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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 '책방'에는 '사람'이 있다

[취재파일] 그 '책방'에는 '사람'이 있다
● 서점이 사라진다

     더위가 절정이었던 지난 토요일, 나 역시 더위도 피할 겸 찾아간 대형 서점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이제 우리에게 ‘서점’은 곧 ‘대형서점’이다. 대형 서점 안에는 카페도 들어서 있고, 화장품부터 가방, 심지어 치약까지 별의별 물건을 다 판다. 그러나 붙잡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 “요즘 나온 책 중 뭐가 볼 만 해요?”, “이 두 번역본 중 어느 걸 보는 게 나을까요?” 이런 걸 대답해 줄 ‘사람’은 대형 서점에는 없다.

     서점이 옛날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우리에겐 1980~90년대 동네 서점의 추억이 있지 않은가. 돈 없는 학생이었지만, 몇 시간 동안 책을 봐도 뭐라 하지 않았고, 친해진 서점 주인은 사지도 않은 잡지 부록을 챙겨주기도 하고, 새로 나온 책을 가장 먼저 권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의 할인과 무료배송에 밀려, 동네 서점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서점은 전국적으로 최근 2년새 10% 가까이 줄어들어, 지난 해 말 현재 1625곳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집계/문구류를 팔지 않는 순수 서점 수) 문을 닫은 곳은 97%가 면적 165제곱미터(50평) 이하의 작은 서점이다. 인천 옹진군과 경북 울릉군 등 4곳은 서점이 한 곳도 없다.

     그런데, 이런 ‘서점 멸종의 시대’에 ‘동네 책방’을 새로 연 사람들이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돈키호테라 할 수 있는 홍대 앞의 ‘땡스 북스’를 시작으로, 땡스북스가 자리잡은 데에서 힘을 얻은 작은 책방들이 서울 연남동 일대에 들어서고 있다.

● 그림책만 파는 책방 ‘피노키오’ 



     이젠 제법 이름이 나서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생긴 곳은 ‘피노키오’. 대로변에서는 보이지도 않아, 스마트폰 지도앱을 켜고서야 찾을 수 있었던 골목 안의 이 책방은, 책방의 모습부터가 ‘피노키오’라는 독특한 이름을 압도한다. 의외의 위치에 놀라고, 서점의 겉모습에 놀라게 되지만, ‘그림책’만 판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국내외 그림책과 다양한 그래픽 노블, 주인장이 세심하게 골라 들여온 국내에 한 권 뿐인 그림책까지.. 일반 서점의 그림책들이 비닐로 꽁꽁 싸여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의 책들은 누구나 펼쳐보고, 앉아서 읽어볼 수 있다.

  ‘피노’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운영자 ‘이희송’씨를 만난 건, 지난 6월, 서점이 문을 연 지 딱 1년이 되던 때다. (따옴표 안의 내용은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일단 저 자신한테 뿌듯해요. 왜냐하면 처음 시작할 때는 1년을 못 갈 줄 알았어요. 연남동 구석진 골목에 책방을 낸다는 게 미친 짓이라고들 했죠. 그런데 1년이 됐네요. 책방을 찾아주신 분들 덕분에 제가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서점이 다들 문을 닫는데, 책방을 연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
(책방을 열기 전 ‘피노’씨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예전부터 책방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책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보낸다는 것. 지금이 아니면 못하겠다는 간절함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더 들면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게 되고, 그러면 못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마음이 있을 때 하자, 그래서 시작했죠.”

- 그런데 왜 ‘그림책’만?
“특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네서점에서 제가 모든 책을 다 팔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어린이부터 나이 드신 분들이 다 볼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 그게 그림책이지 않을까. 여기에는 전문화, 특화가 돼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시면 찾는 책이 있거든요. 그리고 바로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죠.”




● 작가가 운영하는 소소하게 별난 책방 ‘별책부록’ 


      피노키오 책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별책부록’이라는 역시나 별난 이름의 책방이 있다. 작가인 임윤정씨가 지난 4월 8일 문을 열었다.

“원래 책 관련 일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서점이라든지,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읽어보고 좋은 책, 묻혀 있던 좋은 책을 발굴해서 오시는 분들께 소개하고 제안하는 서점입니다. 편집자들이 굉장히 재미있게 만든 책인데, 아직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있잖아요.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는 자본으로 홍보하는 책들이 훨씬 눈에 띄게 되어 있잖아요. 묻혀 있던 책들을 저희 서점에 와서 새롭게 발견하고, 읽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 이곳에는 일반 서점처럼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코너 대신, 대형서점에선 눈에 띄지 않던 새로운 책들이 눈길을 끈다.
“별책부록이라는 이름도, 일상생활에서 ‘독서’가 메인은 아니잖아요. 취미생활이데,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나 선물 같은 의미로서의 독서를 권장하자는 뜻으로 별책부록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 그런데 과연 운영이 될까?

     지난 달 이 기사가 방송에 나간 뒤, ‘운영이 되겠냐’는 댓글이 달렸다. 먹고 사는 문제를 제쳐두고 생각할 수 없는 만큼, 취재 당시 운영 문제도 빼놓지 않고 물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이희송)“사실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책을 몇 권 팔아야 내가 월세를 낼 수 있을까 했죠. 그런데 저는 책방 시작하면서 욕심을 버렸어요.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는,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는데, 지금도 안정됐다기보다 초기보다는 좀 나아졌어요.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어요.”

(임윤정) “힘드네요. 안정화 단계라고 말하기는 어렵고요, 오시는 분들한테 별책부록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소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서점만으로 수익을 올리겠다는 마음보다는 앞으로 책 작업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는 거죠.”

     경제적으로는 쉬운 도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은 책방이 사라지도록 두고 볼 수 만은 없다.

(이희송)“가장 중요한 건 책인 것 같아요. 그 서점에 어떤 책이 있느냐. ‘아, 이 서점에 가면 이 책이 있더라’라는 게 있으면 손님들은 계속 꾸준히 올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아직 믿고 있어요. 그리고 오프라인 서점이 좋은 건 ‘사람’이 있다는 거죠. 와서 얘기할 수 있고, 책과 사는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와서 책만 보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서점은 동네의 문화공간이라고 봐요. 그런데 지금 동네마다 서점이 없는 동네가 너무 많아요.”

     오는 11월 부터 책값의 할인율을 최대 15%로 묶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 일각에선 도서정가제가 시행돼도, 책 구매는 이미 온라인으로 넘어온 상태라며 동네서점이 살아나긴 힘들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15%라는 할인율도 없앤 완전 정가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이번 조치가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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