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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성재, 스포츠뉴스를 마치며

스포츠 캐스터 배성재, 월드컵,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다

  배성재 아나운서가 SBS 8시 스포츠 뉴스에서 하차했다. 지난 2012년 11월 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지 677일 만이다. 특유의 경쾌한 오디오와 이따금 보여주던 ‘드립’은 당분간 스포츠 중계방송을 통해서나 볼 수 있게 됐다. 후임은 장예원 아나운서가 맡았다. 같은 사무실을 쓴다는 ‘홈 이점’을 이용해 마지막 방송을 마친 지 10분도 안 된 따끈따끈한(?) 배성재 아나운서를 인터뷰했다.

1. 스포츠 뉴스를 마치며


 스포츠 뉴스를 마친 소감은?

- “시원~섭섭하다. 2년이 조금 안됐는데 생각보다 오래했다. 중계 때문에 출장이 많아서 처음부터 데일리(Daily) 뉴스를 하는 게 버거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쭉 했다. 다만 올해 들어 소치 올림픽이니, 브라질 월드컵이니 해외출장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기도 하고, 자꾸 빠지게 되어 누를 끼치는 것 같았다. 특히 해외축구 시즌에는 주말에는 중계를 하고 평일에 방송을 계속 하니 나름대로 힘들었다.”

 ‘시원섭섭’이 아니라 그냥 시원한 것 같다.

- “전혀 그렇지 않다. (강력한 부인)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큰 낙(樂)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포츠 얘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 있어서 좋았다. 뉴스를 하기 전에는 회사에서 스포츠 얘기를 같은 눈높이에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답답하던 찰나에 런던 올림픽 끝나고 스포츠 뉴스를 하러 왔는데 스포츠 토크가 되더라. 야구 이야기도 하고 축구 이야기도 하고, 느낌이 통하니까 굉장히 좋았다. 스포츠 뉴스 편집회의에 참석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나누는 것도 재미있고 좋았다. 마음껏 스포츠 이야기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래도 데일리 뉴스 진행은 그 특성상 중계 등과 병행하기에 힘든 점이 있었다. 싱글이어서 견뎠던 것 같다.“

장예원


후임을 맡게 된 장예원 아나운서에 대해 한 말씀 바란다.

- “장예원 아나운서는 합숙 면접 때 내가 최고 점수를 줘서 뽑은 애착이 있는 친구다. 회사에서 미래로 키우고 있는 친구고, 아나운서라고 하기에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서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기특하게도 스포츠 쪽에 많은 관심을 보여서 ‘풋볼 매거진 골’도 같이 하고 있는데 스포츠 뉴스에서도 여러 소식 전하고, 올림픽 같은 빅이벤트 MC도 맡으면서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똑똑하고 열정도 넘치고 씩씩한데 요즘 회사가 너무 띄워주려는 느낌이 강해서 혹시나 역효과가 날까하는 염려도 있다. 요즘 대중들은 똑똑해서 부자연스럽게 ‘언플’하면 다 눈치 챈다. 호기심과 열정을 갖춘 알아서 잘 클 수 있는 캐릭터다.”

선배로서 기대가 큰 것 같다.

- “나를 넘기 힘들겠지만 역대 2위 정도는 될 것 같다.(웃음) 풋매골에서 워낙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있으니까 스포츠 뉴스에서도 드러날 거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가 더 여성들에게 다가가고 친절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김민지 아나운서가 있을 때도 그랬지만, 나랑 박문성 해설위원이 축구 이야기를 할 때 예원이나 민지가 반응없이 멀뚱멀뚱 보고만 있으면, “우리가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한다. 예원이는 여자 아나운서로서, 같은 여성 시청자들에게도 스포츠 소식을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축구 선수랑도 사귀고... (웃음) 김민지 아나운서는 박지성 선수랑 연결을 내가 해줬는데, 예원이는 알아서 잘 할 것 같다.“

  ‘따봉’ 배성재

배성재 아나운서는 독특한 스포츠 뉴스 클로징으로도 종종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 영상과 단신 기사를 그만의 말투와 애드립으로 읽고 진행했다. 기사와 함께 대략적인 앵커 멘트를 써서 넘기는 기자 입장에서도, ‘앵커 배성재’는 ‘믿고 쓰는 배성재’였다. 팩트 위주로 가끔은 슬렁슬렁 써서 넘겨도 그만의 감각으로 소화해냈다. 정형화된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는 나오기 힘든 ‘파격’이 그에게는 허용됐다. 그의 클로징 멘트 하나에 초 단위로 뉴스를 진행하는 뉴스센터가 웃음으로 뒤집어진 적도 여러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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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부터 모든 방송사가 스포츠 뉴스 분량을 줄였다. 하지만 분량이 줄었다고 보도할 뉴스까지 줄어든 건 아니다. 그래서 짧게 주어지는 클로징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전달해 보려고 시도를 했다. 메인 뉴스에서 나오기 어려운 시도를 많이 했다. 사실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 진행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건 허용되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 많은 배려를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셨다. 3~40초 분량의 기사를 읽는 단신도 그냥 하지 않고 중계 형식으로 하려고 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따봉’ 세리머니는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는데, 본 지가 오래됐다. 주변에서도 왜 안 하냐고 궁금해 한다.

-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이후로 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한동안 스포츠 뉴스가 없다가 재개됐는데, 당연히 세리머니를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 뒤로 월드컵도 있었고,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는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태 다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 ‘따봉’ 안 했다.

- “사고가 다 수습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축구 중계나 정글의 법칙이나 이런 데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적어도 메인 뉴스에서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메인 뉴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을 전하는 곳이고, 스포츠 뉴스는 거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범근 차두리 배성


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SBS는 지상파 3사 가운데 중계 시청률 ‘꼴찌‘를 차지했다. 월드컵 전에는 축구 팬들 뿐 아니라 광고계나 미디어도 배성재-차범근 쌍두마차를 앞세운 SBS의 낙승을 점쳤다. 뚜껑을 까 보니 결과는 참패였다.

이제는 편하게 말해보자. 시청률 싸움의 최전선, 그것도 제일 선봉에 있었던 셈인데 느낌이 어땠나?


- “저는 잘 했던 것 같다.(웃음)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한다. 중계방송 순위나 시청률은 거의 신경을 안 썼다. 지나고 나니 하는 소리가 아니라 대회 일주일 전부터 밀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 반응이나 분위기나.. 물론 꼴지를 할 줄은 몰랐다. 그럴수록 무리하지 않고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쪽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밀린다는 느낌이 들고 만회하려고 하면 무리할 수 있는데 축구 캐스터로서는 내가 제일 잘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정공법으로 가자고 했다. 차범근 전 감독님도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우리끼리 팀웍을 중시하자고 하셨다.”

그래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 “시청률이 낮아서 어렵기보다 한국 축구가 부진한 것이 가장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어릴 적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봤는데 역대 최악으로 꼽을 만큼 이번 대표팀이 국민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전에도 못 하면 욕하고 비판하고 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안 좋은 이슈들이 계속 터졌다. 여론이 너무 안 좋았다.

이렇게 되면 중계하기도 어려워진다. 덩달아 대표팀을 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응원하기도 어렵다. 멘트 하나 하나 다시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차범근 해설위원을 한국 축구와 함께하는 해설가라고 생각한다. 제가 놀리기도 하지만, 지난 몇 차례 월드컵에서 차범근 위원의 샤우팅은 승리의 샤우팅이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의 샤우팅은 패배의 샤우팅이었다.”

차범근, 알제리 라인업 95% 맞췄다.

- “알제리 전을 앞두고 차 위원님이 “할릴호지치 감독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씀하셨다. 데이터를 보면 최근 석달 동안 선수가 다 바뀌었고, 원래 주전으로 기용하던 선수를 1차전인 벨기에전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머리를 싸맸다. 며칠을 끙끙대다가 알제리전 바로 전날 알제리 예상 라인업을 내놓았다. 그런데 경기 당일 실제 알제리 라인업과 한 명 밖에 다르지 않았다. 차범근 위원님은 여전히 감독의 마인드로 생각한다. '내가 감독이라면'하고 경기를 보고 해설을 준비하고 예측한다. 알제리전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따로 하지도 않았고 기사화되지도 않았지만 놀라웠다.“

4. 스포츠 캐스터 배성재

월드컵 시청률에서는 밀렸지만 배성재 아나운서는 여전히, 적어도 현 시점에서 국내 최고의 축구 캐스터로 인정받는다. 매 주말 꾸준히 EPL 경기를 중계하며 쌓은 내공과 착실한 준비가 그 바탕에 있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는 모든 출전 선수들의 이름 한글 발음법을 직접 작성해 스포츠 제작부서 뿐 아니라 보도국까지 돌렸다.


중계할 때 공부를 얼마나 하나?

- “하루 종일 밥 먹고 운동하고 자는 시간 빼놓고 준비한다. 선수 한 명에 대한 데이터를 찾아 볼 때는 데이터 뿐 아니라 스토리까지 링크를 계속 타고 들어가서 삼천포로 빠질 만큼 본다. 그래야 입체적으로 선수가 다가온다. 가장 중요한 건 영상을 많이 보는 거다. 동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 “실제 경기에서 공이 어떤 선수에게 어떤 위치로 갈 때 그 선수 이름을 어떻게 부를지 하는 부분이 중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손흥민이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았는데 왼발로 슛을 때릴 수 있는 각도가 나왔다, 선수 이름을 부르는 톤이 평소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해설로 참여한 축구 게임에서는 똑같지만, 실제 중계에서는 ‘손흥민↗ 손흥민↘’ 다르게 발음하게 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려면 영상을 많이 봐야 한다. 축구 캐스터로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숱한 경기를 중계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경기를 뽑자면?

1) EPL 10/11시즌 36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첼시

- “박지성 인생 최고의 경기로 꼽는다. 남아공 월드컵을 전후한 그 때가 박지성의 최고 전성기였다. 박지성이 선발 출장했는데, 공격포인트는 어시스트 하나였지만 태클, 드리블, 패스 모든 것이 월드 클래스였다. 나중에 만나서 물어보니 본인도 그렇다고 하더라.”

2)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 VS 우루과이

- “졌지만 훌륭한 경기였다. 역시 박지성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우루과이를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를 갖춘 팀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길 것처럼 하면서도 끝내 우루과이를 못 이기는 이유다. 후반 한 점 뒤진 상황에서 박지성이 두 겹의 수비를 뚫고 이동국에게 찔러 준 패스가 환상적이었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박지성 스스로는 졌기 때문인지 좋은 경기라고 기억하지 않는 것 같더라.”

3) 2009년 K리그 성남 대 경남 전

- “지상파 방송에서 축구 중계 데뷔한 날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그 전에 홀로 중계 연습을 할 때 주로 탄천경기장에 가서 연습을 했다. 거리도 가깝고 사람도 많지 않아 연습하기 좋았다. 첫 중계 데뷔였는데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서 호평을 받아 기억에 남는다. 경기 결과는 기억이 안 난다.”

취파


5. ‘스포츠 뉴스 後’

  배성재 아나운서는 지상파 방송사의 남자 아나운서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독특한 입지를 지녔다. 반듯한 이미지의 남자 아나운서들이 주로 예능 출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영역을 넓혀갈 때, 그는 스포츠 중계와 평일 저녁 스포츠 뉴스 앵커만 도맡았다. ‘외길을 걸었다’라고 할 법도 한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정도(正道)를 걸은 것 같은데, 은근히 외곽을 팠다. 중계에서 보여주는 애드립과 멘트, 또 왕성한 SNS 활동을 통해서다. ‘드립력’으로 상징되는 그만의 개성과 중계 실력을 인정받은 ‘배거슨’은 축구팬들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SNS를 통해서도 많은 이슈를 생산했다. 저녁 메인 뉴스 시간대 점잖게 나와 얼굴을 비추면서도 중계와 SNS에서 예능인 버금가는 개인기를 자유자재 구사하는 ‘이중성’도 강점이었다. 예능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스포츠로 유명해지고 나서 예능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어쨌든 배성재는 그만의 방법으로 나름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대한민국에서 꽤나 알아주는 아나운서가 됐다.

 한동안 예능에 나오다 좀 말았다. 예능 안 하고 싶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어떤가

- “얼마 전 ‘매직아이’에 출연해 김구라 씨가 한 말이 있다. 무슨 말을 하다가 “아나운서가 야망이 없어”라고 하셨다. 김구라 씨를 디스하는 게 아니라, 아나운서에게 ‘야망’이라고 하는 게 너무 편협한 시각이 아닌가 싶다. 한동안 아나운서의 예능 출연이 ‘외도’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정론’이 됐다. 그런데 꼭 예능에 나와서 유명 연예인들과 어울리고 웃기는 것만이 예능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풋볼 매거진 골’도 소재는 축구지만 재미있게 하니까 웃기고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한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하게 웃기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길이 있다.

  작가나 PD의 영역을 얘기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우리 사회가 ‘분노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재미있는 예능보다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에 대중이 반응하고 열광하는 시대다. 지상파 방송이라면 그런 요구를 잘 읽고 대응해줘야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 당장 15분 뒤에 라디오 뉴스를 진행하러 간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안게임에서도 여러 종목을 중계할 예정이고 EPL 중계, A매치, 내년 아시안컵까지 뵐 일이 많다. ‘감 떨어지면 그만 한다’가 원칙이자 모토다. 그 전까지는 꾸준히 더 나은 모습으로 중계하고 방송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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