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해경은 왜…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잃어버린 골든타임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4.04.29 17:41 수정 2014.04.29 19: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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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정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고 최덕하 군이 119에 최초로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고 신고한 건 4월 16일 오전 8시 52분이다. 목포 해경에서 이 신고에 따라 6분 뒤인 오전 8시 58분에 구조를 지시했다.

근처 해역에서 순찰 중이던 해경 경비정 P-123정이 구조를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123정에는 김경일 경위 이하 해경 대원 10명, 의경 4명이 타고 있었다. 1분 뒤엔 서해해양경찰청에 있던 헬기(B511)가 출발했다. 이후 목포해경에서 완도, 제주해경에 구조 협조를 요청하고 주변 함정을 비상소집하고, 민간선박에까지 구조 요청을 했지만,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한 건 해경 헬기와 경비정이었다.

오전 9시 30분 헬기가 먼저 도착했다. 9시 35분 123정도 세월호 앞까지 왔다. 헬기에서는 갖고 있던 구명벌을 바다로 던졌다. 바다로 뛰어든 사람이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실제로 구조자 일부는 덕분에 구조됐다.) 이후 헬기는 기울어지는 배 우현 난간 쪽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구조했다. 순전히 헬기에 의해 구조된 사람은 12명이다.


당황했다... 그래서...

적어도 일부 해경대원은 크게 당황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해경 대원의 말이다.

"구조하기 위해 갔는데 저희 기대랑 다르게 해상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저희도 더 당황했고, 접근해보니 선미쪽 3분의 1 지점에 승객이 일부 보였다. 그래서 (고속) 단정을 급히 내려서 단정으로 접근해 구조를 시작했다."

123정 대원들은 배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를 전달받고 출동했다. "400-500명 타고 있다고 보고받았다"던 대원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미 바다로 뛰어들어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 위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당황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로 선미 쪽에 승객 몇 명이 보여서 바로 구조하러 갔다는 말이다. 해경이 승객으로 생각했다는 이들은 기관사, 기관장, 조기사, 조기장 등 7명이었다. 물론 선원들이든 승객이든 눈에 띄면 구조부터 해야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때는 9시 40분 전후, 아직 배 좌현에서 3층 복도까지도 드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해경 대원들이 3층 객실로 진입하는 것도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목숨을 걸어야했기에 당시 촬영된 동영상만 보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왜 안 나오지?

이후 해경 대원들은 고속단정을 타고 선체 앞으로 향했다. 1명은 선체 갑판 위로 올라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배는 이미 40도 이상 기울었던 상황이었으나 걷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이 해경대원이 선체에 올라가 한 일은 묶여 있던 구명벌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14개가 매달려 있었는데 잘 떨어지지 않자 발로 차 결국 2개를 떨어뜨렸다. 이 대원의 말이다.

"단정과 우리 본정만으로는 그 많은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겠다, 구명벌이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으로 구명벌을 터뜨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때 시각은 9시 45분쯤, 배는 이미 45도 가량 기울어진 상태였다. 123정은 뱃머리를 조타실 바로 아래에 갖다 붙였다. 이미 그 사이 줄을 묶어 탈출 준비를 해놨던 선원들이 해경의 도움을 받아 123정으로 옮겨 탔다. 이들은 조타수와 항해사, 선장 등 8명이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승객들(사실은 선원들)을 구하고 난 해경은, 왜 선체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대다수의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을까? 역시 이와 관련한 해경대원의 말이다.

"조타실 쪽에 사람이 보였다. 저쪽에 인원이 많나보다, 그래서 먼저 구한 건데... 그 다음에는... 왜 사람이 안 나오지? 이거 어디가 잘못된 거지? 왜 퇴선을 안 시켰지?"


놓쳐버린 30분...

123정의 정장은 9시 30분쯤부터 35분까지 경비정에 달린 방송 장치를 통해 "승객 여러분 바다에 뛰어내리십시오, 퇴선하십시오"를 수차례 실시했다고 말했다. 또 선내 들어가서 적극 대피하라고 지시했냐는 질문에는 "가능한 한 할 수 있으면 하라고 조타실에 올라가 하라고 했는데 경사가 심해서 못 올라가고 그대로 아래로 내려왔다"고 답했다.

정장이 방송을 시작했다는 9시 30분이면 아직 세월호가 멀리 있을 때다. 35분쯤에도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좀더 뒤에 했다고 해도 헬기 소리 때문에 이 방송은 선내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다.

123정이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세월호는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지진 않았었다. 9시 32분쯤엔 10도 정도, 33분이 넘어서면서 급격히 기울어 30도 정도 선까지 왔고, 9시 45분쯤부터 45도까지 기울어졌다. 10시가 지나면서는 경사도 70도를 넘어섰다. 선장 이하 선원들이 우선 했어야 할 일이긴 하나, 해경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만 해도 늦지만은 않았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20-30분이 지나면서 기회를 영영 놓쳐버렸다.

최선을 다했다지만...

10시 6분이 돼서야 해경은 조타실 아래 유리창을 깨고 승객 7명을 구했다. 잠시 뒤 배는 80도, 90도로 기울어졌고, 10시 20분엔 135도, 배의 우현이 뒤집혀 123정이 처음 접근했던 쪽으로 와 버렸다. 우현 쪽에 매달려 있던 승객들을 한꺼번에 구하게 된 게 마지막이었다. 10시 23분 배는 완전히 전복돼 잠겨버렸고, 그 이후엔 실제로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해경, 그리고 123정은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근처 해역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사고 현장에 배 중에서는 가장 먼저 도착했고, 81명을 구해냈다.

승객들에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탈출 준비를 했던 선장과 항해사 이하 선원들, 무엇보다 불법으로 화물을 더 실으면서 배가 복원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자들에게 1차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경은 아주 늦지는 않을 만큼의 시간에 도착해놓고도 당황한 나머지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했다. 지휘 체계가 없었고 우선 순위를 따지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몇몇부터 구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배 안에 남아있던 대다수가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데는 실패했다.

누구 책임이 더 큰지를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는 건 이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거다. 허나 그렇게 생각하고 해경을 비판한다 해도 너무나 참담한 상황이다.

제 나름대로 열심히 구조 활동에 임했던 해경 대원들이긴 하나 이른바 '골든타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30여 분의 대응은 주먹구구식에,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텐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이 취재파일은 해경이 4월 28일 공개한 구조 당시 동영상과 그간 취재내용, 인터뷰를 종합해 작성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