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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승마공주' 논란에 휩싸인 18살 국가대표

[취재파일] '승마공주' 논란에 휩싸인 18살 국가대표
 2014년은 갑오년으로 '청말띠의 해'입니다. 말의 해라 그런지 몰라도 요즘 말(馬)때문에 말이 참 많습니다.  지난 8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안민석 의원은 "청와대의 지시로 국가대표가 되기에 부족한 정모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가 됐다는 제보가 있다"며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사흘 뒤 안민석 의원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지난해 5월 '대한승마협회 살생부'가 작성돼 청와대에 전달됐고, 청와대 지시로 체육단체 특감이 추진돼 살생부에 오른 인사들에게 사퇴 종용 압력이 있었다"고 추가 의혹을 폭로했습니다. 정모씨는 작고한 최태민 목사의 사위로 박근혜 대통령의 전 보좌관이자 측근으로 알려진 정윤회씨입니다.

  이에 대해 교문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은 정윤회씨 딸의 경기 성적표 등을 증거자료로 제시하며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1, 2등을 다투며 우수한 성적을 거둬온 승마 유망주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아울러 정씨의 딸이 마사회 소속만 사용할 수 있는 마방을 사용하는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국가대표 선수라면 누구나 마방 사용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런 관행은 정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야당 측 제보자의 아들 또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비 당시 국가대표로서 마사회에 마방 사용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선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런 공방에 대해 김종 문체부 차관은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안민석 의원의 주장을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일축했습니다. 대한체육회도 "전북과 전남 승마협회 고위 임원에 대한 사퇴 권고는 스포츠계 개혁 차원에서 이뤄진 것 이지 정양과는 아무런 관계없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신은철 회장을 비롯한 핵심 지도부 5명이 사퇴한 대한승마협회도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국가대표 정모 선수 선발과정, 마사회 사용 특혜 의혹 등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승마협회는  "매대회마다 포인트를 전산 합산해 이에 따른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특정 선수에 대한 특혜를 주거나 압력 행사를 하기 힘들다. 대통령 측근이 관여한 적도 없다. 앞으로 승마협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개인이나 단체에는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승마 종목은 마장마술(馬場馬術)과 장애물 경기, 종합마술(綜合馬術) 등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승마는 남녀혼성 경기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논란의 핵심인 정윤회씨의 딸 정모 양은 마장마술 선수입니다. 마장마술은 가로 60m, 세로 20m의 마장에서 규정된 동작을 얼마답게 아름답게 표현하는지를 심판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경기입니다. 말과 사람이 마치 하나처럼 호흡하는 이른바  '인마일체'(人馬一體)가 중요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승마를 배운 정양은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2012년에는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가대표가 됐고 현재 18살로 서울 강남의 모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정양은 오는 6월 10일 경북 상주에서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한국 승마는 그동안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4회 연속 우승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기만 하면 금메달을 따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의원의 의혹 제기는 정치공방으로만 넘길 수 없는 '메가톤급' 폭로입니다. 안의원의 주장을 쉽게 풀이하면 승마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선수가 청와대의 힘으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현재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를 준비중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주요 임원에 대해서는 '보복성 조치'가 가해졌다는 것입니다.  만약 안의원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한국 스포츠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 수 있는 충격적 사태로 그 후폭풍을 가늠하기조차 힘듭니다. 대표가 될 수 없었던 선수가 대표가 됐다면 원래 대표가 되었어햐 할 누군가의 자리를 결과적으로 빼앗은 것이 됩니다. 또 누군가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안의원은 실력 있는 18살 승마 소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면책 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을 제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만약 정양이 정윤회씨의 딸이 아니라면 이런 폭로를 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편으로 이용했다는 뜻입니다.

  체육계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A씨는 "정말 문제가 없다면 승마협회 집행부가 왜 사퇴했겠느냐? 안민석 의원이 제대로 한 건 물은 것 같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대표가 됐다는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는데 터뜨릴 타이밍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지방선거를 고려해 5월 중순쯤 폭로할 것이다. 이게 터지면 청와대는 물론 여당, 문체부도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체육계 인사  B씨는 다른 시각을 밝혔습니다. "마장마술이 피겨처럼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채점하기 때문에 오해가 많이 생긴다. 정모 양은 갑자기 나타난 선수가 아니라 원래 유망주였다. 청와대의 입김으로 국가대표가 됐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한마디로 정치 공세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든 이번 사태는 적당히 봉합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논란의 당사자인 정양은 물론 한국스포츠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안민석 의원이 구체적 증거를 갖고 있다면 정치적으로 계산하지 말고 하루빨리 증거를 제시해 의혹 제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려야 합니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도 더욱 철저한 조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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