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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도 가혹행위에 멍들어…해리 루·데니 첸 사건 파장

세계 최강의 군대이자 가장 선진적 병영문화를 갖췄다고 자평하는 미군도 집단 가혹행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입니다.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각급 부대에서 동료들이 특정병사를 괴롭히는 가혹행위 사건이 심심찮게 불거져 나온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지적입니다.

3년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잇따라 발생한 중국계 미국인 병사 두 명의 자살 사건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난 2011년 4월 해리 루 상병은 초병근무 중 잠을 잤다는 이유로 세 명의 해병 동료들로부터 얻어맞고 괴롭힘을 당한 뒤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역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데니 첸 이병도 소대장인 대니엘 슈바르츠 중위를 비롯한 8명으로부터 아시아계라는 놀림을 받고 집단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끝에 자살했습니다.

두 사건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미국 병영문화의 어두운 속살을 여지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습니다.

특히 단순한 집단괴롭힘 차원을 넘어 인종차별주의적 요소까지 개입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두 사건이 더욱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바로 미군 당국의 후속대응에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내세우며 일벌백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해리 루 사건의 경우 가해자 3명 가운데 한 명만이 유죄를 인정받았고 그마저도 단순히 30일의 구류를 선고받는데 그쳤습니다.

데니 첸 사건도 용두사미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군 검찰은 관련자 8명을 기소했으나 누구도 유죄를 인정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데니 첸의 가족들과 인권 활동가들은 지금까지도 미국 군당국의 부실대응을 성토하며 강력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는 미국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대니 첸의 삶과 죽음을 극화한 '미국인 병사'라는 오페라가 상영돼 관심을 끌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뉴욕 차이나타운의 한 거리가 '대니 첸의 길'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건은 결국 워싱턴의 입법 무대로까지 넘어왔습니다.

특히 해리 루의 숙모인 주디 추 의원은 각 군이 집단 가혹행위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고 부실한 보고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문제삼고 나섰습니다.

추 의원은 지난 1월 하원 군사위에 보낸 서면 증언에서 "집단 가혹행위를 근절하려면 더 많은 정보와 통계가 필요함에도 공군 이외에 육군과 해병대는 집단 가혹행위에 대해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군 당국의 철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추 의원은 하원 군사위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적극적 설득노력을 기울여 미국 국방당국의 활동을 규율하는 내년도 국방수권법안(H.R 4435)에 군대 내 집단 가혹행위 근절 조항을 포함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초 이 법안의 원안에는 해당 조항이 없었으나 추 의원이 막판 수정안을 제출해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이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우리 감사원에 해당하는 회계감사원으로 하여금 군대 내 가혹행위에 대한 전면적 실태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와 함께 대책을 보고하도록 한 점입니다.

또 구체적인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집단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 또는 목격자가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전화통화 서비스를 개설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군 당국은 의회의 압박 속에서 실태조사와 관련대책 수립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두 사건 이후 미국 국방부는 '무관용 원칙'을 발표하고 집단 가혹행위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각 군도 잇따라 집단 가혹행위 관련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입법보다는 이를 실행하려는 군 지휘부의 결단력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 집단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갈수록 늘어나는 군대 내 성폭력과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다 종합적인 근본적인 병영문화 개선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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