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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방의 아픔 ① 더러운 뒷거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취재파일] 미방의 아픔 ① 더러운 뒷거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기자들은 누구나 공들인 취재가 기사화되지 못하는 아픈(?)경험이 있습니다. 이걸 흔히 기사가 잘렸다고 말하는데요. 기사가 잘리는 이유로는 취재부족, 진부한 내용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됐든 힘을 쏟은 취재가 방송되지 않으면 속상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쓰는 취재파일은 제약사 리베이트 직원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취재했으나 기사화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제약회사 영업직원의 24시간이 궁금했습니다. 제약회사가 리베이트를 한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흔한 이야기니 별 재미가 없고, 영업회사 직원들이 어떻게 거래를 트고 유지하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한마디로 더러운 거래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영업에 능하다는 제약회사 직원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제약회사가 섭외를 해 줄 리 만무하니 이리저리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노력 끝에 찾아냈던, 리베이트로 이름 좀 날렸다는 제약회사 영업직원과의 인터뷰를 마치고서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렸죠. 그렇게 그냥 살다가 최근 후배가 리베이트를 다룬 기사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취재파일을 통해 미방의 한을 풀어야겠다고 말이죠. 취재파일은 당시의 인터뷰를 정리하는 식으로 작성했습니다. 영업사원이 의사들과 거래를 시작하는 방법, 리베이트에 들어가는 현금 마련 방법, 리베이트가 없어질 수 없는 이유를 차례로 다뤄보려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의사의 만남 부분입니다.

1.  원장 차를 닦아라! 파리도 미끄러지도록.

(질문) 신규 고객, 그러니까 잘 모르는 의사들과 리베이트 거래를 하려면 어떻게 하죠?

처음에 신규 거래를 할 때는 병원 원장(의사)도 제약회사 담당자(영업직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경계하고 잘 만나주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일단 낯선 병원에 갈 때는 제품(약)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고 인사만 하죠. 원장이 나를 믿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선 만나서 자기소개를 하고는 친분이 쌓일 때까지는 그냥 인사만 하면서 병원을 계속 방문하는 거예요. 약점이 보일 때까지.

(질문) 의사의 약점이라는 게 뭔가요?

계속 병원을 드나들다보면 원래 그 병원에 리베이트를 하던 타 제약회사의 담당자가 바뀔 때가 있어요. 아니면 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의사들에게 줘야할 돈을 자기가 챙기는 이른바 배달사고가 생깁니다. 매달 3천만 원을 가져다주기로 했는데 2천만 원만 주는 식이죠. 타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줄 수 있는 신제품이나 복제약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들어오던 돈이 안 들어오면 의사는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럼 이제 공략에 들어가는 거죠.

(질문) 인사만 한다고 친해지는 건 아닐 텐데요.

친분이 전혀 없는 의사를 만나야 할 때는 주차장에 먼저 갑니다. 원장 차는 보통 병원 주차장에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주차장에 딱 가서 차를 본 후 아무 이야기도 없이 차를 닦아 놓습니다. 며칠 동안을 계속 그렇게 차만 닦아요. 그런 후에 다시 병원을 방문해서 원장님에게 슬쩍 떠봅니다. “원장님, 어떻게 차 깨끗하게 잘 타고 다니세요?” 그러면 의사는 “요즘 차가 깨끗하던데 누가 닦았나봐?”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 때 “아, 그거 제가 닦아놓은 거예요.” 그럼 거기서 이제 한 점 먹고 들어가는 거죠.

2. 친분은 밤에 쌓인다.

(질문) 차만 닦으면 그 다음부터는 의사들이 경계심을 푸나요?

리베이트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의사의 성격이나 취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차를 닦고 인사를 해서 얼굴을 익혔다면 그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파악해야죠. 술을 좋아한다고 하면 밤에 술을 마시고, 골프를 좋아하는 원장과는 골프를 치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CD나 USB에 담아 줍니다. 골프치고 나서 술 까지 한 잔 하고 들어가면 그 의사에 대해서는 거의 작업이 끝났다고 봐야죠.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십니다. 낮에 쌀쌀맞게 굴던 의사들도 밤에 계속 같이 술 먹고 주말에 골프 치고 나면 더 이상 냉랭하게 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말에 골프장에 후배 의사들을 데려와서 소개도 시켜줘요. 그럼 차 닦고, 명함 돌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거래처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밤 영업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어요.

의사만 챙기는 건 아닙니다. 원장의 아내, 자녀가 있으면 다 챙깁니다. 가족이 생일을 맞으면 케이크와 선물을 보내죠. 이게 영업의 기본입니다. 명절 때는 메이커(제약회사를 일컬음)회사마다 다 선물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건 티도 안 납니다. 그렇게 하면 영업 자질이 없는 거고, 남이 안할 때 가족 생일 챙기고 해야 효과가 있죠.

(질문) 친해지면 무조건 리베이트 계약 체결이 되나요?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겼다고 해도 기존에 다른 제약회사에서 쓰던 약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거래를 우리 회사로 바꾸는 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이럴 때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제약회사 영업사원 담당자가 이직하거나, 원장이 요구한 돈을 제 때 안 준다거나, 타 회서 영업사원이 방문도 잘 안하고 소홀히 하는 때를 노려야 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기존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원장 눈 밖에 나는 틈을 노리는 거죠. 제약회사를 바꾸려고 할 때 같은 약이 5군데서 나온다고 하면 의사는 누구와 거래를 하겠습니까. 약은 다 똑같은데. 당연히 가장 친하고 자기한테 가장 잘하고 얼굴도장 많이 찍은 사람한테 하지 않겠어요.

쓰다 보니 마치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는 불쌍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영업사원들도 고질적인 리베이트 과정에서 이득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영업사원 몇 년 해서 집 장만 못하면 바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하죠. 회사가 의사들을 상대로 영업하기 위해 검은 돈을 영업사원들에게 주는데 그 돈의 일부 또는 상당수가 영업사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평소 받는 월급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예를 들어 외제차를 탄다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골프를 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제약회사 영업직을 떠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의사들 영업하라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편의를 마치 내 것인 양 누리다 보면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렵게 이 인터뷰를 해 줬던 사람은 당시 잠시 일을 쉬고 있었는데요. 인터뷰 내내 리베이트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몸이 나으면 다시 제약회사 영업을 뛰겠다고 했습니다. 리베이트는 의사에게도 영업사원에게도 마약과 같은가 봅니다. 다음 편에서는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현금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 적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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