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논리로 나치는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에 가둬 학살을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같은 다큐멘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발발한 나치즘이란 집단적 광기를 눈이 시리도록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나치즘은 결코 반복돼선 안 될 치욕적 역사의 표본이 됐습니다. 인종주의 역시 말할 것 없습니다. 이러한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꾸준히 성찰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찰과 사유의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부러 들춰내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망각’하는 길을 택합니다. 혹은 인종주의 처럼 끔찍한 역사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부끄러운 역사는 늘 반복 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자,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섰습니다.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시위대에게 약속했습니다. 퍼거슨시 소요사태가 발생한지 한 달 만입니다. 흑인들은 수사상황을 지켜보자며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제이 닉슨 미주리주 주지사도 지난 3일 해당 지역의 비상사태를 해제했습니다.
이후 쟁점은 윌슨 경관의 기소여부로 넘어 갔습니다. 하지만 흑인 시위대는 윌슨 경관의 기소를 담당할 검사가 경찰과 유대가 깊은 백인이기 때문에 투명한 수사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특별검사’ 임명을 주장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첫 단추를 꿰는데부터 삐걱거리는 모양새 입니다.
또 고반은 이번 소요사태의 방아쇠는 인종 차별로부터 시작됐지만, 더 큰 문제는 퍼거슨시가 안고 있는 실업, 주택 공급 등 경제적 사안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반은 “시위대에는 최루가스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직업”이라며 흑인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헤이즐 얼비 시의회장은 “고반은 퍼거슨시에서 일어나는 교육, 직업 등 모든 문제를 알고 있다”며 “그의 주장이 옳다”고 옹호했습니다.
11살짜리의 소년의 발언이 싱거운 해프닝 수준에서 끝나지 않은 이유는, 이 소년만큼 퍼거슨시 소요사태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까요. 이 소년이 의회에서 박수를 받은 건 11살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말한 내용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