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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황이 주는 감동'…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취재파일] '교황이 주는 감동'…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열광하고 있을 때, 교황 방한을 두고 몇몇 가톨릭 신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취재파일로 써도 될지 한참을 고민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울림이 있어 미숙한 글로나마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쓰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고, 또 가톨릭 신부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조금은 곤란할 수도 있으니 이 이야기를 해주신 신부님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들은 이야기 중 일부를 기억에 의존해 적어보려합니다.

한 신부는 요즘 가톨릭 사제들 사이에서 하는 이야기라며 우스갯소리로 운을 띄웠습니다. "교황님이 1600cc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니 우리는 어쩌라는 건가요. 자전거라도 타고 다녀야 하는 걸까요. 하하" 차량 선정 당시부터 경호의 문제도 있을텐데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렇게 작은 차를 타겠느냐며 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회색 준중형 차에 올라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과연 얼마나 많은 신부들이 교황의 검소함을 따라 자신의 큰 차를 작은 차로 바꿀까요?" 조금 놀랐습니다. "경차 조차 없는 신부들이 많으니 그건 그냥 둔다고해도 과연 신자들이 교황님과 같은 차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시더군요. 교황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이 한순간의 감동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야 저도 해봤으니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신부의 이야기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황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고 계십니다. 저 또한 감동 받고, 사람들이 감동 받는 건 좋지만 걱정되는 것도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은 지난 닷새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이른바 '낮은 곳'에 있는, 어렵고 힘든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낮은 자세로 그들을 보듬고 껴안는 모습에 우리사회는 감탄하고 위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감동 때문에 걱정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방에 들어가는데 본당 주임신부와 폐지를 주워 어렵게 사는 같은 성당 할머니가 계시면, 누구에게 먼저 인사하고 누구와 오래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네. 대부분 주임신부라고 답할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누구와 오랜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첫 번째 질문은 머뭇거렸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재빨리 입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그간 교황이 우리에게 보였던 모습에서 답은 할머니 밖에 없었습니다. "본당 신자로 주임 신부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또 별 도움도 안되는 할머니보다는 주임신부와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에요. 하지만 교황님의 모습을 보았고 그분이 어떻게 하실지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에서 신자조차도 그 모습을 배우지 못한다면 일반 시민들은 어떨까요?" 갑자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더 걱정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끝이 아니었습니다.

 "교황님은 우리 사회의 많은 약자들, 아픈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상처를 보듬었습니다. 사람들은 감동했고, 언론도 한결같이 위로했다, 달랬다, 감동, 감동 외쳤습니다. 이것도 걱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기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제의에 달려있는 노란 리본에 감동했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밝힌 편지에 또다시 감동했습니다. 장애인을 껴안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심지어 밀양 송전탑 문제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 용산 참사와 쌍용차 해고 사태로 여전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불러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걱정이라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참 걱정도 많은 신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감동이야. 그래.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당신들은 교황에게까지 위로 받은 사람들이야.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인 거야. 그러니 이제 됐지? 교황까지 달래줬잖아... 이렇게 그냥 잊어버릴까봐, 잊자고 할까봐 밤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지난 닷새간 많은 사람들을 심적으로 '힐링' 시켜준 교황의 행보가 도리어 교황이 보듬은 아픈 이들을 잊게 해줄 '핑계'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떠난 어제, 교황 방한 마지막 날에 대한 뉴스 뒤 우리는 또다시 세월호 특별법 합의 불발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때문에 정국이 한 발자국도 못나간다'는 이야기를 또다시 들어야만 했습니다.

다른 신부님은 이 이야기에 조금 다른 걱정을 덧붙였습니다.

"교황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나를 바꿔 나가는데 먼저 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기 바쁠 뿐, 나를 돌아보는데 쓰질 않아요. 그러다보니 교황님에게 느낀 감동이 어떤 다툼의 도구가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얼굴이 활끈 달아올랐습니다. 감동받고 내 자신을 바꿔나가기에 앞서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도구'로 교황의 모습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교황의 리더십을 배워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우리 사회 지도층의 숙제로 남은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을 혹은 서로를 욕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제 자신부터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의 상처받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살피려 했는지 돌아봅니다. 짜내고 또 짜내도 그리 짧지 않은 기자 생활이었는데 떠오르는 기사가 왜이리 없는지 부끄럽습니다. 갈등이 있는 곳은 피하려 하지 않았는지, 상처받은 사람들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어차피 보도하지는 못할 거라며 '자기 검열'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준 감동이 '잊힐 도구'가 되거나 '분쟁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신의 이익과 걱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내어 줄 자리는 점점 사라집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서로를 아낀다는 뜻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매일 읽는 사랑의 한 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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