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중일 정상회담의 '문제적 장면' 3가지

[월드리포트] 중일 정상회담의 '문제적 장면' 3가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굳은 표정'이 국제적인 화제입니다. 3년 만에 이뤄진 중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이례적인 장면입니다. 특히 일본은 '서운함'이 역력합니다. 겉으로는 시진핑 주석의 "국내용 표정"이라며 점잖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야후 재팬 같은 인터넷 여론은 "외교적 결례다" "이런 푸대접 받으려고 만났나?" 같은 격한 반응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일 정상회담의 문제적 장면은 3가지입니다. 시간 순서 대로 한 장면씩 짚어볼까요.
 

첫번째 문제적 장면은, 회담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베 총리의 모습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제회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장면입니다. 대부분의 국제회의에서 주최국 정상이 먼저 나와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회담 성사 여부도 사실 당일 오전에서야 확정됐습니다. 아베 총리 일행은,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중국의 통보를 받고서 부랴부랴 회담장으로 향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간의 정상회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상식 밖입니다. 그렇게 나간 회담장에서도, 아베 총리는 '서성거리며 대기'해야 했습니다.
 

두번째 장면은, 시진핑 주석의 굳은 표정과 관련된 건데요. 굳은 표정의 시 주석과 민망한 아베 총리가 악수를 하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문제는 그 직전과 직후에도 있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시 주석에게 다가가면서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카메라 플래쉬 소리 때문에 제대로 녹음은 되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 설명으로는 "공식적으로 만나게 돼 대단히 기쁩니다"라고 중국말로 인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화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아베 총리는, 싸늘하게 시선을 돌려버리는 시 주석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듯 합니다.(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한국말 인사 때와 똑같죠. 일본 언론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은 더 이상합니다. 당연히 회담장까지 시 주석이 에스코트 할 것으로 생각한 아베 총리와 달리, 시 주석은 일본 대표단과 계속 악수를 나눕니다. 아베 총리가, 속된 말로 '뻘쭘하게' 우왕좌왕했습니다. 국가 정상간에 만나는 자리에서,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만큼 의전상 사전약속이 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만약 우리 정상이 외국 정상을 저런 식으로 만났다면 '큰일' 났을 겁니다. 실제로 몇년전 미국 정상이 우리 대통령 어깨에 손을 올린 걸 두고도 이런 저런 뒷말이 무성했었죠. 화를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이니까, 더 정확하게는 중일 정상회담을 더 원한 쪽이 일본이니까 삭히고 넘어가는 걸지도 모릅니다.
 

세번째 문제적 장면은 회담이 끝난 뒤에 나타났습니다. 아베 총리 혼자서 기자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세계 2,3위의 경제대국 정상들이, 그것도 2~3년 역사와 영토 문제로 갈등을 보였던 두 나라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조차 하지 않은 겁니다. 결국 공동 회담이나 공동 합의문으로 회담의 격을 올리는 게 싫어서, 지난 금요일 부랴부랴 실무차원 회담에서 '4개항 사전합의'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동시에, APEC 정상회담을 국가적 축제로 치르고 싶은 중국 입장에서는, '중일 정상회담'이라는 작은(?) 이벤트가 주목받는 게 싫은 것 같습니다. 마치 과거 중국 황제가 각국의 사신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 듯이, 중국은 APEC 정상회담을 '대국 중국'을 과시하는 축제로 가져가고 싶은 듯 합니다.

APEC 정상회담 때문에 가능했던 '중일 정상회담'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아베 총리는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시 주석의 굳은 표정을 '국내용'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내년 전승 70주년을 앞두고, 중국내에 있는 '반일' '항일' 분위기를 의식했다는 겁니다. 대신 '전략적 호혜관계 구축을 위한 첫 걸음'이라며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말은 맞는데, 일본이 풀어가는 방식이 이상합니다.  

일단 '국내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일본과 악수는 하지만, 긴장은 여전하다"라는 메시지를 중국 공산당과 지방 정부, 그리고 중국 인민들에게 준 겁니다. 중요한 건 '국내용'이라는 게 아니라, "왜? 국내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연출했을까?"라는 점이겠죠. 때문에 이번 중일 정상회담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는 겁니다. 전면적 관계개선이나 긴장 완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입니다.

또 시 주석의 굳은 표정을 중국 인민들만 본 건 아니죠. 시 주석은 '굳은 표정'을 통해서, 미국과 한국 등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고 봐야합니다. 중일 긴장관계의 핵심인, 중국의 해양 진출과 군사력 확대를 결코 중단할 생각이 없다는 점. 또 한국에 대해서는 역사와 영토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중 공조를 지속해 나가자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일본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굳은 표정에 은근히 기분 좋아하는 건, 지극히 단순한 계산일 뿐입니다. 중국이 일본과의 긴장관계를 빨리 풀어버리면 한국만 고립될 수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을 끌어당기면 한국은 따라 온다는 식의, 일본의 노림수가 불쾌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시 주석의 '굳은 표정'에는 "한국은 계속 중국과 함께 가자"라는 요구가 읽힙니다. 관심과 애정은 고마운데 솔직히 부담스럽지요. 한미일 동맹 구도 속에서 북한핵과 안보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결코 쉬운 요구가 아닙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어디까지 통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중일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상회담에 관한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영토와 역사 문제에 관한 단호한 입장은 중요합니다. 일본과 관계개선의 타이밍을 놓친 이상, 지금와서 '팔랑개비'처럼 정부 입장이 요동쳐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시 주석이 아베 총리와 만난 게, 입장이 변해서일까요?(마찬가지로 아베 총리가 시 주석을 만났다고 해서 역사인식이 바뀐 것은 아닐겁니다) 역사와 영토 문제, 미국을 염두에 둔 '대국 관계'라는 큰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 있는 게 '외교'일 겁니다. 긴장의 책임을 굳이 혼자서 뒤집어 쓰지 않고서도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 그런 외교역량을 우리 정부에 기대해 봅니다.

▶ 관련기사
[생생영상] 2년 반 만의 중·일 정상회담…시진핑 '굳은 표정'

[핫포토] 박 대통령·아베 총리 만난 시진핑의 '다른 표정'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