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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황과 마피아…기나긴 '악연'

[취재파일] 교황과 마피아…기나긴 '악연'

교황과 마피아. 정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입니다. 하지만 교황과 마피아의 ‘악연 아닌 악연’은 꽤 오랜 세월 이어져 왔습니다. 이 악연을 설명하기 위해선 ‘바티칸 은행’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바티칸 시티에 있는 바티칸 은행은 지난 1942년에 설립됐습니다. 설립자는 교황 비오 12세입니다. 1887년 만든 ‘추기경 자선위원회’를 최초의 전신(前身)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이름이 4번이나 바뀌고, 업무도 달라져 지금의 바티칸 은행이 된 것입니다.
안서현 취파_265


 바티칸 은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이탈리아 검찰의 수사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검찰은 바티칸 은행이 자금의 소유주와 행선지를 감추는 방법으로 부패한 정치인과 마피아의 돈 세탁을 돕고 있다는 혐의로 시중은행에 있는 바티칸 은행의 자금 2천 3백만 유로(약 343억 원)를 동결하고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바티칸 은행의 공식 업무는 신자들의 기부금과 성직자들의 급료 관리이고, 자산의 5%로 주식이나 채권투자를 해 수익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기업인이나 정치인, 심지어 마피아의 ‘검은 돈’을 세탁해 수익을 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죠.

이런 추문이 2010년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닙니다. 20세기 초, 교황청은 신도들이 줄면서 사실상 ‘파산’ 상태였습니다. 비오 11세 당시 교황은 교황청 재산을 늘리기 위해 바티칸 은행의 전신인 ‘특별행정처’를 설립했습니다. 책임자로는 독일 중앙은행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베르나르디노 노가라라는 인물을 영입했습니다. 그는 해외 투자를 늘리면서 스위스 은행을 활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인이나 마피아의 검은 돈이 바티칸을 거쳐 갔다는 ‘설’이 있었습니다. 또 2차 세계대전 직후 교황청이 마피아와 함께 나치 전범을 도주시키고, 그 대가를 나눠 가졌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렇게 마피아와 교황을 둘러싼 무성한 의혹과 소문은 오랜 세월 계속돼 왔습니다.
안서현 취파_265

오랜 침묵을 깨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칼을 빼들었습니다. 교황은 바티칸 은행의 모든 활동을 조사하고 교황에게 직접 보고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 5명을 선정했습니다. 대대적인 바티칸 은행 개혁에 나선 겁니다. 또 지난 21일에는 마피아를 향해 직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난 1893년 이후 이탈리아 마피아에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 842명을 추모하는 미사에서 “당신들의 돈과 힘은 피로 물들었다”고 외친 겁니다. 교황은 “피에 젖은 돈은 천국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회개하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마피아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일각에서는 마피아의 보복을 우려했고, 일부 외신들은 ‘교황 암살설’까지 제기했습니다.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난 1993년 9월, 마피아 척결운동을 이끌었던 시칠리아의 풀리시 신부는 자신의 집 앞에서 마피아 조직원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앞서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은 같은 해 5월 마피아를 공개 비판했고, 두 달 뒤 로마 성당 2곳에서 잇따라 의문의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교황청에 대한 마피아의 협박성 공격으로 추정됐지만, 물증은 없었습니다. 바티칸 은행 개혁을 주장했던 요한 바오로 1세 전 교황은 즉위 33일 만인 1978년 9월 28일 사망했습니다. 교황청은 당시 사망 원인을 심근 경색이라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의혹’, ‘소문’ 이런 단어들이 많이 사용됐는데요, 교황과 마피아를 둘러싼 각종 추문들은 결국 가톨릭 특유의 ‘비밀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티칸은행 역시 돈세탁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아, 예금주들도 실명 대신 가명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런 ‘비밀스러움’ 때문에 마피아니, 검은돈이니 하는 각종 의혹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이제 공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마피아에 대한 선전포고도 중요하지만, 실상 ‘제 살 깎기’가 될지도 모를 교황청 내부 개혁이 단행되지 않는 한 추문은 계속될 것입니다. 교황과 마피아.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를 저 뿐 아니라,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바티칸은행(IO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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