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데스크칼럼] 통일단상, 자칫하면 반쪽만 남을 수도

통일이 ‘목적’ 아닌 기회제공의 ‘수단’이란 인식 필요

[데스크칼럼] 통일단상, 자칫하면 반쪽만 남을 수도
우리 국민들은 참 많은 것에 만성이 돼 있다. 불황, 한심한 정치, 사교육, 대형 사고에 만성이다. 그중 가장 위협적인 것인데도 만성적 불감증을 보이는 것이 북한 위협이다. 화해모드에도 무관심하긴 마찬가지다. 냉온탕이 반복되다보니 일시적 관심은 가지되, 별 느낌이 없다.

북한 수뇌부의 전격방문에 이젠 뭔가 이뤄지려나 했는데, 곧바로 포격과 총격이 오간다. 그렇다고 긴장하는 국민들도 없다. 만성이 된 거다. 실제로도 항상 그래왔다. 언론에서는 관행적으로 충돌기사를 톱기사로 내세운다. 방송 메인뉴스와 신문 헤드라인에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시커먼 편집으로 기사를 올려도 시청자와 독자는 제목만 보고 눈길을 돌린다.

하지만 그 만성적 불감증 속에서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큰 변혁은 꿈처럼 다가와 지나갔다. 그들에겐 불멸의 지도자로 여겨졌던 김일성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일도 떠나고, 불가능할 것 같던 3대 권력세습 역시 국제사회의 비아냥 속에 실제로 이뤄졌다. 아마 그렇게 통일도 꿈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걸까. 우리의 소원은 진짜 통일일까. 사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 사람은 이산가족이나 납북자 혹은 탈북자 가족 말고 얼마나 될까. 특히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우리 젊은이들은 통일을 얼마나 원할까.

각종 설문조사에서 절반 안팎의 우리 청년들이 조속한 통일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건 취업의 기회, 복지의 기회, 안전의 기회가 오히려 줄어들고, 반대로 값싼 인력의 유입으로 취업난 심화, 북한 주민을 위한 복지부담 급증, 사회 부적응자 증가에 따른 치안불안 등으로 막대한 통일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우리 입장만 볼 게 아니라 북한 주민 입장도 살펴야 한다. 최근 몇 년 새 새터민이 다시 북한으로 재입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한국이 그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 평등의 기회, 생활안정의 기회를 주는 ‘새터’가 되지 못한 게 큰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근본적인 질문을 한 번 던져보자. 갑작스레 북한정권이 무너질 경우 우리가 북한주민들을 떠안아야 한다는 숙명은, 우리가 착각하는 숙명이 아닐까?

전문가들 이야기를 빌면 북한이 몰락할 경우 국제법상 유엔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명목상 북한 주민들의 국민투표로 특정 국가 귀속여부가 결정될 건데, 그것이 남한이 아니라 중국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반목과 문화적, 정서적 이질성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北中 관계가 갈수록 밀착되면서 북한주민이 중국을 더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다. 중국에 편입될 때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북한주민들은 망설임 없이 중국에 표를 던질 것이다.

단지 남한이 더 잘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남한 편입을 원할 거라는 것은 그들의 정서와 자존감을 무시한 비현실적 판단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단일민족이란 정서에 기댄 논리도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사의 상식에선 가까운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큰 법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원래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적지만, 가까운 사람에겐 많은 기대를 하기에 그만큼 못 받으면 더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형제간에 싸움이 나면 남보다 더 멀어지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도 남한에 대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모든 선택의 핵심기준은 나에게 주는 이득이다. 역사적, 민족적 당위성만 내세운 채 백날 통일을 외쳐도, 그것이 주민들의 삶에 주관적, 객관적으로 손해를 준다면 누가 원하겠는가.

현실적인 목적을 가지면, 구성원들은 수단을 찾고 실행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목적을 공동번영으로 삼고, 수단을 통일로 정하면 어떨까. 동요가사처럼 ‘온 겨레 살리는 통일’로서 통일이 남북한 주민들에게 재도약의 기회, 새 출발의 기회를 준다면, 양쪽 모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변할 듯하다.

‘잘 살지만 거들먹거리는 남한’, ‘못 살면서 자존심만 세우는 북한’이란 상호불신의 정서를 완화시키고, 공동번영을 위한 필수재로서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노력이 양쪽 모두에게 필요하다. 북한은 현재 경제파탄으로 군사위협과 핵개발 외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렇게 본다면 남북관계에서 주도적인 키를 잡을 수 있는 여력은 우리 쪽에 많다고 볼 수 있다. 정권마다 바뀌는 대북정책을 버리고, 장기적으로 지켜가야 할 통일비전의 제시가 절실해 보인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