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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취재파일] 이규혁의 '해피 엔딩'

20년 올림픽 도전의 마지막 레이스

생애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이규혁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느 때보다 표정이 밝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듯 텅 빈 링크를 혼자 서성였던 밴쿠버 올림픽 때와 달리 그동안 경쟁을 펼쳤던 외국 선수들과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한 뒤 인터뷰도 씩씩하게 했습니다. (이규혁은 밴쿠버 올림픽 때 인터뷰 도중 너무 울어 민망했다며, 소치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규혁이 소치로 오는 과정은 다른 선수들보다, 이전의 올림픽 때보다 더 힘들고 험난했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체력은 떨어지고, 올 시즌 내내 컨디션 난조를 보여 이를 회복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여기에 나이 든 선수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또 올림픽에 나선다고 뒷 얘기를 하는 빙상 연맹 임원까지 있었습니다. (어차피 올림픽은 기준 기록을 통과하고 월드컵 포인트와 랭킹을 확보해야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규혁이 양보한다고 다른 후배 선수가 소치에 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몇몇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한국 빙상이 빛을 보고 있지만 우리 선수층은 생각만큼 두텁지 않습니다.)

이런 부담과 압박감 속에 이규혁은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소치에서도 메달을 따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 5번의 올림픽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규혁은 1,000m 경기 도중 예전 전성기 때 느꼈던 스피드, 바람을 가르는 맛을 잠시나마 느꼈다며, 자신의 올림픽 레이스에 처음으로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1980~90년대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로 이름을 날린 댄 젠센은 이규혁 처럼 한동안 올림픽 징크스에 울었습니다. 매번 우승 후보로 주목받으면서도 경기 당일 누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레이스 도중 넘어지거나, 야외 링크에서 갑작스런 모래 바람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은퇴 무대였던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도 주종목인 500m에서 8위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젠센은 주종목이 아닌, 메달 후보로도 꼽히지 못한 1,000m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반전 드라마를 썼습니다. 10년간 4번의 올림픽 도전에서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젠센보다 두 배는 더 긴 시간을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이규혁에게는 젠센같은 반전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이규혁은 누구보다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함께 경기를 뛰었던 경쟁자들도, 전 세계 스케이팅 관계자들도 이규혁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비록 메달은 없었지만 이규혁의 20년 올림픽 도전 드라마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사회인 이규혁으로 새로운 드라마를 써 갈 그에게 다시 한 번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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