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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우러러보는 자수성가, 악덕이 될 수도…

- 타인에게 가혹하고, 과거에 집착

[데스크칼럼] 우러러보는 자수성가, 악덕이 될 수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우리 선수들의 인터뷰 가운데,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훈련기간을 “매일 매일이 죽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하루 하루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훈련한 끝에 결실을 얻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죽을 만큼 고생하고도 순위에 들지 못해 숨죽여 우는 선수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일반적인 인생의 노정도 그럴 것이다. 부와 명예, 권력처럼 모두가 원하는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모두가 그걸 얻겠다고 죽도록 노력하지만 승자보다는 패자가 더 많다. 그러기에 성공은 값진 것이고 우러러 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그 성공이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여건에서 이뤄졌다면 말 그대로 자수성가형 성공 스토리가 된다.

그런데 기자생활을 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과 만남을 갖다보면, 이런 자수성가형 성공이 불편할 때를 가끔 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통념상 가장 존경받는 성공모델로 꼽히는 자수성가형 성공인들에게서 배울 점보다는 반면교사로 고쳐야 할 단점을 의외로 많이 보게 된다는 거다.
 
자수성가형 성공인들은 대개 자신의 무용담 위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를 세우기 쉽다. 자신의 성공경로에 대한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방법론을 인정하는데 인색하고, 타인에 대한 평가에도 가혹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단점이 극대화되면 이른바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려움을 만나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선 나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멘탈 갑’인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턱도 없는 일’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한심한 것이다. 타인이 이룬 성과 역시 “그 조건이면 누가 못 하냐”며 폄하한다.

산골마을 빈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지방에 큰 식당 몇 개를 운영하면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이 있었다. 식당 규모가 아주 커서 직원들도 많았는데, 직원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통이 있었다. 변비였다. 원인은 식당 사장이 수시로 화장실을 돌며 볼 일을 보는 직원들을 닦달했기 때문이다.

“야 이 인간들아, 일하러 온 거야 대변 보러 나온 거야. 얼른 나오지 못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게 열심히 살아온 사장님에겐,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일하고 양변기에 20~30분 눌러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희희덕거리는 직원들이 한없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의 집에는 가훈을 담은 큰 액자가 거실에 걸려있었다. 북한의 선전벽보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 큰 글자는 ‘각자 잘 살자’였다. 자녀 셋을 해외유학 보내도 그 비용이 ‘새 발의 피’밖에 안 될 재력을 가졌지만, 가혹한 아버지는 유학은 커녕 중학교 시절부터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쓰게 했다. 시험 때도 식당일을 거들게 했다. 자녀가 간절히 원하는 진로희망을 억지로 바꿨다.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우고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한 현명한 아버지의 결단이 아니라, 자신이 더 큰 어려움도 극복하고 이만큼 이뤘으니, 자식들도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거다. 자신이 볼 때는 애들이 말도 안 되는 직업을 희망하기에 그 고집을 꺾었다는 거다. 그런데 아쉽게도 자수성가의 전설은 아버지에게서 끝났다.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지나친 다그침에 아이들이 모두 어긋나 각종 사고를 치면서 합의금으로 큰 식당까지 말아먹은 것이다.

중학생 폭력_500
자수성가는 의미 있는 성공이지만, 자신의 성공노정만이 전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위험하다. 자신의 틀 속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과 사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배경이 각양각색인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틀을 강요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렵게 성공한 그를 역할 모델로 삼고 존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고통이 이만 저만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성공의 방식이 바뀐다. 사업뿐만 아니라 정치도, 운동도, 국가도 그렇다. 바람직한 리더십의 유형과 시대정신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에 약효가 있었다며 오래된 리더십에 집착하는 정치지도자들에게선 민심이 떠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복지모델은 수많은 갈등과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만들어진 정책의 결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과도한 세금이 자본과 고급인력을 떠나가게 만들고, 복지 의존적 국민들 때문에 국가가 활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모델은 유기체와 같다. 시대변화에 따라 그 모델은 바뀌게 마련이다. 바람직한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정치인과 국가는, 끊임없는 고민과 자기검증을 통해, 시대에 맞게 지속가능한 성공모델을 창출해내는 개척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고통을 공감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약자를 포용하는 역량도 갖췄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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