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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후쿠시마 원전, 그리고 일본 사회의 변화

[취재파일] 후쿠시마 원전, 그리고 일본 사회의 변화
 신칸센 후쿠시마 역 (2014.8.28)

지난 8월 28일 오전 8시 53분. 북쪽으로 달리던 신칸센 열차가 후쿠시마 역에 가까와지면서, 가지고 있던 방사능 측정기의 수치가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0.1 밀리시버트. 도쿄에서 잰 측정 수치가 0.01이었으니, 수치상으로는 10배가 된 셈입니다. 문득 걱정이 됐지만, 바로 옆에 있던 한 승객이 말합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요. 0.3쯤 돼야 걱정인거지" 과연 그럴까 하면서도, 일단 목적지인 후쿠시마 역에 내렸습니다.
  
후쿠시마 역은 예상과 달리,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기차를 타기 위해 역사로 들어오는 사람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 과연 이곳이, 3년 전 대피령이 내려졌던 그 후쿠시마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생활 터전이 이곳인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남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후쿠시마에서 돈을 벌고, 자녀들은 외부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주민들... 그런 설명을 듣고 나니,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후쿠시마 역 앞 (2014.8.28)
 
겉으로만 보아 후쿠시마와 원전 피해 지역은 지금, 상당 부분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상당히 복잡한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제염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며, 피해 지역 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후쿠시마 주민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원전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너무도 많은 거짓말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상당수 주민이 후쿠시마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후쿠시마 주민 40% 정도인 10만 명가량은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후쿠시마 원전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방사능 측정치는 0.35밀리시버트를 기록해 도쿄의 35배였음.
2014.8.28일 촬영
 
방사능 검사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불안감 확산을 막기 위해 너무 많은 검사를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폭 관련 검사는 '후쿠시마 현립대학 의대'로 단일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갑상선 관련 질환은 피폭됐을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인데, '피폭에 대한 우려로 인한 갑상선'은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쉽게 검사를 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준 역시 오락가락이라는 게 주민들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0.3밀리시버트 까지는 문제가 없으니, 아이들이 밖에서 나가서 놀아도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은 이 기준이 10분의 1인 0.03밀리시버트까지로 내려갔습니다. 원전 사고 당시 후쿠시마 원전 바로 옆의 후타바 마을 이장이었던 이도카와 씨는 말합니다. "그런 기준은, 도쿄에 있는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거기 앉아서, 멀리 100km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의 기준을 정한다는 게 말이 되냐. 자기 아이들, 자기 가족들이 후쿠시마에 산다면, 그런 기준을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은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해,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여 뒤인 지난 2012년 시민들이 돈을 모아 3천만 엔(우리 돈 3억 원가량)을 만들었고, 이 돈으로 2012년 12월 1일 '후쿠시마 공동진료소'를 지었습니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후쿠시마 시민공동진료소
 
의사들을 포함해 직원 6명이 활동하는 이 진료소는, 하루에 15명가량이 검사를 받으러 온다고 합니다. 주로 갑상선 검사입니다. 위에서 밝힌 대로, 정부 지정 의료기관에서는 갑상선 검사를 잘 안 해주거나, 하더라도 결과를 몇 달 후에나 알려준다고 합니다. 어른들보다는 면역력이 약한 어린 학생들이 더 걱정인데, 정부가 각 학교를 돌면서 갑상선 검사를 하기는 하지만 한명당 5분 만에 검사를 한다고 하니, 검사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시민들이 직접 설립한 공동진료소를 찾는 겁니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의사 후세 씨는 말합니다. "일본 정부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0.2밀리시버트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체르노빌의 경우 0.01밀리시버트 지역은 피난할 권리를 부여했고, 0.05밀리시버트 이상 지역은 강제로 피난시켰다. 방사능은 그 피해를 당장 알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이렇게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안된다. 이건 인체실험이다. 이런 인체실험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에 근무하는 의사 후세 씨
 
장소를 옮겨 후쿠시마 시내에 있는 한 시민단체를 방문했습니다. '후쿠시마 30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 단체는, 방사능 측정과 관련해 정부의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을 메워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방사능 측정기는 한 곳에 고정돼 있는데다, 지상에서 3-5미터 정도 높은 곳에 설치돼 있는데, 이럴 경우 주로 아이들이 닿는 1미터 이하 지역이나 바닥의 방사능 수치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이 시민단체는 이걸 해주는 겁니다. 또한 일반 가정에서 '이 우유는, 이 과일은 방사능 수치가 얼마일까' 궁금할 때, 이런 측정도 해 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정부 기관에 의뢰해도 되지만 접수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엄두를 내기 힘듭니다. 이들이 단체의 이름을 '후쿠시마 30년 프로젝트'라고 한 것은, 세슘의 반감기가 30년이고, 30년 정도 지켜보지 않으면 문제가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30년 동안의 문제를 고민하는 단체라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기적 관점의 활동은 정부에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후쿠시마 30년 프로젝트’ 관계자가 방사능을 측정하는 모습
 
이 밖에도 후쿠시마 안에는 각종 시민들의 움직임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피소에서 살고 있는 피난민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제공하는 단체, 여전히 후쿠시마현 안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생수를 제공하는 단체, 후쿠시마 문제를 알리기 위해 연극을 구성해 전국 각지를 돌면서 여론에 호소하는 한 고등학교 연극부 등... 다들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동안은 정부의 행정력에 기대어 '모든 것을 정부가 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던 보통 일본사람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전후 일본 역사에서 거의 처음있는 일이라는 게 일본 지식인들의 한결같은 의견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오쿠마 에이지 게이오대 교수(<사회를 바꾸려면>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일본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정부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아니면 '큰 조직이 뭔가 해 주겠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큰 변화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 사회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이나 정부의 비민주성, 정경유착, 낙하산 인사 같은 구시대적 문제들을 계속 안고 왔습니다.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미·일간의 합의에 따라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제조업이 일본의 제조업을 상당 부분 빼앗아가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접어듭니다. 경제가 나빠지고 살기가 어려워지니, 일본 사람들은 일본 사회 내부의 각종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인내하면서, 정부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습정치와 정경유착은 일본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그중에서도 원전을 둘러싼 이해관계집단 덩어리인 ‘원자력 마을’(원전 마피아)은 원전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확보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권력을 형성했습니다. ‘원자력 마을’은, 정부, 의회, 학계, 경제계는 물론, 언론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먹이사슬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런 부패의 결과물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관련 문제들은, 청해진 해운의 비정상적 경영을 통해 알려진 이른바 ‘해피아’나 낙하산 인사 등 세월호를 둘러싼 한국의 문제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원전 마피아의 이해관계도 (자료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도쿄전력에 17년 근무하다 해고된 키무라 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예견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배관이 부식되고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지하의 비상 디젤 발전기는 아예 가동도 되지 않았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렇지만 도쿄전력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들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은 해고했다고 합니다. 키무라 씨 역시 마찬가지 문제로 해고됐습니다.
 
원전 마피아는 내부 직원뿐 아니라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격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제기하던 사토 에이사쿠 후쿠시마 시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칼날을 들이대, 엉뚱하게도 '횡령' 혐의로 구속시켰고, 한 잡지사가 '도쿄전력' 특집 기사를 싣자, 일본 경찰은 그 기사를 쓴 기자를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구속하기까지 했습니다. 원전 마피아들이 장악한 권력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고 당시 도쿄전력의 몰상식은,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우리의 문제점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사고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 씨는 SBS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쓰나미 이후 처음 받은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보고는, 지진 지역의 모든 원전이 무사히 정지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40분 뒤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후쿠시마 제 1원전의 모든 전원이 상실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보고를 들었을 때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청와대에 '전원 구조'라고 보고했던 세월호 첫 상황과 거의 똑같습니다.
 
게다가 도쿄전력 직원들은, 후쿠시마 원전 부근에 있던 자기 직원들과 가족들을 가장 먼저 대피시켰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정부만 믿고 있던 주민들만, 원전에서 날아오는 방사능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입니다. 국가는 달아나고 국민들만 남은 상황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만 먼저 대피한 상황과 놀랄 만큼 똑같습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 정부는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원전 폐기를 선언하고, 각종 제도를 안전 위주로 재편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이 실각하고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집권하자 일본 정부의 정책 기조는 또다시 바뀝니다. '아베노믹스'를 기치로 '경제가 최우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기가 부족하니 원전도 재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또다시 '원전 재가동'문제를 두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보통사람들은 분명히 변했습니다. 일본 총리관저와 국회 앞에서는 지난 2012년 6월부터 3년째 금요 시민집회가 열립니다. 이 집회는 일과시간이 끝나는 6시부터 시작해 정확히 8시에 끝납니다. 회사원이나 주부들, 노인들이 주로 참가하는데, 한때 20만 명까지 모였다고 합니다. 집회나 시위를 선호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많이 모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이들은 집회를 가지면서 구호만 외칠뿐, 단정하게 줄을 서서 집회를 하고, 쓰레기까지 깨끗하게 치우고 헤어집니다.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일본 국회 앞 시민집회 (2014.8.29)
 
이들은 정부가 안전도 제대로 담보하지 않은 채 원전을 재가동할 경우, 제 2의 후쿠시마 사태가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시민들은 '이제는 정부를 못 믿겠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후쿠시마 사태 전과 후, 달라진 일본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민들의 움직임'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얼마나 힘을 가질까요? 그 해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경제산업성 관료를 지낸 시사평론가 코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시민활동이 확실히 활발해졌습니다. 이걸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크게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기도 하지만, 가능성 측면에서 상당히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게이오대 오구마 교수도 말합니다 "앞으로 사회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질 겁니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런 격차는 마찬가지 현상일 겁니다. 따라서 이제는 새로운 참여 방식과 대화방식,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 
후쿠시마_조성원기자
탈원전 정치세미나 모임 (2014.8.27. 도쿄 신주쿠)
 
우리와 모든 것이 흡사하다는 일본 사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어떨까요? 세월호 이후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과연 무엇이 변했나요? 유가족들에게 '이젠 그만하자'라고 요구하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조용하던 일본 사회가 이미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변화는 바로 나부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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