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중국 APEC에서 '멘쯔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다

'멘쯔(面子)', 중국과 중국인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말로는 체면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체면보다는 더 많은 감정과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제가 중국인이 아니어서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체면에 면목, 위신, 평판, 자존심 등등이 모두 섞여 있다고 느껴집니다.

중국인의 '멘쯔 문화'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기회는 결혼식입니다. 중국의 결혼식에 대해 여러 차례 소개해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대략 난감'입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화려하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치릅니다.
?쯔
최근 중국인 친구가 산둥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열린 친척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 전해준 말입니다.

"결혼식은 거의 하루 종일 계속됐어요. 손님들에게 점심과 저녁이 제공됐죠. 온갖 산해진미가 계속 식탁에 올라왔어요. 다만 특별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사람들은 사흘 연속 연회를 베풀기도 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동안 적어도 다섯 번은 옷을 갈아입더군요. 선물로 받은 장신구를 온 몸에 걸치고 있어서 볼 만 했죠."

결혼식을 올린 사람이 마을 유지냐, 부유한 사람이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에요. 냉정하게 말하면 잘 못삽니다. 자녀 결혼식을 위해 모아온 돈을 다 쓰고 빚까지 졌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결혼식을 거창하게 치르느냐, 어이 없어 하자 돌아온 대답이 "멘쯔 때문이죠."

중국인은 멘쯔를 잃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평소에 매우 선량하고 순하던 중국인도 한 번 멘쯔를 손상 당했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이성을 잃습니다. 멘쯔에 목숨을 겁니다. 전재산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의 체면보다는 훨씬 절박하고 심각합니다.

따라서 중국인을 대할 때는 '멘쯔'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거꾸로 '멘쯔'를 차리기 위해 상식 밖으로 과하게 대접하는데 대해 너무 놀라지도 말아야 합니다.
?쯔
중국이라는 국가도 중국인과 똑같습니다. '멘쯔'에 대단한 가치를 둡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인력과 물자, 돈을 들여 전무후무하게 화려하고 거창한 올림픽을 꾸며냈습니다. 그리고 올 APEC 회의에서는 '국가급 멘쯔'를 직접 제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악명 높은 '스모그'와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독한 스모그에 외국 정상들이 마스크라도 하고 나타나면 중국의 '멘쯔'가 산산조각 나기 때문입니다.

먼저 APEC 개막 보름 전부터 베이징을 둘러싼 허베이와 텐진 지역의 거의 모든 공장이 가동을 멈췄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서울-부산 거리보다 더 멀리 있는 산시성과 산둥성까지 샅샅이 수색해 공기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들은 문을 닫아걸게 했습니다. 공기 오염 배출원을 아예 막아버린 것입니다.

베이징 시내의 모든 건설 공사 역시 보름 가까이 중단됐습니다. 공사로 먼지를 피우지 못하도록 한 조치입니다.
요즘 베이징 시내의 거의 모든 도로는 비가 온 듯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살수차가 24시간 돌아다니며 물을 뿌립니다. 역시 먼지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11월 들어 차량 홀짝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부터는 모든 관공서와 학교, 국유 기업이 휴일에 들어갔습니다. 상당수 민간 기업들도 이런 정부의 솔선수범(?)에 영향을 받아 자체적으로 휴무에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일에 소요될 사회, 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될 지 계산조차 어렵습니다. 영업을 못해 발생하는 기회비용, 차량 운행에 제한을 받아 생기는 손실 등이 막대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어떤 중국인도 이에 대해 반대하거나 불만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국가의 '멘쯔'를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덕분에 저는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이렇게 장기간 좋은 공기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주일 가깝게 공기질 지수가 한 번도 2백을 넘지 않는 경험을 처음 해봅니다. APEC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물론 APEC으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멘쯔'를 위해 베이징의 주요 간선도로를 새로 도색하고, 수리하고, 보수하느라 생기는 불편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습니다. APEC 기간 직전 베이징 시내의 교통 혼잡은 용인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홀짝제를 실시하고 있는 요즘도 재수 없으면 어이없는 정체를 겪습니다. 국빈이 움직일 때마다 수시로 가해지는 교통 통제 때문입니다. 얼마나 무지막지 하게 막느냐면 제2 순환도로, 제3 순환도로, 창안가 등을 통으로 막아버립니다. 서울로 따지면 올림픽 대로, 동부 간선도로, 종로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 베이징의 교통 흐름이 일시에 멈추다시피 합니다.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베이징 시민들의 인내심에 감탄할 뿐입니다.

?쯔
'멘쯔'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제 정상들의 만찬 행사였습니다. 화려함의 극치였습니다.
정상을 태운 차량이 만찬장인 올림픽 수영장 앞길로 들어서면 길이 온통 빨간 색으로 변합니다. 연도에는 수천 명이 중국 56개 소수민족의 각양각색 전통복장을 차려 입고 군무로 환영합니다.

올림픽 수영장은 전면을 감싸는 LCD벽이 각종의 색으로 물들며 환상적인 색채의 향연을 펼칩니다. 맞은 편 냐오챠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는 스스로를 화폭 삼아 레이저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회화를 선보입니다. 행사 말미 밤하늘을 수놓은 수천발의 불꽃놀이 역시 장관이었습니다. 고대로부터 폭죽을 즐겨온 저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입니다.

만찬에서 선보인 각종 공연도 화려함의 극치였습니다. 출연하는 공연자수, 무대의 크기, 무대 장치의 거대함 등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APEC 행사보다 물량과 규모, 화려함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줬습니다. 중국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멘쯔'를 잃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중국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감동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살짝 얄밉습니다. '평소에 좀 잘하지.'

손님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써서 바꾸고, 꾸미고, 화장했다가 손님들이 가고 나면 옛 모습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채 몇 백 미터도 내다볼 수 없는 스모그가 다시 찾아오고 사방에 공사장 먼지와 매연이 피어오르겠죠. 메마른 도로에서는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회색빛 먼지가 날아오르고요.

중국의 '멘쯔' 문화가 이제 특별한 행사에 과장스럽게 펼쳐내는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평소에도 항상 염치와 면목을 챙기는 건강한 문화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11월 3일 8뉴스]
▶ 공사중단·강제휴가까지…中, 스모그 퇴치에 총력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