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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죽었다가 살아나 세상 인심을 알다

방송하지 못한 '부활' 이야기

[취재파일] 죽었다가 살아나 세상 인심을 알다
죽었다가 살아나 세상 인심을 알다

 기자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기사로 쓰지는 못했지만, 평생 기억에 남는 취재가 몇 있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자세한 맥락에 대한 기억은 많이 흐려졌지만, 인생의 작은 지혜를 깨닫게 해주면서 뇌리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다. 다음의 이야기는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약간 각색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예전 회사에서 SBS로 회사를 옮긴 지 6개월 남짓. 굴러온 돌이 새 터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마른 자리 진 자리 가리지 않고 열심히 몸을 움직일 때였다. 편집회의를 마친 부장이 나를 찾았다. 뭔 일을 시키려는지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고철종씨, 저기 미안한데, 국장 지시니까 이걸 좀 알아봐야겠다."

부장이 부하 기자에게 취재를 지시하는데 미안할 게 뭐가 있겠는가. 평소답지 않은 부장의 태도에 의아해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나중에 듣고 보니 당당하게 해야 할 취재 지시에 어쩔 줄 몰라 했던 부장의 표정이 이해가 됐다.

국장이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던 모양이었다. 거기서 모 정부산하 기관의 고위 간부로 있는 친구를 만났단다. 기관의 간부는 친구인 방송사 보도국장을 간만에 보자, 그동안 속에 담고 있다 입이 근질거려 견딜 수 없었던 곰삭은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하던 김 사장이란 동창생의 이야기였다.

김 사장은 사업이 실패한 뒤 그 충격으로 뇌졸중에다 다른 병까지 겹쳤다고 했다. 사업가 주변이 항상 그렇듯, 가세가 기울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친구와 친지들은 김사장 주변을 멀리했다. 1년 6개월 이상 장기 입원했던 그는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가족들은 장례를 조용히 치르기로 했다. 아주 가까운 친척들에게만 알렸을 뿐, 김사장의 사망소식을 외부에 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발인 전날 일이 터졌다. 새벽 시간 노련한 장의사가 염을 하고 있었다. 오랜 병수발에 지친 가족들은 잠시 지켜보다 자리를 떠났다. 솜으로 시신의 왼쪽 뺨을 닦던 장의사는 더러워진 솜을 휴지통에 버리곤 돌아서서 새 솜을 뜯었다. 그리곤 철제 탁자 위에 둔 알코올 병을 기울여 새 솜에다 알코올을 묻혔다. 다시 돌아서 다시 오른쪽 뺨을 닦으려던 그는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었던 김 사장의 얼굴이 왼쪽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곧 요 며칠 새 일이 많아 잠을 설쳤더니 그런 가 했다. 마음을 가다듬곤 다시 솜으로 오른쪽 뺨을 포함해 얼굴을 정성껏 닦았다. 그 때 이동용 철제 탁자 두 번째 칸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진동으로 해놨지만, 철판 위에서 부르르 떠는 진동음은 간단치 않았다. 액정 표시를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성가셔서 꺼놔야 했다.

휴대전화 전원을 끈 뒤 시신으로 눈길을 옮긴 장의사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가 반듯하게 정중앙을 향해 있는 것이었다. 아까는 피곤함 때문에 착각했던가 했지만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장의사는 김 사장의 시신에 바짝 다가갔다. 그리곤 30cm 정도의 거리에서 마주한 채 얼굴을 응시했다. 하지만 사망진단이 내린 후 이틀째 냉장 보관되던 시신이 괴기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이상 움직일 리 없었다. 장의사는 피식 웃으며 시신에서 얼굴을 멀리 뗐다. 그 순간.

그는 영안실이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잠시 뒤 장의사는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병원 원장의 놀란 토끼 눈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영안실은 아수라장이었다. 김 사장의 가족들과 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장의사는 조금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시신이 살아난 것이다. 그가 김 사장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일을 멈추고 눈길을 떼려던 순간, 김사장이 눈을 번쩍 떴고 자신은 혼절한 것이다.

병원 입장에선 사망판정을 내린 사람이 살아났으니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외부에 사실이 알려질 경우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병원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게 뻔했다. 병원 측은 김 사장 가족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김 사장이 죽은 걸로 해 줄 경우 1년 이상 밀렸던 입원비와 장례비용을 모두 무상 처리해주겠다는 거였다.

김 사장과 가족은 잠시 고민했지만, 나쁠 게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무엇보다 수입억대의 빚을 다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상황은 빨리 수습됐다. 서로 각서를 교환한 병원과 김 사장 측은 장례절차를 그대로 진행했다.

전해들은 이런 이야기는 당시 유행하던 미스터리 극장에 딱 어울릴 법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이야기의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화하라는 주문에 대해 나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이게 명색이 경제부 기자가 해야 할 취재란 말인가. 아무리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때였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내가 이런 내용을 취재해야 하느냐’고 볼 멘 소리로 물었다. 부장은 말했다.

"당신이 그 부처를 맡고 있잖아. 이야기 전해 준 사람이 그 쪽 간부니까 당신에게 알아보란 거야. 국장 지시니까, 좀 황당하더라도 취재해 봐!"

따지고 보면 경제부 기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지만, 내 출입처 취재원이 그 이야기를 전해 준 장본인이기에 내게 취재를 맡긴다는 설명에, 어이없는 심정이었지만 지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난감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취재지시를 하는 부장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투덜거리면서 사무실을 나왔다. 가까운 그룹 기자실에 가방을 내팽개치곤 출입처명단을 뒤적여 문제의 간부를 찾았다. 그는 최근에 새로 부임한 터여서 면식이 없었다. 통화 내내 짜증스럽고 귀찮은 심정이 최대한 전달되겠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가 문제의 이야기를 우리 국장에게 전하지만 않았어도 자존심 상하는 취재는 할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그는 매우 당황해 했다.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하룻밤 새 이렇게 자신에게 취재로 돌아올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에게 김 사장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럴려면 왜 우리 보도국장에게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했습니까”라며 따졌다. 나의 끈질긴 취재에 해당 간부는 자신이 알려줬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며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사실 확인 여부를 떠나 국장 지시를 어느 정도 이행했다는 변명거리는 찾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내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문제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약간은 떨렸다.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과 통화하는 게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10분에서 30분 단위로 네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났다. 차라리 잘 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실일 리도 없는 황당한 내용인데다, 내키지 않는 취재가 아닌가. 아무리 해도 연락되지 않더란 이야기만 부장에게 전해주면 끝이란 판단도 들었다.

오후 3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저 쪽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남자 음성이 들렸다. 무심코 느끼기에도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밝힐 경우 저쪽에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릴 거란 직감이 스쳐지나갔다. 이야기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저... D 고등학교 나오셨죠?"
“네... 그런데요?”

저 쪽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최대한 안심시켜야 했다. 동시에 그래도 전화를 끊을지 모르니, 내가 그를 잘 알고 있고 그가 거부하더라도 가족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취재할 수 있다며 압박해야 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둘러대며 그를 옭아맸다. 어느 순간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장례식 265
그는 장례식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장례를 치른 뒤 병원에서 몰래 나온 그는 충청도 어느 산골로 들어갔다. 거기서 폐가를 개조해 살 집을 마련하고 유기농 채소 등을 키우며 살았다. 죽은 걸로 돼 있는 몸이라 혹시 아프면 병원 갈 일이 큰 일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죽었다가 살아난 이후엔 그동안 안고 있던 지병까지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불편하던 팔과 다리도 감쪽같이 나았고, 한 겨울 산골생활에도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자신의 염을 맡았던 장의사가 그 당시 너무 놀랐던 탓인지 자신처럼 중풍에 걸렸는데, 마치 자기 병이 그에게 옮아간 것 같아 항상 미안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대화 상대가 없었던 때문인지 그는 말문을 열자 폭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화 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밝히는 데도 열심이었다.

"고기자님 입장에선 이게 재미있는 뉴스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가 나가면 나와 우리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됩니다.”

만약 자신이 살아있다는 이야기가 알려질 경우 수많은 빚쟁이들이 다시 가족을 괴롭힐 것이며, 장례식 때 병원 측과 맺은 약속도 깨지게 돼 그로 인한 금전적 부담도 상당하다는 거였다. 뿐만 아니라 믿기지 않는 소재의 주인공이라며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처럼 생각하고 바라볼 세상 사람들의 시선 역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결국 그의 설득에 손을 들고 말았다. 기사화하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약속했다. 실제로 그가 거부할 경우, 신문이 아닌 방송기자 입장에서 그림 없이 그의 이야기를 제작할 방법도 없었다. 넋두리를 쏟아내던 그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죠. 죽어보니까 세상인심을 알겠습디다. 돈 잘 벌 때 내가 그렇게 술 사주고 골프 시켜주고 하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내 장례식에는 10분의 1도 안 왔어요. 물론 부고를 열심히 알리진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내가 자기네들 경조사에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데, 그게 아무 필요 없더군요. 게다가 그나마 참석했던 사람들도 방명록을 보니까, 내가 자기네들 경조사에서 냈던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부의금을 냈더라구요.”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장례식장에 파리만 날린다는 속담을 그는 자신이 죽었던 경험을 통해 몸소 체험한 것이었다.

취재했던 내용을 부장에게 전했다. 부장은 자신이 말하기 껄끄러웠던지 내게 직접 국장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국장은 납득했다. 국장 역시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더 난처한 지경에 빠뜨리긴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황당무계했던 취재는 끝이 났다.

이런 취재 이야기는 그 이후 몇몇 PD들에게 흘러 들어가, 대박소재라며 다뤄보길 원하는 요청이 쇄도했지만, 나는 그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야깃거리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불행해질 김 사장의 상황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죽었다가 살아난 김 사장이 겪었던 일은 나의 뇌리에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은 나로 하여금 자동으로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좋을 때나 궂을 때나 내가 변치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해 왔던가’하는 물음이다. 돌이켜 보건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오래 전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던 직장 상사와 가까운 고등학교 동창의 갑작스런 죽음 때, 나는 생전에 밀접했던 관계만큼 그들과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  

또, 김 사장은 인간관계 속에 버티고 있는 이해타산의 숨기고 싶은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게 해줬다. 우리는 으레 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하지만, 내면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베푼 것 이상으로 받을 걸 기대하고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곤 내게 돌아오는 것이 기대보다 적을 땐, 서운함이 폭발하고 상대를 멀리하게 된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서운함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계기로 김 사장의 이야기를 회상할 때면, ‘인간관계에서 돌려받는 게 베푼 것보다 적다고 느끼더라도 크게 서운해 하지 말기’를 나는 자연스럽게 다짐하게 된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내 모습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람으로 비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다는 의지를 되새긴다. 김 사장의 특이한 인생역정은 내게도 특별한 교훈을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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