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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용한 비자금…묻지 말고, 따지지도 말라?

3년 전 일입니다. 최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그 얘기가 왜 또 나왔는지, 처음엔 의문이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한국기계연구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연구원에 그런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부들은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만들었습니다. (기계연구원은 '비자금'이라는 표현에 논란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몰래 1억6천만 원을 조성했습니다. 이런 게 비자금 아니면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다 2011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 적발됐습니다. 기계연구원 내부 감사, 혹은 당시 지식경제부 감사관실에서 적발된 것이 아닙니다. 기계연구원 자체 감사는 이걸 까맣게 몰랐습니다.

국책 연구기관, 기계연구원이 비자금을 조성한 방식은 단순합니다. 일명 '페이백', 더 줬다가 돌려받는 겁니다. 요즘 휴대전화를 이렇게 음성적으로 팔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계연구원에서 기술 이전에 기여한 연구원에게 기술료의 10% 이상을 인센티브로 주는데, 이걸 1,000만 원 줬다가 500만 원은 다시 돌려받는 식입니다.

그렇게 야금야금 비자금을 만들었습니다. 2009년에 직원 2명을 이용해 5천만 원, 2010년에는 직원 18명의 명의를 이용해 1억1천만 원을 만들었습니다. 2년간 만든 돈이 1억6천만 원입니다. 국무총리실 감사 결과입니다.

1억 6천만 원 가운데, 쓴 돈은 8,700만 원 정도입니다. 기관 운영 경비로 5,100만 원을 썼습니다(2009년 2,600만 원, 2010년 2,500만 원). 서류상은 연구원에게 인센티브로 준 것처럼 되어 있는데, 사실 기계연구원에서 알아서 잘 썼다는 것입니다. 대외협력비로 쓰기도 했습니다.

연구원은 이걸 '대외 협력'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실제로는 당시 연구원의 소관 부처인 지식경제부 직원을 유흥주점에서 모시고 쓴 돈입니다. 기계연구원은 지경부 관계자 7명을  두 차례 접대했습니다. 다른 섭외성 경비를 포함해, 대외협력 명목으로 쓴 비자금은 3,900만 원입니다.

지난 비리를 다시 들춰낸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쓴 비자금은 8,700만 원, 쓰지 않고 관리하던 돈은 7,300만 원인데, 기계연구원은 안 쓰고 남은 7,300만 원만 다시 연구원 일반 계좌에 입금시켰습니다. 총리실이 그렇게 하라고 문서로 통보했습니다. 기관 멋대로 쓰던 돈을 국고에 정상 반납했습니다. 반면 이미 쓴 비자금 8,700만 원, 이건 지금도 반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유흥주점에서 흥청망청 쓴 돈도 반납 안 하고, 아직도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기계연구원은 당시 기관장을 포함해 비자금 조성에 연루된 10명에 대해 내부 징계를 내렸지만, 배임이나 횡령 혐의로 형사고발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이걸 새정치연합 미방위 소속 송호창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지난 비리, 이걸 다시 기사로 언급하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기계연구원 기관장의 발언 때문입니다. 임용택 기계연구원장은, 유흥비를 포함해 이미 쓴 비자금 8,700만 원은 왜 반납하지 않느냐는 송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국정감사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참고로, 임 원장은 2011년 비자금 조성과는 관련이 없는 현재의 기관장입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10월27일)
-(송호창 의원) 국무총리실 요청에 따라 (이미 쓴 비자금 8,700만 원을) 환수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 (임용택 기계연구원장) 당시 저희들이 국무총리실에서 나왔던 지시 사항은 전부 이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행하지 않았다니까요, 환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요.
= 8천은 환수를 했고요, 7천만 원에 대해서는 환수를 하라는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환수하지 않았고…

- 횡령을 해서 1억6천 자체를 만든 것 자체가 횡령인데, 왜 사용한 것은 환수를 왜 하지 않습니까, 그건 명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물론 의원님 말씀이 논리적으로…

- 논리적인 게 아니라 법적으로 의무가 있는 거라고요.
= 근데 저희가…

- 그게 원장님 개인 주머니에 있는 게 아니라 국가 예산이라고 해서 그렇게 함부로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 그렇진 않습니다.

-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 조치를 하지 않는 겁니까.
= 하여튼 저희들은 주어진 조치 사항에 완결을 했다고 생각하고, 미진한 부분 있으면 좀 더 검토를 해서 조치를 하겠습니다.

- 그래서 금액 전체를 환수를 할 계획이 없다, 이 말씀이죠?
= 아니 그러니까 저희들이 그 당시에 분명히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또한…

- 알겠습니다, 앉아주세요.
= 네.



"주어진 조치 사항에 완결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게 기계연구원장이 (사적인 자리가 아닌) 국정감사에서 밝힌 공식 답변입니다. 본인이 당시 비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발언에는 당당함까지 묻어났습니다. 순간, 제가 잘못 들었나? 생각했습니다. 유흥비 등으로 이미 쓴 돈은 총리실에서 환수하라는 통보가 없었으니까, 안 했다, 근데 그걸 왜 추궁하느냐는 식입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처럼, 성공적으로 쓴 비자금은 묻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후임 기관장으로서 대대적인 청렴 캠페인을 벌여도 부족할 것 같은데, 연구원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고 밝히신 거죠. 업무상 횡령과 배임죄의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총리실에서 적발한 게 3년 전이니까, 공소시효는 아직 7년이 남았습니다.

임용택 기계연구원장님께 공개적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검찰은 왜 범죄수익금을 환수하기 위해 그토록 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검찰은 왜, 수십 년 지난 전두환 씨의 비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전 씨 일가와 숨바꼭질을 벌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들이 이미 쓴 비자금, 부동산이든 채권이든, 그것을 역추적해 전 씨 비자금으로 사들인 것이 확인되면 끝까지 환수하는 것, 굳이 왜 그런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법원에서 배임과 횡령 혐의가 유죄로 확정돼 법에 따라 재산을 환수당하는 피고인들, 기계연구원은 치외법권에 있다고 생각하신 건지. "이미 쓴 비자금도 환수할 것", 총리실에서 이렇게 문서로 명문화해 통보해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고발도 환수도 하고 있지 않다는 말, 이걸 알게 된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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