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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리사랑'이기에 더 큰 아픔

죽음도 대신 하고픈 부모의 마음

[취재파일] '내리사랑'이기에 더 큰 아픔
고령의 한 저명인사로부터 자신이 유년시절에 바로 옆에서 보았던 참담하고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해들은 적 있다. 6.25 피난시절, 겨울철 땔감이 없어 석탄을 나르는 화차에서 무연탄을 훔쳐내 연료로 쓰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피난민들이 몰려 살았던 부산에선 석탄을 실은 화차가 들어올 무렵이면, 피난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석탄을 훔치려 몰려들었다고 한다. 흐리고 으스름한 겨울 저녁, 가난과 배고픔에 찌든 父子가 함께 석탄을 부대에 퍼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화차 안에서 석탄을 푸고 있을 때, 아들은 철로에 떨어진 석탄을 줍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화차가 움직였다.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있던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하나라도 석탄을 더 주우려고 서둘렀다. 사람들이 소리쳤지만 아이는 알아채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한 사내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아이를 밀쳐냈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가까스로 아들을 밀쳐냈지만, 아버지의 몸은 철로와 바퀴 사이에 끼였다. 차마 글로 표현할 수 끔찍한 상황이 전개됐다. 아이의 아버지는 죽어가면서 아들을 보고 어서 피하라고 손짓했다.

그래픽_해양경찰 세
세월호에서도 그렇게 어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절벽처럼 기울어진 갑판에서 아이를 팔로 들어 앞선 사람들에게 건네 준 부모들이 있었다. 아이는 살았지만 부모들은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 부모인들 그러지 않았으랴. 진도 체육관에서 생존 희망이 없는 아이들이 돌아오길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며 기다렸던 부모들 역시,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고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게 내리사랑이다. 3대가 배에 타고 있었다면 아빠 엄마는 아이를 우선 살리려 했을 것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살만 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자신들보다, 아들 내외와 손자의 생명을 우선시했을 것이다. 내리사랑은 고귀한 생존의 법칙이며 세대를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하며, 동물적 특성인 동시에 가장 인간미 넘치는 특성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내리사랑은 종족을 이어가는 힘이다.   

내리사랑의 의미와 아픔을 경험적으로 느껴 본 적이 있다.  십여 년 전, 전날 야근을 하고 집에서 쉬던 날이었다. 네 살 난 아들이 아침부터 열이 높았다. 앞서 딸을 키웠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의 열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출근한 뒤 아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내 등 뒤 소파에서 놀고 있었다.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컥’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눈동자가 흰자위를 보인 채 소파에 쓰러져 있었다. 돌이켜 보건데,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놀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아이를 안고 뛰쳐나갔다. 

아들이 태어난 병원 주변 도로에다 차를 아무렇게나 세운 뒤, 의식이 없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급하게 진찰을 마친 소아과 의사가 갑자기 앰뷸런스를 내 줄 테니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무슨 말이죠. 그냥 경기 아니에요? 아이들에게 흔한 경기인데, 큰 병원으로 옮기라뇨?”
의사가 말했다.
“그런 것 같은데, 갑자기 응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덜컥 내려않는 가슴을 다잡으며 아이를 부둥켜안고 앰뷸런스에 올라 부근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일각이 여삼추란 말이 처음으로 실감나는 때였다. 왜 그렇게 다리가 떨리던지. 말 그대로 감정적 한계상황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제 목숨을 줄여도 좋으니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몇 번을 기도해도 똑같은 내용이 마음속에서 녹음기의 음성처럼 반복됐다. 큰 병원에서 응급조치가 끝나고 아이가 점차 안정을 보였다. 다행히 다른 증세가 없어 난리쳤던 소동이 머쓱하게도 하루 만에 퇴원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에 병이 생겼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염치없이 매일 밤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울어야 했다. 아이가 안정을 찾자, 놀라 얼어붙었던 마음이 한꺼번에 녹아내렸다. 그러면서 엄청난 회한과 미안함이 엄습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보다, 내 아이가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던데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송스러움이 밀려왔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를 송구하지만 체험한 것이다.

아버지는 쉰 살도 못 넘긴 나이에 간경화에 따른 식도 혈관 파열로 돌아가셨다. 사업실패의 충격으로 스트레스와 과음이 많았던 탓이었다. 온 몸의 피를 다 토하시면서 기력을 잃어가는 순간, 의사가 병원에 수혈할 더 이상의 피가 없다고 말했다. 또, 수혈해봤자 다시 토할 거니 소용없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죽어가는 부모에게 손가락을 따 피를 먹여 살리게 했다는, 효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의사에게 내가 같은 혈액형이니 아버지께 수혈해 달라고 했다. 의사는 물끄러미 처다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때, 더 이상의 수혈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지만, 효과 여부를 떠나 아버지께 내 피를 조금이라도 드렸다면, 마음이 그다지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는 의사의 말에 따를 정도로 아버지의 사망 때 나는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이성 따위는 없었다. 오직 혼돈과 공포와 절망감 외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고, 무슨 짓이든, 그것이 내 목숨을 내 놓는 일일지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 외에는 아무 소리도 판단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내리사랑이었던 거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지으며 일주일이 지날 무렵,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리사랑이 섭리라면 아버지도 그다지 서운해 하시지 않을 거야.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 그랬을 거고, 아버지도 내가 아들에게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실 거야.”

깨달음의 의미는 이성적이냐 경험적이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마치 흑백사진과 칼라사진의 차이와 비슷하다. 이성적 깨달음이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형체로 안다면, 경험적 깨달음은 형체뿐만 아니라 붉은 색상까지 함께 느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느낀 '내리사랑'도 그런 것 같다. ‘흑백사진’으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아파서 수많은 국민들이 함께 눈물짓고 분노하는데, ‘칼라사진’ 아니 ‘3D 동영상’으로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직접 경험한 부모들의 아픔과 절망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다. 시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약이다. 처절한 절망과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진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설령 무뎌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아픈 멍울은 잡혀 있겠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야단스럽지 않게 조용히 지원할 때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고, 남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정신과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 참사가 쉽게 잊혀지는 거란다. 월드컵이 열리고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몰두하고, 예전에 그랬듯이 아픈 기억들과 다짐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 그럴 지 모른다. 단원고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 서해 페리호 참사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눈물 흘리고 반성하고 개선을 다짐했지만, 비슷한 참사가 다시 일어난 것처럼 한국인들이 유독 잘하는 망각이 다시 비극을 부를 까 두려운 것이다.

이번 참사를 제3자의 비극, 윤곽만 전해주는 흑백사진으로 느낄 게 아니라, 온 나라 엄마 아빠들이 ‘내리사랑’의 마음으로 개선을 다짐하고, ‘3D 동영상’으로 각인해야 한다. 내 새끼가 참담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부모가 부실점검을 하고 불법개조를 하고, 위험에서 먼저 도망치고, 관리책임을 미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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