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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새 잡는 풍력발전소…하루 1,300마리 희생

[월드리포트] 새 잡는 풍력발전소…하루 1,300마리 희생
 미 캘리포니아 주에 팜 스프링스라는 지역은 휴양도시가 있습니다. LA에서 차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사막지대 한 가운데 있는 도시인데 날씨가 고온 건조하고 온천도 풍부해서 은퇴한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 도시를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초입에 우리나라에는 볼 수 없는 명물을 만납니다. 바로 대규모 풍력 발전소입니다.

 이 지역에서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 소형 터빈은 무려 3,218개나 됩니다. 도로를 따라 저 멀리 산 위까지 하얀 색 풍력발전기가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3천 개가 넘는 발전기가 강한 사막 바람을 타고 일시에 돌아가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만하죠. 공식 통계로는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량이 4,258 매가 와트라고 합니다. 인구 80만명인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소비하고도 남을 양이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화석 연료 에너지는 고사하고, 풍력, 태양열 같은 자연자원마저 부족한 우리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풍력발전소는 매일 매일 수많은 ‘살육’이 일어나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야생 조류 이야기인데요. 날개 하나 하나의 길이가 30미터가 넘는 풍력발전기 날개에 치여 수많은 야생 조류가 목숨을 잃습니다. 보고된 규모만 연간 50만 마리라고 하니 실제로는 그 갑절인 1백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치여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흔한 게 박쥐 종류이고 독수리, 매, 올빼미, 까마귀가 망라돼 있습니다. 미국의 국조인 대머리 독수리와 연방 정부에서 보호조류로 지정한 검독수리도 예외는 아니죠.

 어떻게 야생 조류가 풍력발전기 날개도 피하지도 못하느냐고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피하기에는 발전기 수가 너무 많고 오밀조밀 모여 있습니다. 팜 스프링스 주변엔 해발 3,200미터가 넘는 샌 하신토라는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일대에 수많은 야생 조류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는 야생 조류들이 먹잇감을 찾아 팜 스프링스 주변 사막지대까지 내려왔다가 수많은 풍력 발전기나 고압선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실제로 환경단체들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창공을 유유히 날던 독수리 한 마리가 발전기 날개를 이리저리 교묘히 잘 피해 비행하더니 결국에는 ‘퍽’소리와 함께 땅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발전기 날개의 끝부분 회전 속도는 무려 시속 250킬로미터가 넘기 때문에 일단 치이면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환경보호에 관한 한 우리 보다 훨씬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 정부는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을가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야생 조류 구조사 부부의 얘기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올해로 17년째 야생조류를 구호해 치료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조셉 척씨 부부는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생태계 보호대책에 대해 강한 톤으로 성토했습니다. 한마디로 친환경 에너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풍력 발전소를 만들었으면서도 이에 따른 생태계 보호대책은 전무하다는 겁니다. 발전기에 치인 조류들은 발전소 측이 구호한 뒤에 치료하도록 돼 있지만 감시할 방법도 없다고 흥분했습니다. 이 노부부는 발전기에 치인 매 5마리를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구호하고 있었는데, 치료를 마친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기까지 4~5개월 동안 들어가는 적잖은 치료비와 먹이 비용은 미 정부의 보조금 한 푼 없이 모두 사재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또 다친 야생 조류를 치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구조사는 캘리포니아 전체에서 30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취재 내내 매의 발톱을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먹이를 던져주면서 “얼마나 멋지게 생겼습니까? 그 무엇으로 매를, 독수리를 대신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구조한 야생 조류가 지난 17년동안 1만 4천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새잡는 풍력발전소
 이들 부부의 말을 요약하면, 미 정부 역시 발전소에 희생되는 야생조류 구조에 관한 한 예산이나 인적 자원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뒷?침하기라도 하듯 미 정부는 지난주 일부 풍력 발전소에 대해 앞으로 최대 30년 동안 대머리독수리나 검독수리를 죽이거나 해를 줘도 처벌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천명했습니다. 국조로 지정된 대머리 독수리를 희생해서라도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유도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미 정부의 발표는 2주일 전 와이오밍 주가 풍력발전소에 취했던 제재 조치를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와이오밍 주 정부는 듀크 에너지라는 풍력발전소 운영회사에 대해 벌금 1백만달러, 우리 돈 10억원 가량을 물렸습니다. 2009년부터 4년동안 14마리의 검독수리를 비롯해 160마리의 야생 조류를 죽였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와이오밍주의 제재 조치가 풍력발전소 업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지난 1918년 제정된 철새 보호법에 의해 미 역사상 처음으로 풍력발전소 처벌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번 미 정부의 ‘야생조류 희생 불사’ 방침은 와이오밍주 결정에 불안해하고 불평하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업체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이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쏟고 있는 노력은 엄청납니다. 탄소 가스를 배출하는 비싼 화석 에너지 대신에 풍력, 태양열, 지열, 해조류 같은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겁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앞으로 수년 안에 전체 에너지 생산의 3분의 1을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도록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장려 차원이 아니라 법적인 의무로 강제하는 겁니다.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생태계 보호’는 두 가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이 두 가지 가치가 정면 충돌하는 풍력 발전소에 대해 일단 미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우선권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만. 환경단체들은 “풍력발전 업계에 조류를 살상할 수 있는 백지 수표를 줬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시위나 청원, 소송 같은 적극적인 대응도 모색한다 하니 이 시점에서 귀결점을 예단키는 어렵습니다. 우리 역시 친환경 에너지 개발을 소홀히 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태계 보호라는 가치와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국의 풍력발전소가 다른 나라 얘기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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