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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당신이 군대에서 '갈굼' 당한 이유

[취재파일] 당신이 군대에서 '갈굼' 당한 이유
“보세요. 윤 일병 사건 벌써 잊히죠? 군대, 안 바뀌어요. 사건 터지면, 군은 병사들을 어떻게 통제할지만 고민하지 병사들 인권 자체는 관심이 없거든요. 군 장성들, 군대에서 인권 강조했다간 당나라 군대가 될 거란 쌍팔년도 생각을 갖고 있죠.”

최근에 만난 한 법대 교수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윤 일병 사건이 터지고, 군이 가장 먼저 한 건 정신 교육입니다. 후임들 건들지 마라 훈계를 늘어놓는 거죠. 앞으로 병사 상호간 지시, 명령 하면 가만 안둔다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안 지켰다간 구속돼 인생 종칠 수 있다고 협박도 합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이걸 또 다른 통제로 느끼는 모양입니다. 상 · 병장들 사이에서는, 우린 그간 죽어라 참았었는데 너희는 요즘 군 생활 편하게 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답니다. 인터넷을 보니까 정신 교육을 받고 온 아무개 상병은 후임들한테 이랬답니다. 너희들 윤 일병 덕에 군 생활 풀려서 좋겠다고, 그러니 내 밑으로 내무실 안에서 쥐죽은 듯 떠들지도 웃지도 말고 각 잡고 있으라고. 군대를 다녀와서일까요. 이 앞뒤 전혀 안 맞는 황당 논리가 이상하게 납득이 됩니다. 사실 사고 한 번 터지면 정신 교육 하라, 소원 수리 다시 하라, 부대 분위기 아주 살벌해지거든요. 병사를 위한다는 대책이 병사를 더 옭아매는 거죠.

● 너도 사.람.이.었.구.나.

제 군 생활 당시에도 불미스런 사고 때문에 ‘병영 생활 행동 강령’이란 게 나왔습니다. 강령 4가지를 외우게 하더니 점호 전, 취침 전, 식사 전, 뭐만 하려고 그러면 구호를 외치라고 시키더군요. 간부가 시켰는데 못 외우고 머뭇거린 후임 한 명은 부대 구석 건조장으로 끌려가 고참들에게 호된 대가를 치렀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 및 가혹행위를 금지한다.’란 행동 강령을 못 외워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거죠. 역설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사건 터지면 국방부는 으레 팔 걷어 부치는 척 대책이란 걸 내놓지만, 그 대책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요식행위 같다보니,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 쑥 들어갑니다. 사병들은 결국 원래 하던 대로 합니다. 또 다른 윤 일병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말입니다. 망각의 ‘악순환’입니다. 본질은 그대로인데 무늬만 살짝 바뀝니다. 뭔가 방향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본질’이란 건 대체 뭘까요?

군 시절 이야기 더 하죠. 저는 2002년 2월부터 2004년 4월까지 현역으로 근무했습니다. 고약한 선임 한 명이 있었습니다. 악명 높았습니다. 경례 목소리가 작다고, 관등 성명 때 이름 빨리 말했다고, 걸레 빨았는데 물기가 남았다고, 청소할 때 빨리 안 움직인다고, 밥 먹을 때 된장국 좀 남겼다고, 피엑스에서 냉동식품 먹는데 손이 보인다고, 즉 천천히 먹는다고, 예능 프로 보다가 웃긴 장면에서 입 꼬리 살짝 올라갔다고, 쉽게 말해 이등병 주제에 웃었다고, 6시 기상인데 5시 50분에 미리 일어나 대기하지 않는다고, 관물대 안이 지저분하다고, 별 게 다 트집이었습니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꼭 제 위로, 자기 밑으로 집합 시켜 함께 갈구더군요. 그 다음은 알아서 상상하시죠. 군대의 흔한 갈굼 방식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그 선임이 가족과 통화하는 장면을 우연히 봤습니다. “저 잘 있어요. 잘 계시죠? …… 별 일 없어요. 군 생활 재밌게 하고 있어요. 다들 잘해줘요 …… 다음 휴가 나갈 때 뵐게요. 편지 보낼게요.……” 머리 한 대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그래, 너도 가족이 있었구나. 사.람.이.었.구.나.

그랬습니다. 그 사람도 사회에서는 지극히 평범했을 겁니다. 정리 안하는 사람 보면 막 쌍욕하면서 화내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는 왜 고춧가루(잘 갈구는 선임. 요즘도 이런 말 쓰는지 모르겠지만)가 됐을까요. 천성이 글러 먹어서, 갈구는 게 나쁜 건지 몰라서, 정신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군대가 아니었으면 그 사람은 악마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군대라는 공간이 개인에게 작용하는 그 살벌한 방식을 먼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군 내 가혹행위 근


● 공간도, 시간도, 도무지 숨 쉴 틈 없는 군대

내무실이란 공간, 부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원룸 같은 공간에서 20명이 생활했습니다. 갑자기 신병이 들어오면 매트릭스 2개 붙여놓고 3명이 잘 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자다가 코 골면, 씻지 않아 냄새가 나면,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오롯이 전체에게 돌아갔습니다. 워낙 좁았으니까요. 요즘 내무반 좋아졌다, 좋아졌다 하지만 그 크기가 좀 넓어졌을 뿐 개인 공간은 여전히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개인 공간이 없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얼마나 없으면 이등병들은 화장실에 들어가 초코파이를 먹을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위계 서열과 결합됩니다. 상대적으로 권력을 더 점유한 계급은 이 비좁은 공간 안에서도 자신 만의 공간을 구축하며 애써 구분 짓기를 해나가죠. 가령, 병장들은 매트릭스 2개를 깔고 잔다거나, 상태가 좋은 관물대를 선점 한다던가, 이런 식이죠. 누군가 이를 침범하면 계급의 정도를 넘었다며 역시 ‘갈굼’으로 나타납니다. 계급에 따라 점유할 수 있는 것과 점유할 수 없는 것, 더 나아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기준은 이 비좁은 내무 공간에 대한 분배 방식입니다. 이등병은 말할 것도 없고, 병장들도 그나마 좀 더 차지할 뿐 모두에게 이 분배 과정이 곤혹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애당초 할당된 공간 자체가 너무 비좁으니까요.

공간뿐인가요. 시간도 마찬가집니다. 일과 시간 이후, 그러니까 자신의 임무를 끝내도 사생활 통제는 되레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이등병은 혼자서 가족과 전화도 할 수 없고, 돈 있어도 군것질도 못합니다. 편지도 마음대로 못쓰고, 심지어 화장실도 허락을 맡고 가야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통제 대상입니다. 일병 된다고 괜찮아 질까요. 이등병만큼은 아니지만, 일병의 시간은 상병의 통제를 받고, 상병의 시간은 병장의, 병장의 시간은 간부의 통제를 받습니다. 상위 계급에게 자신이 사생활을 노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등병이 내무실 안에서 어떻게 뻔뻔히 책을 읽나요. 병장은 또 간부 앞에서 어떻게 이어폰 끼고 음악을 듣나요. 상위 계급에게 시간을 헌납한 대가로, 하위 계급 시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지만, 그래봤자 사생활을 지나치리만큼 통제받고 있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공간도, 시간도, 도무지 숨 쉴 틈 없는 환경, 겉으로는 시공간을 공평히 분배하라고 하지만, 워낙 비좁다보니 병사들끼리 아등바등 나누기 바쁩니다. 자연히 매사가 긴장입니다. 군 생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긴장해’였습니다.

물리적인 시공간부터 늘리는 게 먼저지만, 군은, 우리 사회는 아이들 정신 상태가 글러먹어서, 처벌 수위가 약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 고약했던 선임은 제가 걸레를 제대로 빨지 않고, 밥 먹을 때 된장국을 남긴 사실 그 자체에 화가 났다기보다, 시공간을 임계치 이상으로 통제받는 환경, 일말의 사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그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이런 건 화낼 깜도 아니지만, 시공간이 비좁은 군대는 이를 중차대한 규율 위반 행위로 만들어 버리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식의 뻔뻔한 통제를 당연하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고생, 딱 이런 겁니다. 미디어는 되레 이를 미화합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진짜 사나이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관물대 정리 제대로 안했다고, ‘다, 나, 까’란 말투를 쓰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목소리 좀 작다고 얼차려를 주는 식의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방송을 의식해 만든, ‘보여주고 싶은 군대’의 전형이 이 정도니, 실제 군대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겠죠.

가령, 방송은 사병들이 관물대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열 받은 간부의 분노, 이를 분대장에게 분풀이하는 딱 그 수준까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누락된 게 있습니다. 열 받은 분대장이 상병을, 더 열 받은 상병이 일병을, 훨씬 더 열 받은 일병이 이등병을 갈구며 강도가 증폭되는 그 과정 말입니다. 사실 이게 날 것 그대로의 군대인데 말이죠. 하지만, 프로그램은 ‘갈굼의 서막’만 보여줄 뿐, 현실은 가볍게 중략해버리더니, ‘우리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자며 ‘우리’라는 의미를 덧대 ‘전우애’로 치장합니다. 가학이 갑자기 전우애로 바뀌는, 불쾌한 순간입니다. 냉정히 생각하면, 전투력과 하등 상관도 없고 필요도 없는 개고생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진짜 사나이는 욕설과 피가 난무하는, 그 어떤 19금 영화보다 훨씬 폭력적입니다.

군대 가혹해위 캡쳐

● 군 인권과 전투력의 상관관계

이쯤 되면, 반박이 나옵니다. 군대란 원래 사생활 통제하는 곳이다, 그걸 견디는 건 국가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 전쟁나면 어쩌려고 군인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려 하느냐, 심지어 요즘 젊은 것들 인권이면 다되는 줄 안다고요. 사생활 통제 하지 말란 말,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2인 1실을 보장하며 상대적으로 공간의 여유를 두는 미국 군대, 일과 시간 이후 휴대 전화 사용을 허용하는 이스라엘 군대(심지어 이스라엘은 우리처럼 징병제 국가입니다.)와 비교해 볼 때 우리 군의 사생활 통제 수위는 필요 이상으로 가혹합니다. 사병에게 사생활을 너무 보장하는 것도 문제라는 주장은, 아프가니스탄 여권 탄압에 대해 ‘여권이 지나치게 신장되면 역차별이 일어날 수 있다.’며 반박하는 얼토당토않은 논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통제 수위를 먼저 고민해 봐야죠.

또 하나. 뉴스에서도 소개해 드렸지만, 군 인권은 전투력을 위해서라도 필요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선 ‘프레깅’(fragging)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프레깅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임의 막사에 수류탄을 던져 죽이는 식의 전쟁 범죄인데,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되는 전쟁 상황에서 아군이던 적군이던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일 수 있었다는 거죠. 프레깅 의심 사례로 본국에 보고된 수치만 1,500건에 달했다니, 실제로는 훨씬 엄청났겠죠. 전우애는커녕 적군만큼이나 고참이 미웠던 겁니다. 이를 계기로 미군은 부랴부랴 병사들 간 갈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고,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습니다. 병사 간의 갈굼이 군 전투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긴 겁니다. 우리도 전쟁이 터지면 어떨까요. 이런 프레깅 벌어지지 말란 법 없을 것 같습니다. 평시에도 선임을 향해 총기 난사가 벌어지는 요즘입니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병사) 된다는 어느 부모의 말이 괜히 나오진 않았습니다.

결국, 정신 교육 몇 번 하고, 사병 간에 지시 명령 금지하는 식의 대안은 수박 겉핥기입니다. 갈굼을 통제하기 위해 또 다른 통제를 만드는 셈입니다. 점호가 ‘갈굼’의 소굴이 됐다고, 점호만 없앤다고 갈굼이 없어질까요. 도무지 숨 쉴 틈 없는 사병들, 그래서 상황 자체에 짓눌린 사병들에게 후임 갈굴 거리 찾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정 갈굴 게 없으면 숨 쉰다고 갈구면 되니까요.

보다 본질적인 해결 방식은 사병들에게 공간과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는 겁니다. 일단, 일과 시간 이후만큼은, 병사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게 첫 단추일 수 있습니다. 사생활을 돌려줘 숨 쉴 틈부터 찾아줘야 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군 인권이 있습니다. 그래야 전투력도 높아집니다. 이젠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위까지 사병의 사생활을 보장해 줄지, 그 구체적인 방식을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이 부분은 정부 예산의 10%를 쓰고 있는 국방부가 직접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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