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내 아버지에게 말해 복수할거야"가 던지는 상념들

[월드리포트] "내 아버지에게 말해 복수할거야"가 던지는 상념들
지난 29일 저녁 충칭을 출발해 원저우로 가는 여객기 1등석 칸에서 큰 소동이 일었습니다. 20대 젊은 승객 한 명이 기내 보안요원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여객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데 문제의 젊은이가 계속 휴대전화를 사용했습니다. 승무원이 휴대전화를 꺼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급기야 보안요원까지 왔습니다. 휴대전화를 끄라는 강력한 요구에 언쟁이 일더니 젊은이는 육두문자에 발차기까지 동원했습니다. 젊은이는 결국 원저우 공항에 도착한 직후 공항 경찰대에 체포됐습니다.

종종 일어나는 개념 없는 승객의 행패죠. 그런데 이 젊은이가 홧김에 내뱉은 말이 이른바 '기사'가 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시장이야. 너희들, 아버지에게 말해 복수해주겠어."

특권 의식2

그 젊은이는 푸젠성 푸딩시의 상무 부시장인 정징궈의 아들 23살 정모씨였습니다. 정씨의 '진상짓'은 인터넷 쿵제왕(승무원망)에 올랐고 신화통신 기자가 이를 확인해 기사로 썼습니다.

중국의 누리꾼들이 들끓었습니다. '특권의식이 대물림하고 있는 증거'라며 성토가 잇따랐습니다. 중국인들이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줄을 잇기 때문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10년 10월 발생한 이른바 '리강 사건' 입니다. 지방 공안국장의 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 농촌 출신의 가난한 여대생을 들이받아 숨지게 했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힌 사고 운전자는 책임 인정과 사과 대신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아버지가 공안국장 리강이야."

얼마전 임상범 특파원이 소개한 링지화 중앙당 서기처 아들의 사건도 있습니다. 그도 비싼 스포츠카를 술에 취한 채 운전하다 다리 난간을 들이 받아 숨졌습니다. 함께 타고 가던 여성 2명은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링지화가 자신의 권력을 동원해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중국어로 특권층의 2세를 일컫는 '푸얼다이'가 저지른 사건은 이밖에도 많습니다. 국민가수 리솽장의 아들이 술집 접대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도 기억납니다. 그러니 중국의 서민들이 특권의식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저는 몇 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두서가 없지만 같이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이 남의 나라, 다른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도 같은 성격의 사건이 여럿 있었습니다.

재벌 3세가 자신의 고급차 앞으로 '감히' 소형차가 끼어들었다고 상대방 운전자를 폭행한 일은 이제 전설입니다. 아들이 술집에서 종업원들에게 얻어맞자 어깨들을 동원해 직접 '복수'에 나선 재벌도 있었죠. 최근에는 한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들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SNS에 올렸다가 파문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 특권층의 특권의식 대물림도 만만치 않다는 증거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할지도 모릅니다. 특권층 숫자 대비 사건 발생 비율을 따져본다면 말입니다.

특권 의식3

아들의 잘못으로 부모가 욕을 먹는 것은 전근대적인 '연좌제'에 해당한다는 논쟁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들의 잘못은 아들의 문제일 뿐 이를 왜 부모가 책임지느냐는 문제제기죠.

앞서 예로 들었던 중국의 문제 푸얼다이들은 모두 아버지가 엄중한 책임을 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 권력에서 밀려나고 심지어 수사 대상에까지 올랐습니다.

잘못 키운 아들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기내 난동꾼의 아버지 정징궈 부시장도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아들은 23세의 성년인 만큼 자신의 잘못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일이 바빠 아들과 충분한 대화를 못했다"며 "앞으로 엄한 가정교육으로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특권의식을 내가 심어준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럼 기내 난동을 부린 정모는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비뚤어진 특권의식을 배우게 됐을까요? 결국 가정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변명해도 아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중국은 그나마 아버지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렸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하냐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 문제 푸얼다이들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멀쩡합니다. 물론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사법 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건재합니다. 중국이 전근대적인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인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인지 헷갈립니다.

마지막으로 든 상념은 그렇다면 중국의 기내 승무원들은 온전히 피해자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도 이런저런 출장이 많다보니 중국의 여객기를 무척 자주 이용합니다. 여객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점은 기내 휴대전화 사용 문제가 꽤나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여객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고 있는데도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 받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심지어 통화하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물론 승무원들이 제지하기도 하고, 꺼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그냥 넘어갑니다. 승무원들이 이륙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못보고 지나가는 수도 있고 봤더라도 모르는 체 합니다.

반면 이, 착륙시에는 물론 비행 전 과정에 전자기기를 켜는 것 자체를 금지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이륙을 한 지 한참 지나 1만3천 미터 넘는 고도로 운항 중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서 취재를 위해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승무원이 오더니 '당장 스마트폰을 꺼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통신과는 무관하고 그저 사진을 보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이미 비행모드로 설정해 놓은 것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승무원은 언성을 살짝 높이더니 '무조건 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이착륙 과정도 아니고 비행 모드면 비행의 안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했더니 '규정이 그렇다'며 보안요원을 부를 태세였습니다. 결국 스마트폰을 완전히 끄고 확인까지 시켜줘야 했습니다.

옆의 중국 승객에게 물어보니 '중국 기내 규정이 실제 그렇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저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내에서 전자기기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통신 간섭으로 인해 비행의 안전을 위협해서 아니냐고. 그러자 대답이 이렇습니다. "통신에 관련돼있는지 어떻게 일일이 확인합니까. 그러니 전자기기를 아예 끄게 하는 것이죠."

지나치게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들이 바쁘면 실제 이, 착륙 시에 위험한 상황에서도 별 상관하지 않다가 아무 문제없는 상황에서의 사용은 문제를 삼는 행태가 말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 착륙 시까지 전자기기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안전 시험을 통과해서입니다. 안전 문제만 아니라면 굳이 승객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어서입니다.

말하고 싶은 바는 이렇습니다. 중국의 승무원들이 왜 기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지 승객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점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규정을 앞세워 불편하게 굴고 있다는 관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자기기 사용과 관련한 갈등이 빈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중국도, 우리나라도 2세들의 특권의식은 정말 허망합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특권이 아닌 만큼 이를 받아줄 일말의 이유도 없습니다.

특권층이 자신의 자녀에게 '기를 살려주는 교육'이니 '제왕학'이니 하면서 특권의식을 키워주는 것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입니다. 아니, 우리나라는 아니고 중국만 그런 건가요?

아무리 필요한 규제라도 합목적적으로 운영돼야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규제니까 무조건 지키라’는 태도는 또 다른 특권의식일 뿐입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들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