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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치매 할아버지가 갈 곳 없는 나라, 대한민국

[취재파일] 치매 할아버지가 갈 곳 없는 나라,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로 얼룩진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가정의 달 5월이 왔다. 가정의 달... 가족 사이에 웃음이 넘치고, 서로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훈훈함이 있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는 가족의 일원이 건강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몸이 아프면 꼭 불행해진다는 뜻은 아니지만 고령화 사회에 주목받는 '치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시는 아버지를 곁에 둔 자식으로서, 우리 사회가 치매 어르신을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게 너무도 아쉽다.  

치매 콜센터 캡쳐_


‘쿵’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가족이 소스라쳤다. 단단한 무언가가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 그건 아버지의 위기상황을 급박하게 전하고 있었다. 뛰어들다시피 방으로 들어가자 이미 아버지는 얼굴에 피를 많이 흘린 채 방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가족들이 잠시 눈길을 거둔 사이 침대에서 내려오시다 화장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응급처지를 했지만 아버지의 이마에는 주름처럼 긴 흉터가 남았다. 자식들이 못난 탓이다. 내 탓이었다.

올해 일흔 여덟 아버지께 치매의 마수가 찾아온 것은 5년 전이다.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09년, 이미 말씀이 어눌해진 아버지를 파리에서 맞이했던 게 정상적인 모습을 본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귀국해서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언어 능력이 악화돼 있었다. 산책길에 잠시 한눈을 팔면 아버지는 차로로 뛰어들어 중앙선을 따라 걷고 계셨고, 식욕 조절 기능을 잃어 눈앞에 음식이 놓이면 무한정 손을 뻗으셨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온갖 물건을 휘저어놓아 화장실 수건에 비누까지 모두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와중에 알츠하이머에 파킨슨씨병까지 겹친 것 같다는 주치의의 선고. 아버지 수발을 드느라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요양원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성남과 용인 일대를 훑었다. 우선 인터넷을 뒤져 평가가 좋은 곳을 찾고 주말을 이용해 직접 방문했다. 그런데 노인 요양원의 풍경과 나를 맞이하는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할머니들로 가득한 공동 거실을 지나 상담실로 들어서면 “어르신이 아버님이세요, 어머님이세요?”라는 질문이 어김없이 날아온다. “아버님이십니다.” 대답을 듣는 순간부터 친절한 상담사의 얼굴에서는 환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훈련된 상냥함으로 상담을 마무리하지만 ‘왜 남자 어르신이 시설에 들어오기 힘든지’ 설명하는데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치매 노인 캡쳐_5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남성 요양보호사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박봉인 요양보호사를 남자가 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을 조금 더 주고 남자 직원을 모셔 와도 치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손이 두 세배 더 간다고 하소연했다. 힘도 세고 말을 잘 듣지 않아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듣고 보니 요양원마다 남녀 성비가 2대 8에서 3대 7 정도가 보통이었다. 규모가 작은 곳은 남성 요양보호사가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여성의 수명이 더 길다는 점을 감안해도 불쌍하게 늙어가는 치매 남성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할아버지’라는 소리에 아예 상담을 피한 곳도 있었으나 다행히 대기 순번을 준 한 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꼼꼼히 시설을 살폈다. 지하층도 사용한다기에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창문이 없는 컴컴한 방. 문 앞에는 ‘사색의 방’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뭐 하는 곳이에요?” 잠시 머뭇거리던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이 항상 말씀을 잘 듣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면...그럴 때 오시는 곳이에요.” 사람이 늙으면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가족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실수투성이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여기에 보낼 수는 없었다. ‘사색의 방’에 단골 수감자가 되는 건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큰 상처를 남긴 낙상사고가 몇 차례 이어진 뒤 안방 아버지의 침대에는 손목을 천으로 묶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다. 밤을 낮처럼 지새우며 침대를 오르내리는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요양소에서 묶이고 갇힐 바에는 가족들의 사랑 아래에서 편히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나마 어머니께서는 천을 풀려고 애쓰는 아버지 모습이 안쓰러워 묶은 손을 풀고야 만다.

치매환자는 이제 사회가 돌본다고 정부가 말했던가?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 특히 치매 할아버지의 말년은 재앙이다. 하루 4시간씩 간병인이 왔을 때 시장으로 뛰어가 먹거리를 사고 새우잠을 자며 가까스로 버티고 계시는 어머니. 효도할 기회를 놓친 자식의 가슴은 찢어진다. 더 이상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치매 어르신의 실태를 정확히 알리고 우리 사회가 대책을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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