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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월드리포트] 젊은 대사가 간다

[단독] [월드리포트] 젊은 대사가 간다
지난 10월 24일 오바마 대통령이 국무부에서 열린 마크 리퍼트 신임 주한 미 대사의 선서식에 모습을 나타냈다. 손으로 리퍼트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케리 미 국무장관이 미소를 짓고 있다. 맨 왼쪽 끝은 국무부의 랩슨 한국과장이다. 그 사이에 서 있는 여성은 리퍼트 대사의 부인이다. 임신 중이다. (사진 백악관)

 41살의 젊은 대사 리퍼트(Mark William Lippert)가 장도에 올랐다. 지금쯤 태평양 상공을 날며 생각에 잠겼을 게다. 직업 외교관도 아닌데 대사라는 큰일을 맡아 잘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도착하면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텐데 무슨 얘기를 할까?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냐 물으면 "불고기"라고 답하고 넘어갈 텐데 김정은 얘기가 나오면 뭐라 하지? 북핵은? 6자회담은? MD는? 골치 아픈 일본 얘기를 꺼내면 답을 안 할 수도 없고...
 
리퍼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24일 금요일이었다. 워싱턴 DC 서북부 고즈넉한 곳에 자리 잡은 주미 한국 대사관저, ‘대사의 집’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워싱턴 바닥의 지한파 인사들이 모였고, 헤이글 국방장관도 참석했다. 파티의 주인공은 리퍼트였다. 리퍼트는 백악관에서 나온 뒤 국방부 차관보와 국방장관 비서실장(Chief of staff)을 지냈다.
이성철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 까다롭기로 유명한 의회의 인준, 그리고 이날 케리 국무장관 앞에서 선서까지 모두 마쳤으니 비행기 탈 일만 남았다.
 
부인도 함께 왔는데 배가 나온 모습이었다. 오래지 않아 한국에서 아기를 낳게 될 것 같았다. 리퍼트에게 물었다.

"대사님, 한국에 가면 중재역을 맡을 건가요,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와 함께?"
 
취재진들이 자지러졌다. 청문회 때 모호한 발음으로 오보 소동을 빚었던 일화를 떠올려 던져본 질문이었다.
 
"지금 인터뷰를 하려는 건가요?"
 
리퍼트는 웃고 넘어갔다. 주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하도 친하다기에 함께 골프는 쳐 봤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지는 못했단다.
 
이날 낮 국무부에서 열린 선서식 얘기가 나왔는데, 리퍼트가 뭔가 한국말을 하려 했다.
 
"오바마 대통령 외써요(??).. 와써요.."
리퍼트 대사
자신의 선서식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왔다는 얘기였다. 선서식(swearing-in)은 국무장관이 주재하고 보통 가족들과 초청받은 지인들이 참석한다고 한다. 그런데, 행사 도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국무부 청사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선서식에 참석했던 안호영 주미대사도 자신이 목격한 모습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워싱턴 국무부로 돌아가는 성 김이나 그 전의 캐슬린 스티븐스, 최근 회고록을 낸 크리스토퍼 힐 등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주한 대사를 지낸 이들은 좀 섭섭할 수도 있겠다. 나이는 어려도 대통령하고 가까운 게 그리 큰 자산이라니.
 
성 김이나 힐은 대사를 맡기 전부터, 또 대사를 마치고 나서도 직업 외교관으로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할일을 했다. 그들만이 가진 장점, 덕목을 십분 발휘했으리라.
 
마찬가지로 미 의회가 자리 잡은 언덕 캐피톨 힐(Capitol Hill)에서 잔뼈가 굵은 리퍼트는 그만의 장점, 덕목이 있다. 상원의원과 보좌진, 또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로서 다진 정치적, 정무적 인연도 자산이라면 자산이다.
 
리퍼트가 탄 비행기가 곧 착륙할 한반도는 짙은 안갯속이다. 남-북간에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얼마 전 제프리 파울씨를 데리러 미 군용기가 평양 순안공항까지 들어가 북-미 관계에 뭐가 좀 있으려나 했더니, 스카파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핵무기 소형화' 얘기를 꺼내 긴장도를 확 높여놨다. 그의 말도 끝까지 잘 들어보면 '아 다르고 어 다른'부분이 있는데 마구 가위질을 해댄 보도에 위기감은 한껏 증폭된다.
 
베테랑 정치인 출신의 외교수장 케리 국무장관의 '주한미군 감축' 발언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면 위협 자체가 줄어들고 그런 정치적 공간 속에서 북한이 제기해 온 안보 우려 해소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는 장기 비전의 일단을 제시한 것이건만, '위협 감소(threat reduction)'는 오간데 없고 '미군 감축(troop reduction)'만 남는다. 
이성철 취파
오바마 대통령이 리퍼트 신임 주한 대사를 끌어안고 격려하고 있다. (사진 백악관)

지금 한반도에 필요한 건 정치 부재 상태의 해소다. 그리고, 정치 과정의 복원을 통해 해야 할 것은 케리 장관의 말대로 위협의 감소다. 위협이 줄면 굳이 '사드(THAAD)'같은 비싼 무기를 사들이지 않아도 안보는 강화된다. 안보 딜레마의 역(逆)이다.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오바마와 통할 수 있는 젊은 대사 리퍼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리퍼트 대사는 항공편 연결 문제로 예정보다 하루 늦게 출국해 한국에 '지각 부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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