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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군 폭력, 죽어도 개선 안 되는 이유

軍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취재파일]군 폭력, 죽어도 개선 안 되는 이유
남자들이 꾸는 악몽 가운데 모두가 공감하는 최악이 있다. 그건 바로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이다. 어떤 이는 제대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이 악몽에 시달리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고 한다. 필자 역시 제대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입대 영장이 다시 날아오는 꿈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난 기억이 있다.

남자들에게 군대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윤일병 사망 사건 이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지만, 최근까지 TV에서 군부대 관련 리얼리티 연예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군대 많이 좋아졌구나 생각했다. 그 정도면 OECD 국가에 걸 맞는 선진군대였다. 상하 간에 존중과 배려가 있고, 요즘 유행하는 ‘의리’가 존재하는 곳이 여러 TV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요즘의 군대였다. 그런데 그게 리얼리티가 아니었던 게 백일하에 드러났다. 윤일병 사망사건으로 군대를 다녀왔거나 가야하는 온 나라의 남성들이 분개하고 있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던 부모들은 군대 간 자식 걱정에 악몽까지 꿔야 한다.  

군 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방부는 병영문화 개선대책을 수도 없이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의 보도 대로라면, 일제시대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악랄한 폭력이 지금도 수없이 발생하고 은폐되면서 피해자와 그 부모들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당했던 옛 일만 떠올려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내가 당한 것도 모자라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그렇게 많은 대책의 효과는 어디가고, 군대 잔혹사는 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원인은 바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의 왜곡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경제민주화가 한창 정치권에 유행하면서 재계를 압박했지만, 기업 현장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행하는 불공정 거래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다. 목적과 어긋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원인이었다. 공정거래의 목적성에는 대·중소기업 근로자 모두가 공감했지만, 실행을 위한 인센티브 체계는 반대로 작동했던 것이다.

정치권의 서슬 퍼런 기세에 대기업 회장은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협력업체를 담당하는 부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서 평가에는 여전히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이 가장 점수를 높게 받는 항목으로 남아 있었기에, 담당 임직원들이 높은 고과를 받고 보너스와 승진에서 유리하기 위해선 하청업체를 족쳐서 납품가를 깎아야 했기 때문이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군은 병영생활 개선을 외쳤지만, 그 목적에 힘을 줄 인센티브는 전혀 없었다. 지금 현실을 보면 아예 거꾸로 작동했다는 느낌이다. 지나친 가정일지 모르겠지만, 구타를 당했다고 솔직하게 적어낸 사병이 보복을 더 크게 당하고, 폭행 사병을 찾아내 처벌한 장교가 도리어 사병관리를 잘못했다며 징계를 당하며, 부대 내 군 폭력 사례를 자세히 적발해 개선방침을 밝힌 부대가 국방부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면, 누가 적극적으로 병영생활 개선에 나서겠는가.

숨어있는 군 폭력을 색출해 개선하는데 힘쓴 장병과 부대에 인센티브를 줘야 개선의 힘이 생긴다. 반대로 폭력 근절이라는 목적성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장병과 부대에는 징계가 확실히 가야 한다. 혹자는 피해병사는 바로 전역시키고, 가해병사에게 피해병사가 못 채운 군복무 기간을 보태 근무하게 하면 폭행은 바로 사라질 것이란 이야기도 한다.

사회의 어떤 부분도 근본적으로 바뀌려면 인센티브 시스템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공교육 정상화를 외쳐도 대학 서열화가 엄연한 현실에서 공염불이 되고, 공무원 월급을 쥐꼬리만하게 주는 국가들에서 아무리 공무원 도덕성을 강조해도 관급 비리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병영생활 저변에 좀비처럼 엎드리고 있는 시대착오적 인식, 인권을 강조하고 물리적 얼차려를 억제하면 군 기강이 무너진다는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키워주면 기어오른다며 후임자를 괴롭힐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면, 힘들고 또 하기 싫지만 어차피 해야 되는 군대생활을 서로가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장병들이 갖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폐쇄적인 군의 특성상 자체 개혁이 힘들다면, 외부의 감시체계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사회성과 인성의 결함이 배가되는 군대, 거짓과 은폐에 대한 죄의식을 마비시키는 군대는 사회의 해악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활발한 청년기에, 폐쇄적인 공간에서 뇌리에 각인된 나쁜 습성은 사회생활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부조리의 근원이 될 것이다.

정말이지 ‘군대갔다오면 사람 된다’는 ‘속설’이 사실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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