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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탐관 근절 위해 '3단 변신 여우' 잡아라"

[월드리포트] 중국 "탐관 근절 위해 '3단 변신 여우' 잡아라"
'여자를 찾아라!' 18세기 파리의 경찰청장인 알루치누가 외친 말입니다. 알루치누는 '모든 범죄의 뒤에는 여자가 있다. 여자를 찾으면 범인은 반드시 그곳에 있다.'고 그 뜻을 설명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성적 편견'이나 '성적 불평등'이라고 욕먹기 딱 좋습니다. 다만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약됐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모든 범죄에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물리적, 정신적 공범이나 배후가 있다'는 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18세기의 이 말을 요즘 중국에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 변주된 형태로요. 최근 신화망, 인민망을 비롯한 중국 유수의 사이트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여우를 잡아라. 부패 관료 내연자의 <3중문>을 조사하라.' 무슨 말일까요? 의역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부패의 뒤에는 3단 변신을 하는 내연녀나 내연남이 있다.'
아시다시피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반부패 바람에 밀려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혐의 내용을 보면 '통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결혼이나 정식 교제가 아닌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실제 중국 중앙기율위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 5일 현재까지 6백30여건의 부패 혐의가 적발됐습니다. 이 가운데 2백41명이 정식으로 기소됐는데요, 이중 48명이 부정한 관계의 내연자를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20%쯤 됩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수치가 이러하니 실제는 더 많았겠죠. 이들 내연자는 대부분 다음의 3중문 통과, 즉 3단 변신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하나 알아볼까요?
 
색을 바쳐 권력을 얻다.
말 그대로입니다. 고위 관료를 성적으로 유혹해 그의 권력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고위 관료와 내연 관계를 맺으면 우선 경제적으로 넉넉해집니다. 안락한 생활을 보장 받고 때때로 비싼 명품 선물도 얻어냅니다. 금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베갯머리송사도 할 수 있게 됩니다. 해당 관료의 권한을 나눠 쓸 수 있게 됩니다. 부패 행위로 나아갈 수 있는 동지를 얻습니다. 서로에게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탐관오리가 되겠다고 공직자의 길에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꿈을 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은 흐릿해지고 현실은 선명해집니다. 쉽게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눈에 띕니다.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라는 방벽에 가로 막혀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합니다. 하지만 불륜은 이 벽을 허물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한 번 도덕적인 일탈에 들어서면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반대로 부정한 관계를 맺는 상대방은 부패 행위를 할 능력도 방법도 없던 처지에서 벗어나 길을 얻습니다. 고위관료를 통해 금권과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 달콤한 유혹을 하며 부추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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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로 이익을 취하다.
고위 관료와 내연녀, 또는 내연남은 이제 적극적으로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 나섭니다. 부정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이를 위한 좋은 도구이기도 합니다. 뇌물을 몰래 받는 창구로, 받은 금품을 은닉하는 저장고로 활용됩니다.
손발을 맞추다 팀워크가 발전하면 내연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합니다. 건수를 물어오는 브로커 역할까지 합니다.

올 8월20일 윈난성 쿤밍시 철로국 국장이었던 원칭량은 법원에서 사형유예 2년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을 선고하되 2년 동안 집행을 유예하고 그 가운데 또 다른 범행이 드러나지 않으면 종신형으로 감해주는 중형입니다. 그런데 그의 내연녀였던 쭝화도 징역 15년의 엄벌에 처해졌습니다.

이들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함께 직무상의 권한을 이용해 여러 관계 회사로부터 철로·운수 부문의 각종 민원을 해결해주고 1천8백여만 위안, 약 30억 원을 챙겼습니다. 쭝화도 이 과정에서 단순히 돈의 전달 창구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뇌물 공여를 부추기고 협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가장 환상 호흡을 선보인 부패 관료와 얼나이(두 번째 부인, 우리 옛말로 하면 첩)였다는 평입니다.
 
반부패 선봉에 서다
가장 마지막 단계의 변신입니다. 부정한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원수가 되면 복수심에 불타는 정부가 고위 관료의 비리를 폭로합니다. 실제 이렇게 낙마한 고위관료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함께 향락을 즐기는 낯 뜨거운 사진이나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는 서약서, 얼나이를 정실 부인으로 삼아주겠다는 결혼 승낙서, 부양 협의 공증서 등 폭로하는 내용도 가지가지입니다.

보통 인터넷을 통해 불거집니다. 삽시간에 네티즌을 달굽니다. 그러면 사정기관은 방법 없이 조사에 나섭니다. 그 자체로 반부패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내연자의 신병만 확보하면 사실상 수사는 끝입니다. 각종 부패 행위를 밝혀줄 돌파구요, 효과적인 추적의 끈 역할을 합니다.

산둥성 농업청 부청장이자 당 조직 서기였던 산쩡더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7백만 위안, 우리 돈 12억 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를 들켜 15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꼬리가 밟힌 단서는 그의 정부였던 여성이 인터넷에 공개한 이혼승낙서였습니다. 산 청장은 6년 동안 한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이 여성은 계속 자신과 정식 결혼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시달리다 지친 산 청장은 본부인과 이혼을 하겠다는 일종의 서약서를 써주면서 무마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서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2012년 인터넷에 올라갔습니다. 식언에 지친 정부가 일을 벌인 것이죠. 결국 이 문제의 조사에 나섰던 산둥성 기율위가 산 청장의 다른 비리까지 파헤쳤고 앞서 보신대로 산 청장은 말년에 비극적 처지를 맞게 됐습니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고위 관료들의 성적 일탈에 너그러운 당국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부적절한 관계는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병폐다. 그 배후에는 배금주의와 향락주의,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푸젠성 사회과학원 학회장 탕리홍 박사의 뼈 있는 말입니다.

푸젠성 사회과학원 왕펑민 교수는 이렇게 꼬집습니다. "통간은 이미 중국 공산당 규율에서 대단히 심각한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공산당의 통치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당 기율위반 처분 규칙에 최고 당적 삭제 처분까지 할 수 있도록 해 놨다.

하지만 현실에서 축첩은 간부의 개인 도덕 문제로 치부되고 조직 내부에서 소문으로만 떠돌 뿐 공론화 되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은 고도로 집중돼 있는 반면 감독, 감시 기능은 미약해 더욱 적발기도, 처벌하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간은 '민간의 제보도 없고, 당의 조사도 없는' 사실상 방임 상태에 있다. 부패 수사를 하다 불거지는 곁가지 부정행위로 여길 뿐이다."
 
중 탐관1
하지만 앞서 봤듯이 성적 일탈은 부패의 유도등이자 진출로 역할을 합니다. 내연자를 위해, 또는 내연자를 통해 부패를 저지르게 됩니다. 도덕적 올바름을 버리게 만드는 방아쇠입니다.

따라서 공직자의 '성적 부정행위'에 대해 형법상 처벌 규정을 신설하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성 상납도 뇌물의 일종으로 규정해 엄벌하자고 주장합니다.(우리나라는 이미 관련법이 마련돼 있죠.)

적어도 부정한 관계가 적발될 경우 이권에 개입할 수 없는 보직으로 좌천하는 문화만 형성되도 훨씬 나아지질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3단 변신 여우를 잡아라.' 수천 년 이어온 중국 관료사회의 부패 근절에 묘수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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