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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1억 4천만 원짜리 초콜릿 변기, 그리고….

[월드리포트] 1억 4천만 원짜리 초콜릿 변기, 그리고….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아침에 눈뜨자 마자 하는 일이 CNN과 LA Times, KTLA 등을 훑어보면서 밤사이 어떤 일들이 일어났나 알아 보는 겁니다. 워낙 범죄가 많은 곳이다 보니 하루 밤에도 수 십 명씩 총기나 각종 사고로 죽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오늘 오전 다소 여유를 갖고 LA Times 기사들을 꼼꼼히 둘러보던 차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느 오래된 식당의 60년 된 간판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런데 왠 초콜릿 얘기냐고요? 바로 그 간판에 관한 기사에 붙어있던 연계 기사(Related Article)가 바로 이 '초콜릿 변기' 이야기입니다. 그 것부터 먼저 풀어나가려 합니다.

과연 1억 4천만원짜리 변기, 그것도 보석으로 치장한 것이 아닌 초콜릿으로 만든 1억 4천만원짜리 변기가 있을까? 실제로 있습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욕실 용품 전문 사이트인 ' Bathroom.com'의 대표인 '이안 몽크'는 100% 순수 '벨기에산 초콜릿'으로 만든 변기와 욕조, 그리고 세면대를 1억 4천만 원에 팔겠다고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치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 회사는 왜 이런 천벌 받을(?) 일을 했을까요? 몽크 사장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수많은 영국 사람들이 욕실을 알아보려고 할 때 인터넷 검색 엔진에 bathroom 'suite' (욕실) 라고 치지 않고 실수로 bathroom 'sweet' (화장실 달콤한) 이라고 치는 거에요. (실제로 '방'이라는 뜻의 suite와 '달콤한' 이라는 뜻의 sweet는 거의 발음이 같아서 혼동하기 쉬움.) 바로 이러한 단순한 실수에서 우리의 영감이 발동했던 거죠. 뭔가 달콤한 것으로 욕실을 꾸미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이 회사는 실제로 초콜릿으로 세가지 욕실 용품을 만든 뒤 1억 4천만 원의 가격표와 함께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초콜릿이 들어갔을까요?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 대신 기사에는 칼로리로 환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변기에는 98만 칼로리의 초콜릿이 들어갔고, 세면대와 비대에는 각각 21만 칼로리의 초콜릿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욕조는 무려 800만 칼로리의 초콜릿으로 만들어 도합 940만 칼로리의 초콜릿이 들어갔습니다. 주문을 받으면 신선한 초콜릿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두 세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초콜릿이 녹아서 욕실 용품으로 쓸 수 있느냐'는 반문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회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상온에서는 6개월간 보존됩니다. 찬 온도에서는 몇 년까지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물이 닿거나 뜨거운 햇볕이 들지 않게 한다면 말이죠." 웃지 않을 수 없는 답변입니다.

그럼 여기서, 이 황당한 초콜릿 변기 기사로 저를 안내해준 오래된 간판에 대한 얘기를 풀어봐야겠네요. 두 기사를 함께 보면 LA Times 편집자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뭔가 연상되는 메시지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Cindy’s Restaurant라는 이 간판은 이글 락의 콜로라도 블리바드라는 곳에 있는 60년이나 된 간판입니다. 1948년 처음 문을 연 이 식당은 글로벌 패스트푸드점들이 장악해버린 이 동네에서 66년이나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지난 1월, 킹과 로젠블루라는 두 남녀에게 팔렸습니다. 그 두 사람은 이미 다른 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 오래된 식당에 매료돼 사들였고 1940~1950년대의 분위기 그대로 식당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실제로 식당 안을 보면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주인공이 1950년대로 되돌아 가 각종 에피소드를 펼쳐냈던 그런 식당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 못내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식당은 물론 저렇게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고색창연한 간판을 함께 갖게 됐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고민이 있었습니다. 식당 구입과 수리에 가진 돈을 모두 들이다 보니 지금은 낡아서 비둘기들의 놀이터가 된 간판을 보수할 자금이 없었던 겁니다. 고민 끝에 두 사람은 '킥 스타터 캠페인'(Kickstarter Campaign,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일반인들로부터 온라인을 통해 기금을 모으는 방법)을 시작해보기로 한 겁니다.

목표 금액은 1만 6천250달러, 우리 돈 1천700만 원인데, 기자가 들어가 봤을 때 이미 37명으로부터 1/8 가량인 2천140달러가 모금된 상태였습니다. 공짜로 기금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이 두 사람은 얼마를 기부하건 간에 이 식당에서 요리사가 만든 4가지 코스 요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간판을 꼭 보존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건 반드시 이뤄질 거에요."

이 기사를 읽고 난 뒤 앞서 전해드렸던 '1억 4천만원짜리 초콜릿 변기'에 관한 연계 기사를 열어보게 됐습니다. 두 기사를 읽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은 "초콜릿 변기의 뚜껑 하나면 저 60년 된 간판의 명맥은 계속 유지될 텐데…"라는 것이었습니다. LA Times 편집자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두 기사를 연계해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소유'와 '사고'는 어느 정도 같은 궤도를 그립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그에 걸 맞는 사고와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게 마련이고, 덜 가진 사람 역시 자신이 소유한 것에 의해 어느 정도 사고와 생활 패턴이 지배되기 쉽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1억 4천만원을 내고 초콜릿 변기를 사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겁니다. 다만, 소유와 사고가 '완전히' 궤를 같이 한다고 말씀 드리지 않는 이유는 언젠가, 또 어디선가 능히 1억 4천만원짜리 초콜릿 변기를 살 재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60년 된 간판을 보존하려는 두 젊은 남녀의 꿈을 남 모르게 이루게 해 줄 재력가도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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