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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무원 연금 개혁을 위한 제언

[취재파일] 공무원 연금 개혁을 위한 제언
최근 새누리당과 연금학회의 공무원연금 개선안 초안이 공개되면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슈의 촛점이 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연금 개선안 공개 토론회가 무산되는 등 사회적 논란이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당연히 개선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개선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봐야 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공무원연금 초안은 과거에 비해 분명 진일보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퇴직 공무원들에게도 고통 분담의 짐 나눠 지도록 한 점등은 평가할만한 부분입니다. 

● ‘재정안정화'라는 전가의 보도

하지만 내용적으로 몇 가지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연금 문제를 다룰 때 재정안정화는 분명 중요한 한 축입니다. 하지만 너무 이것만 강조하다 보면 노후 생활 보장이라는 연금의 본래 취지이자 또 다른 축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계적으로 국민연금과의 형평을 맞추자는 것이 공무원 연금 개혁의 유일한 원칙이자 최 우선 원칙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국민연금은 매우 중요한 사회보험제도임에도, 역시 재정안정화라는 명목 아래 이미 용돈 연금으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국민의 노후 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등 공적 연금을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적인 하향평준화를 지향했다가는 또 다른 사회 문제가 야기될 수 있습니다. 기초연금의 사례를 보더라도 노후 빈곤은 결국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야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 불이익은 참아도 불공평은 못참는다

둘째, 공무원 내에서도 고위직과 하위직, 장기근속자와 단기근속자, 신규임용자, 경찰, 소방직 여부등에 따라 연금에 대한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갈립니다.

한 예로, 안전행정부는 전체 공무원의 평균 연봉이 5220만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평균의 함정이 있습니다. 안행부는 공무원의 직급별 평균 연봉 자료 공개를 매우 꺼리는데, 공무원 연금공단이 밝힌 퇴직 공무원의 연금 수령 현황을 보면 공무원들의 직급별 연봉을 대략적으로나마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보면 현재 20년 이상 가입한 공무원연금 수령자 32만여명 가운데 2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공무원들이 60%로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점은 100만원대 또는 그 이하의 연금을 받는 공무원도 34%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공무원연금은 소득비례 연금입니다. 월급이 많으면 그만큼 많이 받고 적으면 그만큼 덜 받습니다. 공무원 내부의 연봉 격차가 작지 않다는 사실을 어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 중에는 공무원연금이 일괄적으로 대폭 삭감되면 일부 하위직 공무원들은 노후가 불안정해 질 것이라 우려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개선안 초안을 보면 고위직과 장기근속자들에 비해 하위직과 단기근속자들이 더 많은 고통을 분담하도록 돼 있습니다. 언론이 여러 차례 지적했던 소득재분배 기능이나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연금 소득 상한제는 이번에도 결국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고위 판,검사나 1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은 연봉도 민간 못지 않게 많습니다. 거기에 퇴직 이후에 공기업이나 로펌등으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옮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면서 3-4백 만원에 달하는 공무원연금은 연금대로 챙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 같이 허리띠 졸라매자’는 식도 아니고 하위직과 단기 근속자 (특히 2009년 공무원연금 제도 개편 이후 임용된 공무원들) 에게 ‘당신들이 더 졸라매라'고 하면 그걸 그대로 납득하는 공무원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불이익은 참아도 불공평은 못참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선안 이전에 공무원들의 지위, 업무 특성에 따른 연봉과 처우, 연금 현황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합리적으로 나눠 질 짐을 배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사자 설득이 가능합니다.

●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한가지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번 개선안이 신규 임용 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노량진등 고시촌의 젊은이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그나마 공공 부문에 존재했던 양질의 일자리가 1년에 약 4만개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보다 많이 만들어내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는 모습도 아니어서 더욱 아쉽습니다.)

기어이 젊은 세대의 뼈를 취해야겠다면 우리 기성 세대도 최소한 살점은 내놓고 얘기해야 합니다. 스스로 내려놓고 보다 더 양보하는 모습 없이 너희들이 젊으니까 (실은 힘이 없으니까) 무조건 감수하라는 식은 염치없기 짝이 없습니다. (하향평준화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중장기적인 통합은 분명 필요하고 일리가 있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그 짐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그것도 신규 임용 공무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지워지는 것은 결코 온당하지 못합니다.

● 편가르기식 정책 추진...도대체 언제까지

정부와 새누리당의 정책 추진 방식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공무원은 이미 주어진 근로 계약 조건대로 임용되어 그에 따라 연금을 받아왔던 것 뿐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나 노동3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파업하고 싸워서 지금의 연금 제도를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공무원연금 제도는 역대 정부가 필요에 따라, 정무적 판단에 따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개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개혁은 그것도 가족까지 합쳐 4백만명에 이르는 집단에 대한 개혁이라면 반대와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이 세금 도둑인냥 낙인을 찍고 공무원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 개혁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행태는 올바른 정책 추진 과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 설득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도 불편한데 심지어 명예까지 실추되는 방식이라면 어떤 성인 군자라 해도 격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과거 IMF 당시 정부가 앞장서 공무원연금 재정을 약화시켰던 일에 대해 일말의 입장 표명이라도 한다면 공무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가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책 추진은 편가르기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해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당분간 선거가 없다는 이유로 급하게 힘으로 밀어붙여 생기는 사회적 논란과 비용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져야 하는 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코끼리 옮기기, 6년과 4달이라는 클라스의 차이

어떤 나라나 연금 개혁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래서 연금 개혁은 종종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서울과학기술대 김영순 교수가 최근 발간한 <코끼리 쉽게 옮기기>란 책에는 영국의 연금 개혁 과정이 자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영국은 100년에 이르는 유구한 공적 사회보험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대처 총리와 보수당은 집권 이후, 사회보험 즉 공적연금을 민영화했습니다. OECD 국가 최초 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공적 연금 민영화 이후 노인빈곤과 노후불평등이 급격히 심화됐습니다. 사연금 시장 확대에 따른 기업 경쟁 격화와 그에 따른 회사 파산, 소비자 피해 및 행정비용 증대 등 무수한 폐해를 겪게 됩니다. 한술 더 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성향에 따라 연금제도가 오락 가락하면서 더 더욱 누더기가 돼갔습니다.

97년 블레어 총리를 필두로 한 신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다시 공적 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틀게 됩니다. 하지만 민영화된 연금 체계 하에서 십수년이 흘러버린 탓에 재무부와 경영계, 연금 산업계, 노동계, 시민운동계등의 이해 관계와 갈등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책 추진은 요원해보였습니다.

신노동당은 연금 개혁을 위해 가장 먼저 초당적인  <연금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연금과 관련한 객관적인 수치와 지표등 방대한 팩트를 수집하고 정리해 나갑니다.  4년여에 걸친 활동 끝에 2006년에 연금개혁 백서를 내놓습니다. 여기에는 연금 종류별, 연령별, 직업군별, 이해 당사자별 상황과 처우, 개혁에 따른 손익등이 투명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신노동당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연금 제도는 복잡하고 어려워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신노동당 정부는 연금백서의 내용과 정보를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해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 전국을 돌며 국민들 그리고 이해당사자들과 연금 토론회를 벌이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했습니다.

투명한 팩트가 있으니 서로 타협과 양보가 가능했습니다. 2008년, 드디어 공적연금 강화를 목표로한 새 연금법안이 입법됐습니다. 연금위원회 구성 6년만이었습니다. 더욱 유의미한 부분은 신노동당에 이어 2010년 새롭게 정권을 잡은 보수-자유연립정부 역시 이 연금 개혁안을 계승해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보- 보수를 뛰어넘는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 양보와 타협이 이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들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 복잡하고 어렵다는 연금 개혁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진행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한국연금학회에 개선안을 요청한 게 불과 지난 4월입니다. 민간보험등 사연금 쪽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연금학회가 공무원 연금 개선안을 사회적 논의나 의견 수렴 없이 나홀로 뚝딱 만들어냈습니다. 새누리당은 이를 꼭꼭 숨겨놓았다가 국회 토론회라는 명목으로 턱하니 공개했습니다. 불과 4달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영국과 같은 방대한 연금백서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언론을 통해 제시된 팩트라고는 “공무원연금 218만원 vs 국민연금 84만원” 또는 “공무원연금에 혈세 낭비 10조원” 같은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팩트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팩트 아닌 팩트로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 설득과 양보가 가능할 리 만무합니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많이 다르다고요? 우리 나라도, 영국도 OECD 회원국입니다. 담뱃값 인상의 근거 중 하나가 OECD 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 공무원, 그리고 공무원 노조에 대한 쓴소리

[아리]새누리+공무
마지막으로 공무원, 그리고 공무원 노조도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들의 여론이 따갑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공무원 그리고 공무원 노조는 국민연금 제도 개편을 비롯해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존의 여러 사회적 이슈들에 있어 거의 대부분 침묵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다 이제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가 걸리니 힘을 보태달라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에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조차 공무원 노조에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특히 아무리 답답하고 부당하다 느끼더라도 예정된 토론회를 무산시키는 식의 실력 행사는 여론을 더욱 등돌리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이 불통이자 일방적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의사표현 방식도 그것과 닮아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아울러 행여 열심히 노력해서 공무원이 됐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니 그 정도 연금으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더더욱 여론의 반감을 살 뿐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개선안 초안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개선할 지 국민들이 수긍할만한 대안을 내놓고 여론을 설득해야 합니다. 스스로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또 국민과 함께 가야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논점을 명확히 하면서 허심탄회한 자세로 목소리를 내야 정부와 여론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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