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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복지증세의 축/ 소득세, 소비세 어디가 나을까?

조세정의론 직접세, 현실은 양쪽 다

[데스크칼럼]복지증세의 축/ 소득세, 소비세 어디가 나을까?
사고 때 생명을 지켜주는 제1안전장치는 에어백이다. 승용차에 이어 이제 택시에도 에어백이 의무 장착된다고 한다. 현재 택시 조수석 에어백 장착률은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좋은 일이지만, 택시업계는 달갑지 않다.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운전석 에어백에 이어 조수석뿐만 아니라 모든 좌석에 커튼식 에어백까지 일반화되면서, 차량의 안전도는 크게 상승했지만 그만큼 차가격도 올랐다. 안전은 비용을 수반한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향하는 보편적 복지 노정에서도 곳곳에서 재원마련의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말의 수사에 불과하다. 단기적으론 중복 재정을 잘 걸러내고, 중요하지 않은 곳에 대한 세출을 줄이거나 없애서 아낀 돈으로 복지재원을 충당할 순 있겠다. 하지만 낙곡을 주워서 끼니는 때우더라도 한해를 버틸 순 없다.

결국은 증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섣불리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각종 공적 부담금은 훨씬 아프게 와 닿는다. 도대체 우리 경기는 언제부터 불경기가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지표상 경기가 좋게 나오는 해도 있지만 서민들은 체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동차, 전자 등 수출경기만 좋고, 식음료나 자영업 같은 이른바 내수업종은 찬밥이기 때문이다. 덩치 큰 수출기업의 전체 실적이 평균값을 올리다보니 착시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고달픈 서민들에게 대놓고 증세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다보니 말의 포장만 난무한다. 지나친 감면 혜택 같은 ‘비정상’을 ‘정상화’ 한다는 것도 그렇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분명히 많아졌는데, 증세가 아니라니 서민들 복장이 터진다.

국민 불만에 노출되지 않게 세금 올리는 방법은 없을까? 담뱃세 같은 게 많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건강증진의 명분이 있고, 비흡연자인 국민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에 그나마 추진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건 많지 않다. 세금을 더 낸다는 의식을 갖지 않게 더 걷어가는 세금으론 간접세만한 게 없다. 담뱃세 역시 간접세다. 상품을 살 때 자신도 모르게 내는 부가가치세나 소비세는 대개 상품가격으로 생각하기에 부담 없이 내게 된다. 간접세는 올리더라도 소비자는 잘 모를뿐더러 사람들은 물건 값이 오른 것으로 생각하기에 오히려 제조업체를 욕하기 쉽다.

또한 간접세는 소비에 대한 세금이기에 비임금 소득자에게도 부담을 지워 복지에 대한 왜곡이 적고, 실업급여 등으로 생활하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간접세가 조세형평성과 소득재분배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득이 열배나 차이가 나도 세금을 똑같이 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소득 적은 사람도 기분 나쁘지 않게 세금을 낸다는 거다.

정치권이나 정부는 그러기에 부담스럽다. 상대적으로 거부감 없이 올리긴 쉬운데, 조세정의에 맞지 않는다. 어떤 국가도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자의 조세부담률을 소리 없이 높이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누진적인 성격을 띠는 소득세 같은 직접세로 갈 수밖에 없는데, 직접세는 세금을 내는 사람이든 안 내는 사람이든 정서적 반발이 극심하다.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 같은 각종 준조세도 줄줄이 오르는 판에, 게다가 불황과 고용불안이 판치는 와중에, 내 소득에서 직접 떼 가는 세금은 강탈당한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만 그럴까? 모범적 복지국가로 고율의 세금에 익숙할 걸로 여겨지는 북유럽의 고소득자들이 고국을 등지는 이유도 지나치게 높은 소득세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지재원 마련방안을 어떻게 짜야 할까? 일반적으로 간접세 같은 역진세가 저소득층에게 불리한 만큼,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세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다시 말해 복지확대는 역진세 및 간접세보다는 누진세 및 직접세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이념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간접세 강화는 진보진영의 금기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국사례를 통한 많은 연구들에선 증세가 이런 논리구조에 따라 이뤄지지는 않는다. 인하대 윤홍식 교수의 연구를 보면, 1965년부터 2008년 사이 OECD 국가들은 GDP 대비 누진세 비중을 30%, 역진세 비중을 42% 씩 각각 늘렸다. 조세정의상 복지 증진을 위해 소득세 같은 누진세를 늘려야 타당할 걸로 보이는데, 그보다 소비세 등 역진세를 더 많이 늘린 것이다. 특히 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경우, 이 기간 동안 누진세 비중은 오히려 감소한 반면, 역진세는 76% 증가했다. 그것도 좌파정권 집권기간에 말이다. 다만 덴마크에선 이 기간 동안 누진세가 86% 증가한 반면, 역진세는 23% 늘어나는 데 그쳐 통념과 일치했다.

이런 사례로 본다면, 복지재원을 위한 우리의 증세 방향은 간접세나 직접세 어느 한쪽에 치중하기보다는 양쪽 다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할 듯하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다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자영업자나 면세자 비율이 높은 한국의 경우, 직접세의 세원을 넓히고 동시에 간접세도 올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 다수의 이야기다. 정치 리더십이 증세의 불가피성을 솔직히 표현하고, 그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심도 있게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증세 이후 더 많이 거둔 세금을 어디에 쓰느냐도 중요하다. 스웨덴은 소비세처럼 저소득층에 불리한 간접세를 통해 거둬들인 재원을 불평등 완화에 지출해, 서민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동시에 보편주의 복지구축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이런 역진세를 소외계층 복지확대가 아닌 재정적자 보전에 지출하면서 복지의 모범에서는 벗어났다.

증세 추진의 힘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현재 있는 세금도 싫은데, 증세는 더 싫을 것이다. 나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줄 것이란 신뢰가 없으면 세금뿐만 아니라 어떤 공적부담금에도 반발할 수밖에 없다. 갈 길이 멀기에 첫 걸음을 잘 디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선 현 정부의 스탠스도 의미가 있다. 무턱대고 증세가 아니라, 현재 낭비되는 세금을 줄이고, 효과 없는 감면정책을 폐지하는 세출 구조조정이 정말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정책부터 정말 잘할 필요가 있다. 작은 복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큰 복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작은 복지의 효용을 체험한 사람들이 큰 복지를 위한 기여에도 적극적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증세에 대한 반감도 한결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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