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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또다시 요동치는 홍콩의 기구한 팔자

[월드리포트] 또다시 요동치는 홍콩의 기구한 팔자
세계에서 홍콩만큼 팔자가 기구한 도시도 드뭅니다. 탄생부터 그렇습니다. 아편전쟁의 산물입니다. 이 전쟁에서 진 중국이 영국에 홍콩섬을 강제로 빼앗기면서 도시가 시작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부도덕했던 전쟁의 사생아인 셈입니다.

중국은 이후 2차 아편전쟁에서도 패배하면서 현재 홍콩의 도심인 주룽 반도를 분할해줬습니다. 그리고 1989년 2차 베이징 조약을 통해 지금 면적의 90%를 이루는 신제와 부속 도서를 99년 기한의 조차지로 내놓으면서 홍콩이 완성됐습니다.

99년으로 조차 기간이 정해진 배경을 중국의 야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당초 영국은 신제를 영구적으로 할양 받으려 했습니다. 이런 영국의 압력에 맞서 중국 정부의 실력자 리홍장이 100년 조차안을 내놨다는 것입니다.

리홍장은 "중국에 있어 100년은 영원한 시간과 다름없다. 100년 조차는 영원한 할양과 사실상 같은 뜻이다"라며 영국을 달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100년에서 1년을 뺀 99년으로 기록했습니다. 영국 측이 항의하자 리홍장은 또 이렇게 둘러댔다는군요. "100년은 영원을 의미하는 만큼 이대로라면 나는 역사에 나라 땅을 팔아넘긴 매국노로 기록된다. 99년이나 100년이나 똑같다. 99년 뒤에도 영국은 여전히 강성할 테니 그때 가서 100년 조차를 하든, 영구 할양을 받든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 결국 리홍장의 기지로 중국은 홍콩을 돌려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상욱 취파_640
수상가옥에서 원시적으로 살던 어민과 다락 밭을 일구는 농민이 전부였던 홍콩은 면모를 일신하기 시작합니다. 1905년 주룽과 광둥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홍콩은 무역항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합니다. 중국과 세계를 잇는 관문으로, 대중국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합니다. 1861년 약 12만 명이었던 홍콩 인구는 1939년에는 1백60만 명을 넘어섭니다.

이 기간 홍콩은 중국 근대화의 요람이자 혁명의 발원지 역할도 합니다.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쑨원이 서구 지식을 받아들이고 혁명에 눈을 뜬 곳도 홍콩입니다. 현대 중국을 빚은 수많은 사상가와 군인, 경제인, 정치가가 홍콩을 거쳤습니다. 중국의 근대화는 홍콩을 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1949년 중국 본토에 공산정권이 성립되면서 홍콩은 다시 긴장상태에 빠져듭니다. 마오쩌둥은 '매국 조약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터였습니다. 중국의 100만 대군이 밀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신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 5만 명이 급파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오의 대응은 달랐습니다. 억지로 홍콩을 되찾는 대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사안에 따라 대응도 다르다'며 홍콩과 마카오를 그대로 나뒀습니다. 마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탁월했습니다. 이후 홍콩은 '죽의 장막' 속에서 은거하는 중국의 숨구멍 노릇을 했습니다.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항하는 유일한 우회로였습니다.

이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기치를 들면서 첫 실험지역으로 홍콩 바로 맞은 편 선전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중국 근대화의 요람이었던 홍콩은 중국 현대화를 추동한 주요 동력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1997년 중국 반환 결정 과정에서 홍콩은 또다시 흔들렸습니다. 영국과의 반환 협상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홍콩 시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습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홍콩의 앞날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수많은 기업과 인력,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한 중국의 '신의 한수'는 '1국 2체제' 약속이었습니다. 홍콩이 반환돼도 기존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적어도 50년은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허용하고 간섭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습니다. 홍콩의 민심은 급속히 안정됐습니다. 영국은 홍콩 반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이 잘 키운 홍콩이라는 과실을 중국은 거의 아무 손실 없이 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홍콩의 운명이 다시 한 번 요동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실시될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둘러싸고 중국 중앙 정부와 홍콩의 야권이 날선 대립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가 결정한 직선제안은 한마디로 '친중국 인사'만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다고 못 박은 것입니다. 이번 안은 1천200명 규모의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이들의 50% 이상 지지를 얻은 사람만 입후보하도록 했습니다. 후보자수도 2~3명으로 제한했습니다. 특히 애국시민, 즉 중국을 사랑하는 인사만 입후보가 가능하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또 당선자에 대한 최종 임명권을 중국 중앙 정부가 가졌습니다. 반중국적인 인사가 행정장관직에 오를 수 없도록 걸러내는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중국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강조합니다. 홍콩의 최고 지도자는 홍콩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홍콩이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것이지, 독립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영국은 1백55년 동안 일방적으로 총독을 파견해 통치한 반면 중국은 반환 17년 만에 보통선거에 의한 직선제를 허용했다고 자부합니다. 민주 체제에 있어 대단한 진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홍콩의 야권은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반발합니다. 다양한 정치적 주장을 배제하고 하나의 정치적 색채를 가진 후보자들 가운데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면 '보통 선거'라고 부를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친중국 인사만 최고 지도자로 세우게 만들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꼼수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현재의 간선제에서도 후보 추천위의 8분의 1만 찬성을 얻으면 후보가 될 수 있는데 이를 2분의 1로 강화한 것은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홍콩의 민주화 요구 단체들은 이번 중국의 직선제안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집단행동도 불사할 태세입니다. 지난 6월에도 홍콩 중심가를 점거하고 농성 시위를 벌인 바 있는 '센트럴을 점령하라'는 다시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홍콩 경찰은 얼마 전 폭동 진압용 고무 최루탄 4천 발을 구매하는 계약을 영국 무기회사와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루액도 다량 확보했다고 홍콩 언론들은 보도했습니다. 강경 대응 방침을 굳힌 것입니다.

양측이 이렇게 강하게 맞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홍콩인들은 홍콩의 중국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예속됐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직선제마저 중국안대로 확정되면 홍콩은 중국의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 전락한다고 위기감을 토로합니다. 명색만 민주체제일 뿐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우상욱 취파_640
중국은 거꾸로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잔뜩 경계합니다. 이런 민주화 움직임이 소득 수준이 높아진 중국 본토의 다른 도시로 옮겨 붙을 수 있다고 내심 걱정합니다. 공산당 1당 지배체제에 시비를 걸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이 흔들리면 소수 민족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지역에 대한 통제력 약화가 도미노처럼 번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콩을 요즘 유행하는 '썸 타기'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것인 듯, 중국 것이 아닌, 중국 것 같은 도시입니다.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도 홍콩은 중국의 발전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기여했습니다. 중국에 반환된 뒤에는 중국의 치부와 은폐된 문제점을 엿볼 수 있는 감시경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전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양태를 보여주는 시약의 역할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중국이 홍콩을 두고 고민하는 지점과 부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홍콩이 홍콩으로서의 색깔을 잃으면 중국에 득이 아니라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으로서도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니 골치 아프다고, 다루기 힘들다고 무조건 옥죄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국 양체제'와 같은 또 다른 '신의 한수'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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