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자가 '벼룩'이 된 사연

새누리당의 엉성한 중국 방문 일정

정형택 기자 goodi@sbs.co.kr

작성 2014.10.16 09:29 수정 2014.10.16 11: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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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도 서말이면 힘든데 마흔둘 아이가(아닌가의 사투리)"

때 아닌 벼룩 발언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방중 이틀째인 지난 14일 베이징 시내 한식당에서 박대출 대변인이 몇몇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기자들은 엉성한 조율로 인해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박 대변인에게 호소했습니다. 실제로 방중 일정 내내 모든 게 엉성했습니다. 취재기자 33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정인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면담장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건 단 4명에 불과했습니다. 취재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해 달라는 공산당의 요청을 새누리당이 별다른 저항(?)없이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김무성 대표와 시진핑 주석의 간단한 인삿말을 5분 남짓 듣고 나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앞선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부주석과의 면담 자리는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왕자루이 부주석의 모두 발언이 끝나고 김무성 대표의 인삿말이 시작되는 순간, 갑자기 면담이 비공개로 전환됐습니다. 말 그대로 인삿말에서 민감한 발언이 있을리 만무했는데도 회담은 공산당의 제지로 비공개로 전환됐습니다. 기자들은 회담장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누리당이 중국 공산당과 10분만 공개하기로 사전에 정했기 때문입니다. 엉성한 준비와 융통성 없는 대처로 취재기자들은 김무성 대표의 발언을 취재할 수 없었고  면담 이후 새누리당에서 제공한 '대표 말씀 내용'을 받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자 취재기자들의 불만은 커졌습니다. 결국 김무성 대표까지 진화에 나섰습니다. 시 주석과의 면담 결과를 직접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겁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한반도 비핵화를 재확인했고, 특히, 시 주석이 북핵 억제의 최적의 수단을 6자회담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다음날(15일) 한정 상하이 당서기 면담도 예정돼 있던터라 기자들의 우려는 컸고, 그런 우려가 박 대변인과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터져나온 겁니다. 그런데 박 대변인은 "통신 교통 간담회 장소 등 기자들의 모든 요구를 우리가 해결하기는 어렵다. 벼룩도 서말이면 힘든데 마흔둘 아이가"라고 말했습니다. 42명의 벼룩은 취재기자 33명과 영상기자 7명, 사진기자 2명을 포함한 방중취재단 42명을 가리킵니다. 사전 조율의 엉성함과 준비 부족을 지적한 기자들을 '벼룩'이라고 지칭하고 오히려 기자들 때문에 방중 일정이 수월하지 않다고 남탓을 한 겁니다.취파
기자를 벼룩에 비유한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박 대변인은 서둘러 해명에 나섰습니다. 편한 자리에서 편한 기자들에게 농담으로 한 말이었고, 야성이 강한 사람들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벼룩에 비유하는 건 통상적으로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 역시 언론인 출신으로, 기자들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기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건 벼룩에 비유해서가 아닐 겁니다. 순방 일정 거의 대부분이 비공개로 채워져 있고, 공개되는 내용은 인삿말이 전부인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겁니다. 물론, 양국 간 외교현안에 대한 민감한 대화까지 기자들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순방길에 동행한 기자들에게 단지 회담 시작 5분 또는 10분만 듣고 나가라는 것은 취재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기왕 국감기간 3박 4일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할애한 방중인만큼 분명한 성과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성과는 국민들에게 공개돼야 합니다. 단지, 양국 간의 우호 증진에 기여했다는 수사적 표현을 국민들이 국감을 포기하고 얻은 성과로 납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