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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육비 1억 원 증여세 면제법'…할아버지 재력이 중요한 나라

[취재파일] '교육비 1억 원 증여세 면제법'…할아버지 재력이 중요한 나라
아이를 잘 키우려면 중요한 것이 3가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3가지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고소득 전문직이라도 교육비를 홀로 부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큰 자산을 쌓아놓은 할아버지 도움이 없으면 양육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씁쓸한 현실을 너무 정확히 반영한 이야기입니다.

새누리당 류성걸 의원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손주들 교육비 대느라 힘든 할아버지들을 위한 법을 대표발의했으니 말입니다. 류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은 손주들에게 교육비 명목으로 조부모가 돈을 줄 경우 1억원까지는 증여세를 면제해자는 내용입니다. 대신 증여받은 돈은 4년 이내에 모두 교육비로 사용해야 한다는 단서 조조항을 달았습니다. 또 비과세 대상인 교육비의 구체적 내용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한겠다고 법안에 명시했습니다.

(류성걸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바로 가기. Click!)

류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이 법안의 목적은 경제활성화라고 밝혔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계의 여유가 있는 노인세대의 자산 중 일부를 손자세대의 교육비 지출로 순환시킴으로서 서민가계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고 "세대간 자산이전은 서민가계의 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킬 뿐만 아니라 서민가계의 소비여력을 확충시켜 서민경제활성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류 의원은 말했습니다.


● 손주에게 1억 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류 의원이 내놓은 법안과 보도자료를 읽으며 이 법이 누구를 위한 법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손주 교육비로 1억 원을 턱 하고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류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류 의원은 "한도가 1억원일 뿐이지, 100만 원을 증여해도 증여세 면제 혜택을 받고, 1천만 원을 증여해도 받는다. 부자감세 법안이라는 것은 오해다." 1억 원을 줄 수 있는 할아버지뿐 아니라, 돈 100만 원을 줄 수 있는 할머니도 혜택을 보는 법안이니, 꼭 부자만을 위한 법안은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행 상속 관련 법률은 이미 미성년자인 손주에게 현금 2천만 원까지는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류 의원은 이미 2천만 원을 상속해 준 뒤에 교육비 명목으로 손주에게 더 많이 해주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1억 원까지 더 증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한 셈입니다. 교육비로 손주에게 100만 원을 주고 싶은 할머니라고 할지라도, 면세 혜택을 받는 돈은 100만 원이 아니라 2천100만 원인 것입니다.

게다가 돈 100만 원을 증여하는 사람보다 돈 1억 원 증여하는 사람이 받는 증여세 감면 혜택이 더 큰 것은 당연합니다. 100만 원을 증여하는 할머니나, 1억 원을 증여하는 할아버지나 똑같이 혜택을 받는다는 류 의원의 주장은 반드시 논리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4년에 1억 원을 교육비로 쓰려면?

이 법안에서 또 주목할 점은 증여받은 교육비를 4년 안에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4년에 1억 원, 연간 2천 5백만 원씩 교육비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류 의원은 저와 통화하면서 비과세 대상인 교육비 항목을 정할 때 "사교육은 배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교육을 뺀다면 연간 2천 5백만 원씩 사용할 수 있는 교육 항목이 뭐가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해외 유학 비용이 떠올랐습니다. 류 의원에게 물어봤습니다.

- 어떤 교육비를 비과세로 할지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법안에 돼 있던데요.

= 류성걸 의원 : 예를 들어서 사교육비 이런 건 들어가선 안되겠죠

- 사교육비 빼고 4년 안에 1억 원을 써야 하는데, 그럼 해외 유학비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 금액이 1억 원이라서 일부에서 부자 감세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거는 한도기 때문에. 한도니까 100만 원 할수도 있는 부분있고 5백만 원 할 수도 있는 부분 있고 한도를 생각하셔야지 전부 다 1억씩 하는 경우는 없지 않나요.

- 어쨌든 그럼 의원님 입장은 대통령령에서 해외 유학도 배제해야 한다는 건가요?

= 그거는 나중에 대통령령하면서 같이 한 번 논의를 하고. 기본적으로는 이 상황도 정상적인 교육을 활성화하면서 교육 투자를 늘이고 경기를, 내수를 증대시키자는 취지라는 걸 말씀드릴게요.


해외 유학 비용은 비과세 대상에서 빼겠다는 이야기는 끝내 안 하시더군요.

류성걸 의원과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새정치연합 김관영 의원은 "연간 2천 5백만 원 정도면 해외 사립학교를 염두에 둔 법."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부모들이 지급하는 돈이 대부분 아마 해외로 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류 의원이 법안의 목적이라고 밝힌) 국내 경제활성화와는 상당히 동떨어질 것 같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해외 유학이 아니더라도 국내에도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 고가의 사립 유치원 등 사교육이라고 분류할 수는 없지만 고액인 교육 서비스가 존재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의 신원기 간사는 "상대적으로 서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고가의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편중된 혜택을 주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수 있는 법"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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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스러운 경제 활성화 효과, 확실히 훼손될 조세정의

또 하나 궁금해지는 것은 이 법으로 인한 경제활성화 효과입니다. 법안을 발의한 류성걸 의원에게 이 법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활성화 효과에 대한 추정치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류 의원은 "숫자로 표현되거나, 경험적으로 드러난 효과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법안이 2013년부터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시행초기라 경기부양효과에 대한 통계 수치를 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제 활성화 효과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반면, 이 법으로 인해서 조세정의가 훼손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통상 세대를 뛰어넘는 부의 이전에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돈을 줄 때보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돈을 줄 때는  30%정도의 증여세가 더 붙게 되는데요.(이 법은 세대를 뛰어넘는 증여에 조세 혜택을 주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부를 손주에게 그대로 증여한다는 점에서 상속 증여체계의 전반적으로 좀 과세체계를 흔들 수 있는 그런 부작용이 있습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신원기 간사의 설명입니다.

경제활성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가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활성화 뿐 아니라 조세정의도 중요합니다. 경제활성화가 중요하다고 상속세를 한 푼도 거두지 않거나, 법인세를 모조리 면제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물론 미국에 기반을 둔 자유지상주의자 liberitarian들은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이 법으로 이한 경제활성화 효과는 매우 추상적인데 비해, 부유층에 돌아갈 혜택은 확실해 보이고, 조세정의를 훼손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입니다.

● 할아버지의 재력보다 더 중요한 것

한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8년간 저소득층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올라간 확률은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2005~2006년 31.7%던 이 비율은 2011~2012년 23.5%까지 떨어졌습니다. 계층 이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해왔던 교육의 양과 질이 가정 형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이유라고 많은 학자들이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교육비 명목으로 주는 돈을 1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해주자는 법안은 현상을 더 악화시키는 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이의 성장에 할아버지의 재력이 중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이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키는 법안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할아버지의 재력보다는 아이의 잠재력과 꿈이 더 중요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국회의원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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