라>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아이맥스 암표까지 나돌아 다니는 지경이니 말 그대로 광풍이라 할 만 합니다. 관객수도 3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가을 비수기 이례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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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의 영화는 <카트>입니다.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들의 현실을 가감없이 담아내 영화계 안팎에서는 돌직구라는 평을 얻은 용감한 기획과 제작진의 뚝심이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이게 돈이 되겠냐는 의구심을 뒤로 하고 한국 영화계에 굵직한 자취를 남겨온 명필름이 상업영화 시장에 과감히 문제적 작품을 들고 뛰어 들었습니다.

 개봉 첫 날 흥행성적이 10만 관객 동원이니 비수기에, 그것도 <인터스텔라>의 광풍 속에 올린 성적치고는 대단해 보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점도 괜찮은 것 같더군요. 두 영화 가운데 뭘 봐야 하냐고 묻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 대답은 두 편 다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은 사실 대단히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인터스텔라>와 <카트>는 모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인터스텔라>는 미래의 어느 시점 황폐화된 지구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해가는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래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것은 이미 극심한 양극화와 식량위기, 불평등으로 이미 붕괴하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위기감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고 이런 현실이 이어진다면 영화 속 미래가 그저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상하이에서 직접 만났던 놀란 감독도 현실의 지속 불가능함이 영화적 상상력을 우주로 확장할 수 밖에 없는 대단히 중요한 동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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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가 다루고 있는 영화적 설정은 더 현실적입니다. 이제는 고용의 일반적 형태가 돼 버린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의 모습이 가감없이 그려집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자신들은 동료들 앞에서 모멸적인 반성문을 쓰고, 진상 고객에게 잘못 응대하기라도 했다가는 무릎까지 꿇고 최소한의 자존감도 감춰야 버텨낼 수 있는 상황,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일터와 이마저도 철저히 상품화된 또 다른 노동에 의해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시장과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으로는 더 이상 공동체가 지탱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미지의 우주로 떠날 수 밖에 없고, <카트>는 현실에 맞서 저항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담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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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영화는 모두 이런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타개할 힘을 인간애와 가족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엔 최신의 천체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재현해 낸 현실감 높은 우주공간의 압도적 영상이 관객들을 흥분시킵니다.

 감독의 동생인 조너던 놀란은 시나리오 작업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4년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상대성 이론을 공부했고, 실제 영화에도 천체 물리학자 킵 손 교수가 결합해 실제 과학이론을 적용해 블랙홀과 웜홀 등 어떤 SF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사실적 영상이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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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영화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는 인간과 가족에 대한 애정과 낙관입니다. 영화는 가장 진보한 천체물리학 이론들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를 바로 그 가족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휴머니즘이 결국 위대한 발견과 진보의 동력이자,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돌파할 힘의 원천임을 강력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이 이 영화가 우주과학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가족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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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는 화려하고 압도적 영상은 없지만,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길가다 마주칠 수 있는 현실적 인물들입니다. 아들의 급식비와 휴대전화 교체 비용에 가슴을 졸이는 엄마와 취업에 실패한 88만 원 세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은 달라도 인간이 상품으로 다뤄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노동시장에 내던져진 힘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그들은 살고자 시작한 싸움의 과정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언니 동생이 되고, 해체될 위기에 놓인 가족들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나갑니다.

<카트>는 기존의 주류 언론이 빨갛게 낙인 찍어가며 사회 전복 세력 쯤으로 묘사했던 노동자들의 싸움이 사실은 가족을 지키고 인간으로 존중받고자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불편을 초래한 대형 할인점 근로자들의 싸움을 비난했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가족을 아끼고,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또 다른 시민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카트>도 <인터스텔라>처럼 인간과 가족의 가치를 영화의 핵심축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인터스텔라>가 기존 SF 영화의 틀을 깬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고, 실제로 많은 관객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예매율 70%를 넘나드는 극단적 쏠림 현상입니다. <카트> 역시 지난 1990년 정부의 엄청난 공안탄압 속에 대학가를 전전하며 불법상영으로 선을 보였던 독립영화 <파업전야> 이후 처음으로 25년만에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첫 상업영화라는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인터스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좋은 작품이지만, <카트> 역시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그저 시간을 죽이는 오락거리가 아니라 사회를 투명하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일 수도 있음을 일깨워주는 <카트>에도 많은 관객들이 호응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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