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지킬 앤 하이드와 찰리

지난 3일 야구장엔 볼썽사나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올 시즌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세운 NC의 용병 투수 찰리 쉬렉이 대단한(?) 일을 벌였습니다.

SK에 2대0으로 앞선 1회 말, 심판의 볼 판정에 이성을 잃고 폭언을 시작했고, 급기야 퇴장명령을 받은 뒤에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까지 쏟아부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또박또박 욕설을 했습니다. 특히 한국어로 욕설하는 장면은 중계카메라에 정확하게 잡혔고 누구라도 의미를 알 수 있을 만한 심한 욕이었습니다.

 ● 지킬 앤 하이드와 찰리

평소 착실한 이미지로 한국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던 찰리였기에, 또  심판의 고유 권한인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한 항의와 폭언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습니다.

야구 규약에는 심판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고유권한으로 규정하고 있고, 어떤 경우에도 마운드를 내려와 항의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2년차 용병 찰리는 왜 지킬 앤 하이드가 된 것이었을까요?

● 심판마다 다른 스트라이크존

올 시즌 프로야구를 강타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은 요즘 투수들의 고민거리입니다. 특히 스트라이크 존이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는데, 한화 김응용 감독은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아 문제라고 정면으로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스트라이크존에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했지만, 현장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정도는 다른가 봅니다.

사실 심판별로 스트라이크존은 다 다르고, 심한 경우 좌우로 10cm 가까이 차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야구 공의 지름이 7cm인 점을 감안하면 공 3개 정도의 차이인데,  완벽한 스트라이크가 볼이 될 수도 있는 차이입니다. 볼로 판정돼 사건의 발단이 됐던 찰리의 초구도 다른 심판이었다면 스트라이크로 판정됐을 수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찰리는 큰 착각에 빠졌습니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커쇼도, 류현진도 스트라이크존 만큼은 철저히 존중하고 따릅니다. 심판별로 다른 스트라이크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적응하려고 애쓸 뿐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은 원래 그런 겁니다.

● 솜방망이 처벌의 한계…무서운 전례

지난해 홍성흔은 욕설을 하고 심판과 몸싸움까지 벌이고도 100만 원의 제재금을 받는 데 그쳐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또박또박한 한국어 욕설을 날린 찰리는 200만 원의 제재금과 40시간의 유소년 봉사활동 징계를 받았습니다.

후폭풍이 거셌습니다. 솜방이 처벌이라는 야구팬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야구위원회에 처벌 근거를 물어봤습니다. 상벌위 내규 제 7항을 적용했다고 하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 감독, 코치, 선수가 심판판정에 불복하거나 폭행, 폭언, 빈볼, 기타 언행으로 구장질서를 문란하게 했을 경우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제재금 200만 원 이하, 출장정지 30경기 이하 등 조치를 취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찰리는 200만 원 벌금이라는 가장 큰 제재를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출장정지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야구위원회는 선발투수인 찰리에게 5경기나 10경기 출장정지는 1, 2차례 출장정지의 효과밖에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도핑에 걸리거나 재범(?)의 경우 10경기 출장정지까지 가는데,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출장정지를 주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이유도 밝혔습니다. 선수들이 자유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유소년 봉사활동이 더 큰 제재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를 볼까요?

지난 2009년 5월 시카고 컵스의 투수 카를로스 잠브라노는 심판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다 퇴장당했습니다. 퇴장당하는 순간 심판에게 너나 퇴장하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결국 6경기 출장 정지와 함께 3천 달러의 벌금 징계를 받았습니다. 잠브라노에게 6경기 출장정지가 큰 효과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왜 출장정지와 벌금을 함께 내렸을까요?

야구팬들이 말하는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입니다. KBO 상벌위의 판단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 용병 연봉…200만 원 벌금


용병들의 연봉은 10억 원 전후라는 게 야구판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10억 원과 200만 원. 제재효과를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상벌위 내규 7항의 벌금 액수는 10년 전인 2004년 개정됐습니다. 10년 사이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대략적인 가치를 비교해보면, 10년 전 200만 원은 현재 가치로 300만 원 쯤 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 야구팬들은 용병 선수들의 항의가 잦은 이유를 두고 이런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반드시 내야 하는 용병들이 벌금을 내더라도 심판에게 항의를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판정을 시즌 내내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 찰리의 사과…그리그 KBO의 생각

찰리는 그제 경기를 앞두고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흥분했던 것에 사과하며 한국식으로 머리를 숙여 사과했습니다. 사건은 일단락됐고, 이젠 누가 그 욕을 가르쳐줬냐가 야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분위기도 한결 나아졌습니다.

KBO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올 시즌이 끝난 뒤 규정을 전반적으로 손 볼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시즌 700만 관중시대를 활짝 열었던 한국야구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