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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최선을 다해도 최고는 될 수 없어?

[취재파일] 최선을 다해도 최고는 될 수 없어?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여성들

지난 주에도 저는 매일 아침 아이와 눈물로 생이별을 했습니다. 우리나이 4살이지만 이제 만 28개월인 딸아이가 이달 초부터 등원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짠하고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언젠가는 겪을 일이라 생각하면서, 엄마가 강해져야 한다는 선배 맘들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합니다. 첫 사회생활, 아이도 힘들게 적응할 텐데, 집에 돌아와서 따뜻하게 맞아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괜히 또 미안해집니다. 육아책을 보면 일하는 엄마라고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말라지만, 그래도 미안할 일은 왜 그리 많은지요. 

매년 3월은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들에게 잔혹한 시기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 적응하느라 아이도 엄마도 엄청 마음 고생이 심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시기는 워킹맘들에겐 ‘최고의 위기’로 꼽힙니다. 실제로도 이 시기에 많은 여성들이 퇴사를 선택합니다.

육아 서적을 보면, 36개월까지 엄마와의 애착이 중요하답니다. (가능하면 만 3돌까지는 엄마가 직접 돌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개발서나 성공한 여성들의 자서전을 보면, 성공하려면 더 큰 목표를 가지고 회사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엄마도 되고 싶고, 회사에서 일 잘 한다고 인정받고도 싶은데, 현실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잘 하기엔 시간이 모자랍니다. 아이도 중요하고, 나도 중요한데, 양쪽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지친 사람들은 ‘엄마’역할에 충실하기로 하고 직장을 그만둡니다. 아이를 믿고 맡길 곳도 없거니와 베이비시터 고용 비용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사회가 특히나 엄마 역할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한 편이기도 하고요. 아이의 정서나 행동이나 성적, 모두가 엄마 탓입니다. (그래서 한 아동발달 전문가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엄마에게 책임을 지우고 경쟁을 부추긴다며, 우리 사회가 엄마의 ‘인권 사각지대’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임원이 가장 적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죠. 임원 승진 자체도 힘들지만, 임원 승진대상자 되기까지 그만두지 않고 회사를 오래 다니는 여성들도 많지 않습니다. 회사를 처음 들어올 땐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은 열정과 꿈이 있었을 텐데, 결혼과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의 과정이 발목을 잡게 됩니다.
취재파일 남정민 사
가족친화 경영으로 유명한 A회사가 있습니다. 이곳은 남녀 직원 공히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선택하는 ‘유연 근무제’와, 집에서 가까운 사무실을 선택해 출근할 수 있는 ‘스마트 워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자율 좌석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임원도 따로 방이 없습니다.) 

이외에도 아이와 관련된 개인 사정도 최대한 고려해 주는 편입니다. 결과적으로 생산성과 업무 능률이 크게 향상됐다고 합니다. 또, 장기 근속 여성이 늘고 사내에서도 꾸준히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한 결과 여성 임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큰 기업들의 평균 여성임원 비율이 1.9% 정도인데, 이 회사는 18%나 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A회사의 한 여성 상무는 첫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회사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10년 터울로 둘째를 낳고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정민 취재파일 사
‘아이의 눈물을 짓밟고 넘어서서 출근한 엄마, 아빠가 과연 회사에서 마음 편히 일 할 수 있겠느냐’며, 가정 있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배려해 줘야 한다고 하더군요. 남성 직원들도 아이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할 수 있게 되면서, ‘애 떼어놓고 출근해서 일하는 심정이 어떤 건지’에 대해 남성들도 느끼게 됐고, 가족친화 분위기를 지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회사에서는 야근한다고 평가 더 잘 받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 내에 스마트하게 일하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겠죠.

여성 임원 할당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여성 임원 임명 자체를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임원 승진 대상자까지 오르는 여성들도 많아질 테니까요. 경력단절 여성 문제는 정부에서도 신경 쓰는 일입니다. 워킹맘들을 위해 밤 12시까지 보육할 수있도록 시간 연장형 어린이집을 더 늘리고, 정부에서 아이 돌보미를 지원하는 등 많은 방안이 나오고 있죠. 사실 일과 가정 양립 대책이라기 보다는, 아이 맡아줄 테니 더 일하라는 발상에 가까운 거죠. (전 사실 아이의 입장에서 기관에 늦은 밤까지 머물게 되는 건 불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이 맡긴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배려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아이 낳고 회사 다니는 게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라, 격려 받고 축하할 일로 바뀐다면, 힘들게 입사한 회사와 자기의 꿈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또 지금은 ‘스칸디 대디’가 유행하는 등 남성들도 육아와 가사를 많이 분담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육아가 꼭 엄마의 전담 책임이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들리실 지 모르지만, 이 쉽고 당연한 이야기가 실현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CEO의 의지가 없고서는 일과 가정 양립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워킹맘들은 ‘늘 최선을 다 하지만, 가정과 회사 어디에서도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쪽, 저쪽에서 바쁘게 동동거리며 살지만 그만큼 만족이 크지는 않은 상황이 잘 표현된 것 같아 아프지만 공감이 되네요.

앞서 말씀 드린 A회사 임원의 말로 글을 끝맺습니다.  일과 가정 양립이 '일을 덜 하는 것' 또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격려의 문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할 수 있다. 아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내주고 또 그 남은 시간 안에서 충분히 일을 잘 할 수 있게끔 격려해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자기가 펼치고 싶은 꿈이 있잖아요. 이제는 사회가 시간이 많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스마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그게 가능하다는 걸 믿어주고 여성들이 그걸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주면 사실은 여성들이 정당하게 보상을 받고 또 거기에 대한 성과에 따라서 계속 지속적 승진하고 나중에 임원 되고 이런 것들 가능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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