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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효성은 왜 '실체 없는 자문'에 회사 돈을 썼나

효성 조현준 사장의 계열사 자금 빼돌리기 의혹 1

[취재파일] 효성은 왜 '실체 없는 자문'에 회사 돈을 썼나
  국내 재벌기업 효성그룹(회장 조석래) 본사는 서울 마포대로 119번지에 있다. 그룹 지주회사격인 주식회사 효성(사장 조현준) 직원들은 여기서 일한다. 2011년 11월, 효성 감사팀은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주력 계열사인 노틸러스효성의 경영에서 발견한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사팀은 ‘노틸러스효성 문제점 보고’라는 제목으로 A4 4장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글씨는 작고, 줄 간격도 좁았다.

  이 문서엔 문제점을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하려한 흔적이 묻어 있다. ‘과거 잘못된 일이 관행적으로 행해져 왔으며, 현재도 동일하다’고 적거나, ‘도덕적 해이’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이라고 크게 우려하는 문구도 있다.

  회계 상 문제와 투명하지 않은 일처리, 자금조성, 관계회사 지원까지 보고서 소제목만 모두 4개다. 마지막 ‘관계회사 지원’ 장에 이르러, 감사팀은 55억 6천만 원 넘는 자금이 7곳의 관계회사로 넘어간 사실을 적었다. 결론은 ‘부당 지원’이었다.

  어떤 회사로 돈이 넘어갔기에, ‘부당 지원’이라는 걸까. 55억 넘는 돈 중에 11억 원 이상이 빠져나간 곳은 홍콩이었다. 홍콩 소재 E사와 U사, 2곳이다. 각각 8억 1천만 원과 3억 4천만 원이 송금됐다.

  홍콩 세무당국은 회사 전자검색 서비스를 하고 있다. 회사 설립과 명칭변경, 연간 수익보고서를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회사 이름만 안다면, 회사의 역사를 알 수 있다.

  확인 결과, U사는 활동 중이고, E사는 2013년 폐업한 상태였다. U사는 홍콩 최고 번화가 침사추이에 사무실이 있었다. 과거 한차례 주소를 옮겼는데, 주소가 E사가 있던 사무실과 똑같았다. 서류로만 보면, E사가 사라진 뒤 U사가 같은 사무실을 물려받은 거였다. 노틸러스효성은 홍콩 침사추이의 한 사무실로 1백만 달러 넘는 돈을 송금한 것이다.

  어떤 명목의 돈이었을까. 취재팀은 첫 보고서 닷새 뒤 작성된, 또 다른 감사문건을 입수했다. ‘주요 확인 내용’이란 제목의 보강자료였다. 홍콩으로 나간 돈은 11억 5천 2백만 원이었다. 2008년 1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송금은 계속됐다. 단 석 달만 빼고 다달이 입금됐다. 돈을 받은 회사 대표는 H씨와 O씨. 모두 일본인이었다. 보고서는 ‘중국 및 글로벌 비즈니스 경영자문 명목’으로 매달 2만 5천 달러가 송금됐다고 밝혔다.

  일본인에게 받았다는 자문의 실체는 뭘까. SBS 탐사보도팀은 홍콩 현지를 취재했다. 8월의 홍콩 날씨는 찜통 그 이상. 최고 번화가답게 침사추이는 좁고 높게 솟은 빌딩 숲이다. 법인 사무실은 빌딩 각층마다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두 회사가 자문료를 받던 당시, 홍콩 당국에 사무실이라고 신고한 곳을 찾았다.

  시작부터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회사의 주소지엔 자문료가 건네지기 전부터 전혀 다른 회사들만 있었다. 2007년부터 6층 해당 사무실에서 영업한 건 한 일본회사인 H사의 홍콩지점이었다. 잉크 제조회사였다. 지난해 이 회사가 이사를 간 뒤엔 미용업체가 들어왔다. 화장품 유통회사 B사였다. 이곳에서 10년 정도 건물 관리를 해온 현지인에게, 효성 계열사의 자문사 2곳의 이름을 보여줬다.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다. 확인을 요청했다. 3시간 뒤 전화가 왔다. "입점 일지를 봤지만, 이런 자문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라는 거였다. 그는 6층 회사들이 언제쯤 들어왔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에 투자자문사는 없었다. 두 곳 모두 서류에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인 것이다.

  효성그룹 측에 전화를 걸어 취재내용을 확인했다. "그룹과 무관한 외부 자문사"라며, “정상적으로 경영자문을 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이 일본인은 IT 전문가이며, 그가 원하는 방식을 따라서 자문 계약을 체결한 것이며, 유령회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감사팀이 적발한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이런 해명과 정반대 내용이 담겨있었다. 효성 감사팀은 송금 당시 책임자를 면담한 기록을 첨부했다. '실체가 없는 경영자문'에 회사 자금이 해외로 송금됐다고 결론지었다.

  홍콩 유령회사로 돈을 보내고도 정상적인 자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 유령회사는 해명과 달리, 효성 오너 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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