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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자의 눈물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기자이기에 껄끄럽지만 가치있는 눈물

[취재파일] 기자의 눈물은 쓴맛일까 단맛일까
언론사의 수습과정은 매우 가혹하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지만 대부분의 중견기자가 갖고 있는 수습과정에 대한 기억에는, 남성 기자의 경우 군 생활을 빼고 가장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처우를 당했다는 공통분모가 있을 듯하다. 외부에서 받는 수모가 아니라 내부 선배들로부터의 처우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런 교육과정의 명목은, 호랑이나 독수리가 제 새끼를 벼랑에 떨어뜨려 살아남는 녀석만을 키운다는 것처럼, 험난한 기자생활에 대비해 강한 기자를 키운다는 거다. 하지만 제 새끼를 벼랑에 밀어 떨어뜨린다는 이야기가 실제와는 차이가 많은 이야기인 것처럼, 기자생활을 20여년 하면서 지나치게 가혹한 수습과정이 유익했던가에는 의문이 든다.

어쨌든 가혹한 수습과정을 통해 기자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건 강한 체 해야 한다는 거다. 검찰이나 경찰, 정치인, 고위 공무원 등 공권력을 가진 기관을 대할 때는 기 싸움에서 져선 안 되고, 흉악범을 만날 때도 마치 형사처럼 굴며 때로는 호통까지 치면서 호기를 부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 동정심, 경계심 등 감정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훈련하다보면 형식이 내용을 바꾸듯, 어느 순간 본래의 감성들도 많이 무뎌지는 듯하다.

그렇게 필자도 수습과정을 다듬어갈 무렵,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익사 사고가 발생했다. 술에 취한 두 청년이 시비를 벌이다 한 친구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익사한 것이다. 새벽에 경찰서를 돌다보면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훈련을 통해 ‘무뎌진 감정’으로 사건기록을 무심히 쳐다봤다. 그 때 형사계 출입문이 소란스럽더니 50대 중반의 중년남성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다. 주변에 친척인지 비슷한 또래 남성 둘이 동행했다. 그 남성이 소리쳤다.

“진짜요? 진짜요? 우리 아들, 우리 00이 어디 있어요?”

몇 마디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더니 홀연 양쪽 다리에 뼈가 사라진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쿵’하고 들릴 정도였다. 그러면서 겨우 내뱉는 말이 ‘아이구’ ‘아이구’ 목에서 쥐어짜듯이 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는 통곡하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럴 만큼 머릿속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시 내가 이해했던 수습과정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그래선 안 되는데. 바로 그 때 다른 언론사의 수습 한명이 무감각하게 한 마디 던졌다.

“아 그거 새벽부터 되게 시끄럽네. 주정부리다 죽은 놈이 한 두 명인가...”

다행히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대신 내 귀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두 가지 생각이 회오리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맞아! 저렇게 냉정하게 봐야 하는 거지’, 또 다른 생각은 ‘아무리 기자지만 저 자식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네’였다. 한동안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 한다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는 기자마인드에 대해 고민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한 몸에서 머리와 가슴이 따로 차갑거나 따뜻하긴 힘든 것이다.  

최근에 이런 고민들이 다시 살아났다. 온 국민이 아들딸을 잃어 집단으로 슬퍼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따로 놀아야 하는데, 그렇게 제어하지 못하는 기자들이나 데스크들은 괴롭다. 현장 취재를 하는 기자들 가운데는 울보가 몇 있다. 공감과 동조의 울음은 상대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에 언론을 경원시하는 피해가족들도 이런 울보 기자들에겐 마음을 열고 대한다. 그래서 남들이 못하는 기사를 써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냉정한 분석가보다는 따뜻한 경청자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상식적 반응이다.

SBS 보도국은 얼마 전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했다. 언론사의 특성상 칸막이를 두지 않았는데, 개인 공간을 중시하는 최근의 세태를 반영해 개별 기자들 공간에도 칸막이가 생겼다. 덕분에 뜨거운 가슴의 열기가 머리까지 전해져, 모르는 새 눈물이 흘러도 다른 때보다 편하다. 다른 이가 만들어놓은 리포트의 가슴 먹먹한 장면을 보면서, 조간신문에서 어머니의 눈물로 얼룩진 사연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도 가림막이 있다 보니 고개를 살짝만 숙여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거다. 행여 앉은키가 큰 다른 기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짐짓 눈에 티끌이 들어간 양 찡그리기도 한다.

어쨌든 기자에게 눈물은 불편한 물질이다. 타인의 엄청난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기자들은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내면의 원칙을 오래 견지하다보니, 대놓고 눈물을 보이는 게 편치 않은 것이다. 여기다 일부 매체들에서 앵커나 기자들이 연기에 가까운 과잉 표정으로 시청자의 억지 공감을 불러일으키려 한다는 매운 지적까지 나오니 더더욱 대놓고 눈물 보이기가 힘든 것이다.

사실 눈물로 뜨거워진 머리로 기사를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술수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하고, 각종 유언비어를 사실인 양 믿었다간 회사 전체를 망신시키지 않게 철저히 검증도 해야 된다. 그 뿐인가. 예전 재난상황 때는 없었던 시청자나 독자의 SNS 비판에도 대응하고 타당하다면 반영해야 한다. 다들 챙길 게 너무 많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실수에 여론의 몰매를 맞는 일도 부지기수다. 내외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한도에 이르고 폭발하면서 실제로 일부 언론사는 말 그대로 ‘복합재난’을 만나고 있기도 하다.

시청자,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이 그만큼 어려워졌다. 기자의 눈물이 가식적이고, 음모적이며, 차갑고, 쓰디 쓴 맛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배 데스크로서 느끼는 ‘요즘 기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솔직하고 여리다. 그러기에 취재원과 공감도도 선배들보다 높은 것 같다. 어떻게 취재할까 머리를 굴리면서도 취재원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기자들이 아름답다. 그들의 따뜻하고 단맛 나는 눈물이 기사와 잘 조화를 이루면서 피해자 가족들과 시청자의 상처를 잘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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