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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알뜰하지 않은' 알뜰 주유소

[취재파일] '알뜰하지 않은' 알뜰 주유소
‘온라인 최저가’, ‘10년 전 가격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를 솔깃하게 하는 마케팅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싼 값 마케팅’은 대개 많이 이용하고, 자주 구매하는 생필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어차피 비싼 돈 주고 사려는 명품은 굳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울 필요가 없고, 일 년에 한두 번 구입하는 물품들의 경우는 ‘우리가 제일 싸다’고 무리하게 마케팅을 할 필요가 크지 않지요.

정부가 ‘싼 값 마케팅’을 내세운 게 바로 알뜰주유소입니다. 물론 기업처럼 많은 수익을 내거나 재고를 정리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서민 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기름 값을 줄여주겠다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정책이지요. 기존 정유 4사의 독과점 구조에 새로운 경쟁자를 만들어 가격인하를 선도해 소비자 혜택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석유공사와 전국적인 유통망을 보유한 농협이 경쟁력 있는 새로운 공급자로 선택됐지요.

문제는 당초 목표했던 것만큼 알뜰주유소가 그렇게 값싸지 않은데 있습니다. 알뜰주유소는 당초 정유사의 일반 주유소보다 60원~100원 정도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전체 알뜰주유소 10곳 중 무려 8곳에서 농협 알뜰주유소의 경우는 10곳 중 9곳이 이 기준에 못미쳤습니다. 실제 제가 다녀온 경기도 화성의 한 알뜰주유소는 휘발유 1리터에 1838원, 경유는 1628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반경 3km 안에 있는 16개 일반 주유소와 가격을 비교해보니 13개 일반주유소가 알뜰주유소보다 오히려 더 쌌습니다. 한국석유공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23일 기준, 자영 알뜰주유소의 10%가, 농협 알뜰주유소의 경우는 30% 정도가 일반주유소와 가격이 같거나 오히려 더 비쌌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정부 정책에 따라 유통마진을 줄여 기름을 공급하기로 한 농협과 석유공사가 얻는 수익이 매년 수십억씩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협의 경우 알뜰주유소를 운영해 2012년에는 51억원, 지난해에는 85억원, 올해 7월 현재까지는 42억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농협 주유소 운영에 대한 이득이 아니라 농협이 농협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며 얻은 수익만 따진 것이지요. 석유공사의 경우는 2012년에는 13억원의 적자를 봤지만 지난해에는 10억원, 올해 8월 현재까지는 2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는 아예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유통마진으로만 수익을 내는 셈이지요.

알뜰주유소 공급자 선정 관련한 계약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농협은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4사와 입찰을 통해 2곳을 선정합니다.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국제제품가격, 이른바 MOPS에 얼마를 더 받고 기름을 팔 지를 정해 입찰하고 농협이 이 가운데 싼 가격을 제시한 업체 2곳을 고르는 방식입니다. 올해의 경우 MOPS에 9.5원을 더해 팔겠다는 업체가 1위, 12.97원을 더 받겠다는 업체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농협은 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최종 낙찰가격을 12원으로 정했습니다. 9.5원에 팔겠다는 업체에게는 2.5원의 이득을 줬고 2위 업체에겐 0.97원을 깎은 셈입니다. 하지만 9.5원과 12.97원의 평균값보다 높은 가격에 최종 낙찰된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됐습니다. 결국 정유사의 이득은 올려주고 소비자의 부담은 늘리게 됐지요.

농협은 1, 2위 입찰 이후 법에 따라 협상을 통해 2곳의 최종 낙찰가격을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2위 업체에게 1위 업체가 제시한 가격을 요구하려 했지만 이는 입찰주관사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거래로 본다는 사내변호사의 의견에 따라 9.5원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1위 업체가 똑같은 물건을 2위 업체와 다른 가격을 받고 파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계약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서 1순위의 가격은 올려주고 2위 업체의 판매가격을 조금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조정은 해마다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해에도 MOPS에 17원을 더해 팔겠다는 업체가 1위를, 25.85원을 더 받겠다는 업체가 2위를 했지만 최종 낙찰 가격은 21원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나마 올해보다는 평균에 가까운 가격이었지만 당시 1위 업체는 자신이 입찰에 제시한 가격보다 낙찰가격이 올라가면서 가만히 앉아서 43억원의 이익을 봤습니다. 올해의 경우도 1순위 업체는 약 15억원의 이득을 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자료를 분석한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은 추가 의혹을 제시했습니다. 지난 7월 17일, 그러니까 농협이 1순위 업체와 2순위 업체의 가격을 조정해 최종낙찰 가격을 정한 뒤 계약을 체결하기 하루 전 날인 7월 16일, 1순위 업체가 농협에 '전략적 제휴를 통한 상생방안'이라며 농협의 농산물 구매에 협조하고 하나로마트에서 사용하는 상품권과 제휴 등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실제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농협 관계자를 증인으로 채택해 질의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농협 측은 이는 뒷거래 의혹도 아니고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정도의 제휴방안이라고 답했지요. 실제 1순위 업체가 농협의 농산물을 구매하거나 상품권 제휴 서비스가 도입된 것은 아직 없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중 만난 알뜰주유소 인근에 있는 일반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은 소비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알뜰이란 말로 속이는 것 같아요. 알뜰이라면 더 싸야지, 왜 비쌉니까? 내가 알뜰주유소에서 넣었다면 배신감이 들었을 거예요. 이름가지고 장난치면 안 됩니다.”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더 값싸게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든지, 수익을 줄여서 가격을 낮추든지 아니면 공급권자 계약 방식을 바꿔서라도 진짜 알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알뜰이라는 이름은 또 하나의 마케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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